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ue_NEWWAVE 공연예술 축제 페스티벌 場 2009] 놀랍고 괴로운 햄릿과의 재만남
장르 : 연극+영상
극작 : 이준희
연출 : 이준희
출연 : 김광덕, 이진, 안치욱 외 3명
뉴웨이브 공연예술축제 2009 페스티벌 장(場)’이 7일부터 16일까지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열린다. ‘페스티벌 장’은 1997년 극단 사다리의 정현욱 대표가 중심이 돼서 마임이스트 유진규, 극단 여행자 대표 양정웅, 무용가 박호빈씨 등이 참가하는 실험축제로 2001년까지 계속됐다가 재정난 등으로 중단된 것을 이번에 서울문화재단(대표 안호상)과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회장 정현욱)가 부활시켰다. 이번 축제에는 4관객프로덕션, 김윤진댄스컴퍼니, 극단 몸꼴,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와 도쿄데스락 등 4개의 젊은 단체가 참가해 정형화된 문법을 탈피, 새로운 공연을 선보인다.
문화일보 09-10-07일자 '무대위 새로운 물결… 신선한 감동의 파도' 기사 발췌
정작 책으로 읽은 기억은 가물가물한데, 객석에서 햄릿을 여러 번 만났다. 햄릿을 만나는 건 가슴이 떨리는 설렘이면서도, 한편으로 공연 포스터에 종종 등장하는 그를 자주 본다는 게 아주 반가운 일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셰익스피어가 상상도 못할 방식으로 변주되는 수많은 공연들에서, 햄릿은 항우울제 ‘프로작’이 감기약처럼 팔린다는 미국을 비롯해 현대인의 고뇌와 우울과 상처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오로지 이름 ‘햄릿’과 그의 고뇌에 찬 단어 몇 마디만 원형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대형 뮤지컬 유명 연예인 햄릿, 정극 중년 햄릿, 실험극 예닐곱 살 햄릿을 만났다. 살과 피를 도려내고 빼낸 뒤에 남은 뼈대에 둥글고 평평한 얼굴을 검은색 머리카락을 붙인 이들이 자신이 진짜 햄릿이라고들 했다. 과장되거나, 가식이거나, 어리거나 한 엉뚱한 햄릿들은 그러나 누구 하나 만만치는 않았다. 공연예술축제 2009 페스티벌 場의 첫 번째 레퍼토리가 다시 햄릿이다. 4관객 프로덕션의
눈과 귀를 자극하지 않는 연극이 있냐고? 하지만 ‘무대 위의 존재하는 모든 요소들의 동물적인 지각력을 되찾고, 마지막 짐승, 배우의 존재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는 4관객 프로덕션의 취지가 거짓이 아니라는 듯이 조명, 무대, 동선, 영상 눈으로 확인하는 무엇 하나 기존의 공연 관습을 비틀지 않는 게 없다. 암전에서 공연이 진행되는가 하면, 평행사변형으로 무대를 쪼개고 바꾼다. 동선은 무대 뒤벽 2, 3층 골조를 넘나들고, 영상은 클로즈업 시킨 배우의 이면을 쫓는다. 그럼에도 ‘이미지극에서 놓치기 쉬운 스토리 라인을 강화’해서 이해도를 높인 데다, 완성도가 높아서 단순한 치기나 무모한 실험으로 볼 수 있을 만한 게 아니었다.
기름진 목소리로, 혹은 목청 좋은 노래로 사느냐, 죽느냐를 마치 무슨 구호인양 대사를 치는 것과는 달리 극 전체가 절망에 빠진 신음처럼 내뱉는 혼잣말이다. 죽느냐, 사느냐. 관객 입장 전부터 조명이 들어오지 않은 무대 위에 햄릿의 죽은 아버지가 하늘하늘 춤을 추고 있다. 그의 행동은 거침이 없고, 짐을 훌훌 털어놓았다는 듯이 무척이나 자유롭다. 죽은 그에게 극의 시작과 끝, 시간의 제약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객석이 어두워지고 무대가 어스름하게 새벽이 오듯 밝아온다. 춤추는 햄릿 아버지가 커다란 막에 영상으로 투사된다. 햄릿의 머릿속에 들어앉아 내면을 지배하는 망령이다.
텅 빈 무대에 혼자 등장한 햄릿은 텅 빈 무대 위에서 옷을 벗더니 몸짓으로 절규한다. 옷을 벗고 짐승처럼 네 발로 돌아다니다가 진화 과정을 겪듯이 두 발이 걷고 달리고 물구나무를 서고, 춤을 춘다. 어머니 거트루드와 결혼을 앞둔 삼촌 클로디어스가 나와서 굴레를 씌우듯이 햄릿의 옷을 다시 입혀보지만 절제, 인내, 가식, 이중성, 예절, 보편의 옷을 입고서도, 인간이 되고 나서도 햄릿의 과잉은 멈추지 않는다.
남산예술센터 자체 뼈대인 미니멀한 골조의 층계를 가리지 않고 드러낸 무대는 하나같이 상처 입지 않은 짐승들이 없는
큰 틀에서 원작을 따르나, 서늘한 상상력을 더한 '햄릿'은 4관객 프로덕션의 힘이 제대로 드러난다. 클로디어스의 살인이 드러나는 파티 장면은 광대극 대신 수많은 막의 겹침 위에 빠르게 전개되는 이미지로 대체된다. 전쟁, 테러, 폭력이 과잉으로 넘친다. 허나 과잉이 하나의 답습이 된지도 오래, 살짝 눈에 거슬렸지만 극 전반에서 연출과 극작을 맡은 이준기는 과잉과 관습,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적절한 조율에서 실력을 발휘한다.
극장을 나오니 ‘산 자의 뒤를 죽은 자들이 따른다’는 대사가 귓가에 맴돈다. 아버지의 장례식 행력을 두고 햄릿이 한 말이다. 그렇게 죽지 못한 햄릿들이 괴로워하며 세상을 떠도는 지금이다. 세상에는 잿더미가 된 뒤에도 차가운 안실을 떠나지 못하는 철거민, 강간폭행으로 하반신 장기의 80%를 들어낸 소녀의 뒤에서 머리를 쥐어뜯는 햄릿들의 신문 기사가 가판대 머릿기사로 보인다. 나는 산 자인가, 죽은 자인가.신문, TV, 라디오, 입소문으로 주위에 떠도는 현실에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 무덤덤해지지 말 것, 처음에서 말했듯, 햄릿의 고뇌를 내 것으로 가져오는 생경한 경험은 두려우면서도 인간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작업이다.
그리고 코를 자극한다는 얘기는 극중 오필리어가 피는 담배 연기에 혹했기 때문이다. 원작과 다르게 또 다른 욕망의 사도로 등장하는 오필리어의 아버지, 폴로니우스에 대한 오필리어의 심정은 그 한 모금의 담배 연기로도 충분했으니 말이다.*
사진출처 - 페스티벌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