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사랑합니다] 라고 외치는 만석 할배의 고백에 박수를
강풀의 원작이 한때 연극으로 각광을 받던 때가 있었습니다. 2008년~2010년 정도가 가장 많은 작품이 올라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요즘도 공연이 가끔 공연포스터를 보기도 합니다. 만화로 익수한 작품들이라, 지방 공연도 제법 많이 올라갔구요. 만화라는 장르가 상상력을 발휘하기에는 무한대인 한편, 그 작은 사각틀이 꼭 막이 올라간 극장을 보는 듯도 합니다. 강풀은 아시다시피 사각틀에 고정된 만화를 그리는 작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아날로그적인 정서도 그렇고, 사람 사이 오가는 사랑, 우정, 고독, 공포, 적의 등을 특정 동네, 특정 지역으로 공간을 설정해서 압축해서 표현하는 방식이 꼭 연극적입니다.
흠... 그래서 만화를 영화로 만들었을 때, 그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일까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영화로는 좀처럼 흥행을 했다는 소식을 못 들었습니다. 소개할 <그대를 사랑합니다>도 마찬가지구요. 이 작품은 위성신 연출 참여로 더 기대를 모으기도 했는데요. 저는 2009년 10월 대학로 더굿씨어터에서 봤는데요. 강풀의 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연극 중에 가장 무대가 원작과 비슷하게 꾸민 작품이었습니다. 더굿씨어터가 소극장치고는 큰 편이기도 하구요. 그래서인가, 만화의 정서가 잘 살았더랬지요. 기억을 떠올리면 배우들 연기가 누구 한 명 빼놓치 않고 좋았습니다. 언제고 다시 무대에 올라간다면 부모님과 함께 보기 좋은 작품입니다.
연극 [바보]가 [강풀의 바보]인 이유 http://blog.daum.net/gruru/27
[강풀의 순정만화] 순정만화와 바보, 새로운 시도 http://blog.daum.net/gruru/38
제목 : 그대를 사랑합니다
기간 : 2009/09/25 ~ 2009/12/31
장소 : 대학로 더굿씨어터
배우 : 강태기 연운경 이희연 이현순 남보라 민충석 희곡 : 홍창수
각색 : 오은희
연출 : 위성신
제작 : 은세계 시어터컴퍼니
강풀의 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순정만화>, <순정만화2-바보>에 이어 <그대를 사랑합니다>까지, 강풀의 ‘순정만화 시즌1, 2, 3’을 원작으로 삼은 공연 세 편을 모두 본 셈이다. 세 공연의 공통점이라면 역시나 영화보다는 연극에 정말 잘 어울리는 이야기 구조를 들 수 있다. 세 작품 다 스케일이 크거나, 사건 위주가 굵직한 전개보다는 소소하지만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일상을 다루고 있어서 영화나 대형 무대극보다는 집중도 높은 소극장과 잘 맞는 작품들이다. 이런 장점은 만화로 이미 익숙한 내용임에도 2008년 흥행 성공으로 이어졌다.
공연을 잠시 중단한 <순정만화>, <순정만화2-바보>가 한 기획사 작품으로 소극장과 젊은 배우들의 유기적인 순환 체계를 통해 서울과 지방 동시 공연을 올리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면, 70대 노인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중극장 규모의 공연장, 명배우들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얕지만 언덕길을 비롯해 만화 배경을 무대로 옮기기 위해 무대 세트에 공을 많이 들여서 친숙한 동네 골목을 근사하게 옮겨왔다. 이야기의 두 축인 두 노년 커플의 작고 누추하고 춥지만 결코 외롭지 않는 각각의 방이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있고, 각각 그 바깥쪽으로 우유대리점과 주차장 관리실이 있다. 만화의 “니미럴”을 약간 더 강조한 “씨부랄”을 연신 입에 달고 다니는 김만석 할아버지(강태기 역)와 이쁜이 할머니(연운경 역), 이야기의 한 축인 장군봉 할아버지(이희연 역), 조순이(이현순 역) 부부의 안정된 노년 연기가 돋보인다.
워낙 원작의 파급력이 큰지라, 이야기 전개를 충실히 따르는 이 작품의 미덕은 세련되게 옮긴 작품 자체 외에도 인터넷이나 만화로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중장년층의 응집에서 볼 수 있다. 화려하지도 섹시하지도 않지만 아름다운 노년기의 잔잔한 로맨스는 어찌 보면 공연 매체의 중심(순정만화, 바보와 달리 영화화가 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영화는 후기를 쓸 당시가 아닌 2010년에 제작되었습니다.), 사회의 중심에서 한참 벗어난 논제이다. 하지만 젊은 관객들 위주의 대학로에서 중년 부부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단비 같은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사진출처 - (주)트라이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