제목 : 파란나라
일시 : 2017/11/02 ~ 2017/11/12
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출연 : 강지연, 권미나, 권주영, 김두진, 김보경, 김선기, 김정화, 김형준, 문지홍, 박미르, 박세인, 박형범, 양정윤, 이강호, 이은정, 이종민, 이창현, 하재성, 홍승안
작/연출 : 김수정
주관 : 서울문화재단, 극단 신세계
제작 : 남산예술센터, 극단 신세계
남산예술센터와 극단 신세계가 공동 제작해 지난해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초연을 올리고 올해 시즌 프로그램으로 다시 무대에 올린 <파란나라>(작/연출 김수정)가 전석 매진으로 막을 내렸다. 초연도 아닌 재연인데 그러하다. 결과를 놓고 짐작해보면 초연 당시 입소문을 타고 점차 관객수가 늘었던 예를 보면 올해 그 기대가 이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올해 5월 이른바 촛불혁명이라고 불리는 시민 권력에 의해 정권이 급작스레 바뀌면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독재가 가능한가?’를 다루는 연극 주제는 다소 기운이 빠졌다고 볼 수 있다. 작년 공연 당시 적절했던 주제가 역으로 독재 권력을 민주주의로 극복가능한가, 라는 막연한 희망이 현실에서 연극처럼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극중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학교 교육 행정의 구태의연한 반응이나 정규직, 계약직 교사로 구분되어 차별이 공공연한 현실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두고 봐야겠으나 논의가 이뤄지고 개선의 여지가 없지 않아 보이고, 큰 틀에서 ‘적폐청산’이 명제로 사회 부조리를 극복해가는 중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그럼에도 작년보다 더 열광하는 관객들을 어떻게 이해해야할 것인가? 극중 학생 대사에도 나오듯 “범죄자를 처벌했지 상황이 바뀌었나요?”라는 반응을 어른들도 종종 내뱉지만 과오를 바꿀 수 있다는 게 가능하다는 게 증명되었으므로, 하여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이상 입으로 불평불만을 내지르는 것들의 얘기는 고딩 수준보다 못하다고 무시해도 좋을 것이다.
이른바 흥행을 위한 여러 극적 장치가 동원된 연극 한 편을 향한 관객의 반응을 두고 현실을 반영하는 바로미터라고 보기 힘들다. 예를 들면 남산예술센터의 기획 의도나 방향은 늘 동시대성 구현을 위해 일관성을 유지했다고 볼 수 있다. 관객 수가 적었던 바로 앞선 작품 <십년만 부탁합니다>처럼 나름 극장에서 실험으로 혹은 연극성의 확장으로 물성에 인격을 부여한 유의미한 기획작이 흥행 여부가 파란나라의 성과만큼 미치지 못한다고 해서 던지는 화두가 무의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른바 극적 작법을 들어내고 다소 화제성이 떨어진 주제인데도 이런 과한 반응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현실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더 강한 체감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일종의 광적 열기를 불러오는 방식이 과연 폭력을 줄이기 위한 최선을 방법일까, 질문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 남산예술센터가 혜화동1번지 6기 동인들에게 고루 기회를 주었고, 그 중에는 혹평을 받은 경우도 있고, 다소 논란을 불러온 경우도 있지만, 과하다는 평가든 힘이 넘친다는 평가든 <파란나라> 만큼 화제를 모은 경우는 없다. 앞서 올해 서울연극제에서 출품작 <말 잘 듣는 사람들>으로 관객인기상을 받을 만큼 극단 신세계는 연극판에서 관객이 가장 주목하는 극단으로 성장했다.
하여 어느 순간, 강하게 밀어붙이는 극단 신세계 특유의 방식에 관객이 무뎌지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혹은 젊은 극단마다 독하다면 독하게 보일 수 있는 배우를 혹사하는 방식을 구사할 수도 있다. 극단 속내는 모르나 적어도 젊은 극단 내에서 배우들이 갑을 관계로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하는 연출 방식을 따르는 건 아니라고 이해하고 있다. 남산예술센터에서 두 차례의 성공은 앞으로 그들이, 구체적으로는 김수정 작/연출이 소극장 무대를 벗어나 중견 연출가들이 주로 차지했던 공공극장 제작 방식에 합류할 여지가 커진 것만은 사실이다.
그들의 왕성한 활동력은 올해 재공연을 준비하면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2017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청소년X예술가 프로그램 운영단체 공모’에 선정돼 지난 4월부터 26주간 청소년들과의 워크숍을 진행하거나 서울문화재단 2017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창작지원사업 선정작 ‘망각댄스_세월호편’을 올해 재해 현장에서 즉 거리에서 총 9회에 걸쳐 공연을 올리는 등 가히 놀랄만하다고 할 것이다.
극단 신세계 공연을 기다렸고 좋아하는 관객 입장에서 2018년은 극단 신세계가 숨을 고르고 추스를 시기가 되었으면 한다. 굳이 연극계에 대한 책임감을 느낄 필요는 없겠지만 극단 안에서 관객의 지지가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인지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파란나라>를 보면서 극중 갑을병정 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구조를 보면서, 한편으로 구조의 부조리를 알면서도 충실히 복무했거나 파란나라를 포기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선택이 목숨을 걸고 투쟁해야만 하는,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사회 단면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어떤 식으로든 방관했던 개인으로 혹은 세대로 가볍게 볼 수가 없었는데, 웃고 즐기는 관객들을 보면서 낯설고 솔직히 그로테스크하게 보이기도 했다.
하여, ‘민간 극단의 재기발랄함, 철저한 사전 리서치를 할 수 있었던 공공극장의 프로덕션 능력을 잘 조합한 모범사례’-[문화대상 추천작_연극] 남산예술센터·극단 신세계 '파란나라' 이데일리 A14면2단 2016.12.28.- 라는 평가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중극장으로 확장하기 이전에도 소극장에서 극단 신세계가 사회 현실을 받아들이고 풀어내는 방식은 다르지 않았다. <말 잘 듣는 사람들>의 경우 오히려 더 정교했다고 볼 수 있다. 재공연을 올리면서 아마추어 배우들의 참여를 늘려 극장 안을 꽉 채우는 방식은 배우와 관객 사이, 가상과 현실 사이 경계가 분명하고 분명 찢어지지 않지만 뚫어보겠다는 강한 의지가 드러난 작법이라는 점에서, 또 관객을 파란나라의 성취에 이입시키는데 한 몫 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지만 한편으로 짐작 가능하고, 극장 규모에 따라 한계가 분명한 선택이기도 하다. 세를 불려 동의를 구하는 방식은 현실을 꼬집는 블랙코미디이지만 스스로 도취에 취하지 않도록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극단 신세계의 동력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 극단 신세계 故 김나영 배우의 명복을 빌며
사진출처 - 남산예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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