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를 비로소 진정한 어른으로 일으켜 세운 <침팬지>
제목 : 침팬지
장소 : 대학로 스타시티 3관
일시 : 11월 5일(목) 늦은 8시
출연 : 박노식, 이지현, 박진하, 최지웅
작, 연출 : 차현석
<침팬지>는 박노식, 이지현 씨가 나온다는 소식만 듣고 바로 달려간 공연입니다. 팸플릿에 소개처럼 <살인의 추억> 백광호와 <미인>의 여자 역로 나온 두 분을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라면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죠.
<살인의 추억>이 2003년 작품이고, 이후 열심히 활동을 하고 계시는 데도 여전히 “향숙이?”가 떠오르는 박노식 씨나 2000년 작품인 <미인>이후 근 10년 가까이 뚜렷한 소식이 좀처럼 들리지 않아 아쉬웠던 이지현 씨여서 더욱 반가웠습니다.
그 사이, 프로필을 보면 두 분 모두 열심히 활동 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는데요. 그래서도 다소 한산한 공연장 분위기가 좀 아쉽기도 했습니다. 연극 <침팬지>는 등장하는 4명 인물 모두 더블 캐스팅 시스템이라, 미리 확인을 해야 합니다.
이날 공연은 박노식 씨가 인간보다 인간성 넘치는 침팬지로, 이지현 씨가 엉뚱한 로봇 조수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극단 후암의 <오셀로>에서 오셀로 역으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인 카리스마 최지웅 씨가 다소 코믹한 요원으로, 역시 <오셀로>에서 이아고 역으로 한 축을 담당했던 박진하 씨가 찌질이 박사로 나오지요.
이런저런 정부 프로젝트 실험을 비롯해서 지금까지 99번의 실패를 겪은 박사에게 원숭이를 토대로 한 인간 복제 연구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100번째 실험 끝에 인간복제 1호 침팬지 실험에 성공하지요.
하지만 반은 인간이고 반은 원숭이로 진화의 중간 정도에 그칩니다. 그리고 실험 완성을 위해 ‘침팬지 인간 만들기 프로그램’에 들어갑니다. 박사는 침팬지에게 인간의 감정과 문화를 가르치고, 그 와중에 막 알에서 깬(?) 침팬지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연스러운 의문을 갖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신 같은 조재로 대하길 바라는 박사의 의도와 달리, 침팬지는 박사를 아빠로 여기지요. 아무려나, 인간의 의식주를 가르치는 교육은 쉽지 않습니다. 작가이자 연출 차현석은 “인간이 인간을 인간화시키는 과정이 때론 얼마나 비인간적인가”를 다룬다고 합니다만, 극에서는 그런 의도가 그리 두드러지지는 않습니다.
‘전체주의 속 획일화된 인간의 군상’이라는 사회구조적 의도보다는 “찌질이, 가난뱅이, 여자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소심남”이라고 자신을 힐난하면서 버리고 떠난 아내를 극복하지 못하고 똑같이 생긴 로봇을 만들어 데리고 사는 박사의 모습에서 대한민국 40~50대 남성의 개인적 심리적인 문제로의 환원이 더 와 닿았습니다. 박사는 비로소 자식(?)을 갖게 되고, 이제 진정한 아빠로 거듭나게 되지요.
침팬지 박노식 씨의 연기를 비롯해 자못 진지한 연기자들 사이사이, 코믹한 설정은 웃음을 유발하지만 배우들의 기량을 완전히 사용하지 못하는 듯 해서 좀 아쉬웠습니다. 한때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었던 이지현 씨는 백치미 있는 섹시 로봇 역할이 적격이지 싶으면서도, 고정된 이미지 틀에 머문 점도 좀 아쉬웠지요. 그녀의 연기의 변신이나 실력을 제대로 가늠할 수 있는 기회는 아니었습니다.
이날 공연은 개인적으로 박노식, 이지현 씨를 무대에서 직접 만날 수 있었다는 점과 최지웅, 박진하 씨의 정통극과 또 다른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즐거운 자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