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꿈_스트린드베리이 100주기 페스티벌] 인생이 허망하니, 인간이 불쌍하다

구보씨 2012. 12. 7. 12:15

2013년이 갑니다. 나이가 드니, 사실 묵은 해니 새해니 하는 말이 가슴에 잘 와닿지 않습니다. 연말연시 분위기도 그냥저냥 무덤덤하지요. 다만 나름 색다른 기획전을 연말이면 봤던 기억이 나는데요. 올해는 이렇다할 작품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연극 분야에서 이래저래 무난하게 연말 연시를 맞이하고 있다면, 아무래도 연말을 노린 뮤지컬 경쟁이 치열합니다. 그러나 캐럴도 들리지 않는 연말, 뮤지컬이라... 어떨지요.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가벼운 마음으로 기분전환을 해야할까요? 아무려나 각자 선택입니다. 


연희단거리패는 매년 한국공연예술센터와 함께 나름 대작을 올려왔습니다. 허나 올해 이윤택 연출은 <혜경궁 홍씨>를 들고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중극장 재개관작)을 선택했지요. 공사 지연 등 이유로 극장 개관이 미뤄지면서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 중인데요.  저도 29일 마지막 공연을 보러갈 예정입니다만 그간 행보에 비하면 다소 아쉬운 편입니다. 올해는 애시당초 제작, 기획이 국립극단이니까요. 스태프로 연희단거리패 주요 구성원들이 참여하고 있고, 주연도 김소희 배우 주연에 이승헌 배우가 등장하지만 전반적으로 이윤택다운 호기로운 행보는 아닙니다. 


그의 행보를 늘 좋아한 편은 아니나, 왠지 힘을 잃은 옆집 늙은 아저씨를 보는 듯도 합니다. 뭐, 아니겠지요. 지극히 몇 집 건너 동네 주민의 설레발일 뿐입니다. <꿈> 공연 일시를 보니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시끄러울 시점입니다. 허~ 참. 지난 1년이 꿈이었으면 좋겠네요. 인간이 불쌍하다, 는 표어가 새삼 와닿습니다. 올 한해 잘 마무리하시고, 부디 안녕들하시길 바랍니다. [2013.12.22]  


제목 : 꿈 - 스트린드베리이 100주기 페스티벌6

기간 : 2012/12/07 ~ 2012/12/16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출연 : 배보람, 윤정섭, 박정무, 이승헌, 김미숙, 조영근, 김철영, 김하영, 김해선, 황인택, 민혜림, 손청강, 오덩석, 김아라나, 김미혜, 이동준, 이재현, 김동훈, 김덕환, 박창현, 김수경, 김진경, 이거희, 신민주, 이예선, 변정원

희곡 : 요한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이

번역 : 이정애

연출 : 이윤택

제작 : 연희단거리패

주최 : (재)국립극단, HANPAC, 게릴라 극장



연희단거리패가 소극장인 게릴라극장을 벗어나 중극장 규모 이상 극장에서 공연을 올릴 때가 있다. 지금은 주로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하는 이윤택이 연출하는 작품이  그러하고, 연희단거리패 기수별 선후배들이 두루 참여하는 작품일 때가 그렇다. 2011년 1월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가 그러했고, 2010년 11월 <경성스타>가 그랬다. <경성스타>는 식민지시대 대중연극에서 친일연극까지 고난과 억압의 변방연극사를 재조명하는 의미에서,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는 1949년 5월 극단 신협을 통해 올라갔던 오영진 희곡을 제1회 코미디페스티벌에서 한국 고전 코미디를 재조명하는 의미에서 나름 획을 긋는 시도이다. 

 

이윤택 정도의 지명도라면 일정 부분 지원금을 확보했을 작품의 방향이 그의 취향이나 의도가 많이 반영되었다고 하더라도, 관객 입장에서 평작 이상 수준을 유지했다고 본다. 무엇보다 게릴라극장에서 미시적으로 봤던 배우들을 넓은 무대와 대도구를 활용한 무대에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각자 한 작품에서 만나 조연, 단역이지, 각자 주연급이라고 해도 좋을 배우들이다. 게릴라극장이 무대와 객석 구분이 없다고 봐도 좋으니 메소드 연기를 보여주는 대표 극단의 연기파 배우들이 쟁쟁한 바, 연기가 뒷받침하지 못하면 서기가 버겁다.

 


 

올해는  ‘스트린드베리이 100주기 페스티벌’이다. <미스 쥴리> 의 작가 정도 외에 알려진 바가 많지 않은 작가인 만큼 이윤택 연출이 욕심을 부릴만하다. 대표작 <미스 쥴리>는 김소희가 주연을 맡은 연희단거리패의 게릴라극장 공연 외에 스트린드베리이가 자국인 스웨덴 스톡홀름에 세운 실험극단 ‘인팀마 테아테르’가 와서 모노드라마 형태로 올린다. 초연작에 관한 관심이 높지만 역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작품은 해외초청작과 더불어 페스티벌 유일한 대극장 공연 <꿈>이다. 



익히 차세대 주자로 주목을 받았고, 이제는 주역이 된 배보람은 <경성스타>로 동아연극상 신인상 최연소 수상하면서 주목을 받았는데, 이번 <꿈> 주인공 역시 배보람이다. 그리고 역시 이승헌의 뒤를 잇는 윤정섭이 단짝 연기를 펼친다. 연희단거리패의 대표배우 김소희는 앞서 얘기했듯 뮤지컬 <미스 쥴리>에 등장한다. 이승헌, 윤정섭도 그렇지만 두 여배우는 선후배로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막상 스트린트베리이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가장 큰 이유라면 작품의 난해함을 꼽을 수 있다. 제목이 시사하듯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오가며 풀어낸 작품으로 작가 스스로  ‘몽환의 테크닉’, ‘유랑의 드라마’라고 말했다. 스티린드베리이와 이윤택 사이 교차점은, 막연한 짐작이지만, 둘 다 거칠 것이 없다는 데에 있다. 다만 작가와 연출의 호기로움에 비하면 그 무의식의 경게를 표현하기에는 극장 분위기가 차분하달지, 정돈되어 있다랄지, 아니면 사회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무거워서 그런지 작품은 무난한 편이다.




무대 오른편, 객석에서 볼 때 왼쪽 구석을 보면 악사들이 있다. 그들 역시 배우로 김아라나, 변정원이다. 직접 연주하고 연기하는 그들을 보면 극단이 가면 갈수록 시너지를 낼 여지가 충분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김아라나의 첼로 연주는 연극 막바지 즈음 연주를 몰입하다 보니 활 털이 적지 않게 끊긴 모양새를 볼 수 있다. 단역 급이라도 작품에 임하는 태도를 알 수 있다. 좋은 작품은, 좋은 연극은, 좋은 배우들이 만든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인간이 불쌍하다.'라는 연민을 담은 이번 페스티벌 표어는 바로 이 작품 대사에서 따온 말이다. 신의 딸자식이라도 인간으로 산다는 건 참 버거운 일이라는 게다. “이 세상, 삶, 인간들은 환영에 지나지 않”다는 그의 말은 나이가 들수록 동감하는 대목이다. 나이가 들수록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건 글쎄, 옳고 그름이나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니다. 인생이 한낱 꿈일까. 의연한 호접몽이라고 하기에는 작품은 참 구차하고 비굴한 캐릭터들로 가득하다. 꿈이라고 한다면 악몽이겠는데, 악몽을 이겨나가라는 단순한 의미는 아닐 테다. 배우들의 열연에서 그 삶의 끈덕진 면을 봤다.* 




사진출처 - 연희단거리패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