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고도] 동승무대에 고도는 정말 오지 않는가

구보씨 2009. 8. 27. 13:03

며칠 전에 올린 <청춘예찬>에 이어 2009년 당시, 곧 이어 <고도>를 봤습니다. 포스터를 보면 관람료가 나와있는데요. 성인 1만원입니다. 무척 싼 가격이지요. 2010년 극장 이름을 '미아리 마을극장'으로 바꾸면서 대학로에 몰려 있는 공연 문화를 바꿔보자는 취지를 밝히고 있는데요. 관람료가 5천원으로 더 내렸습니다. 아래 글에서 언급하지만 주변이 재래시장이나 재개발 지역인데요. 상인분이나 지역주민들이 '관객 분들이 문화 생활함에 있어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여 관객 분들이 부담 없이 연극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지역극장으로 자치구에서 두루 후원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도>는 제목이 말하듯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올리는 연극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일본 원작인데, 한국전쟁 직후로 배경을 옮긴 작품입니다. 좋은 작품이구요. 2010년 대학로 소극장축제 <D-FESTA>의 공식참가작으로 '전국 소극장 400여개 작품들 중에서 엄선된 17개 작품'으로 당당히 재공연을 올렸습니다. [2012.07.12]

 

제목 : 고도_극단 동숭무대 창고개방 연극릴레이season 8 

기간 : 2009/08/27 ~ 2009/09/13

장소 : Studio 동숭무대

출연 : 김성태, 손인용, 홍경아, 채정은, 이문형, 채명기, 김유리, 김진문, 고우리

원작 : 히로시마 고야

각색/연출 : 임정혁

제작 : 극단 동숭무대

기획 : 청년기획


비가 내렸다가 그쳤다. 후덥지근하다. 저녁이라고 바람이 선선히 불었다. 그런대로 참을 만하다. 습한 열기가 올라오는 곳은 따로 있었다. 지하극장 동숭무대는 덥고 눅눅하고 습한 열기로 가득했다. 공연을 보는 내내, 습기가 어리는 안경알을 가끔씩 닦아줘야 했다. 에어컨은 없었고, 우연히 스텝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는데, 환풍기마저 하나라고 했다. 미아삼거리의 재개발이 서서히 밀고 들어오는 동네, 낡은 4층 건물 지하 공간이었다.

 

연극 <청춘예찬>을 보려고 처음 들렀을 때, 30석 남짓한 객석을 열 명 남짓한 관객이 채우고 있는 광경에 놀랐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공연장 용도로 짓지 않은 지하실은 천장이 낮았고 무대와 객석으로 나누기엔 아무래도 공간이 작았다. 객석을 더 만들 수도 없었다. 심지어 객석에 앉은 한 명은 배우였다. 극단 동숭무대의 배우들은, 관객과 엇비슷하게 등장한 배우들은 그러나 열연을 펼쳤다.

 

 

 

<청춘예찬>이 알려진 작품인데다 또 구질구질한 신파이기도 해서, 얼추 연기력이 된다면 몰입하려고 맘만 먹으면 관객으로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처음 보는 배우들의 독기를 품은 연기에서 진득하게 묻어나는 삶이 절절하게 보였다. 그 안에는 내 삶도 있었고, 부모의 삶도, 가깝게는 친구 이야기였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박근형을 걷어낸 히로시마 고야의 <고도>에서 동숭무대는 어떤 공연을 올릴까 궁금하였다. 객석은 스무 석이 좀 넘게 찼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청춘예찬>에서 봤던 배우들이 무대 위 뿐 아니라 공연장 이곳저곳에서 분주했다. 몇몇은 객석에 같이 나란히 앉았다. <고도>는 보스니아 내전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을 한국전쟁을 겪은 직후로 옮겨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올리는 연극배우들을 통해, 언제 올 지 모르지만 ‘고도’를 기다리듯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 고단한 삶을 묵묵하게 보여준다.

 

 


쉽게 오지 않는 고도, 그러나 고도를 기다리는 과정 자체가 치유가 되는 사람들, 아무도 보러오지 않지만 언제가 자리를 만석을 채울 관객들, 고도를 기다리며 질곡의 시절에도 연극을 올리는 극중 배우들의 삶은 2009년 8월, 현실의 동숭무대 배우들과 100%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충만한 연극이 관객과 만났을 때, 배우와 관객이 서로가 서로에게 고도가 되는 합일치를 다시 경험했다. 열정으로 소금땀을 철철 흘리는 동숭무대 단원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한편-하루를 오로지 저녁 한 시간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고도>는 배경을 한국전쟁 직후와, 현재를 오가면서 시대를 빗대 현실에 대한 보다 강한 분노랄까, 저항이랄까 고함을 외친다.

 

 

 

전쟁이 끝나고 50년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 고도,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연극을 잘 보지 않는다. 극중 미군부대에서 배급받은 분유와 옥수수 가루로 연명하는 배우들의 처절한 삶은 여전히 끝나지 않을 성싶다. 모든 배우들이 그런 것은 아닐 것이나, 코미디쇼도 아니고, 화려한 무대로 눈을 홀리는 무대도 아닌 우직하게 세상의 진실을 적나라하게 직시하도록 이끄는 연극의 길을 걷는다는 게 참으로 고된 길이라는 걸 배운다.

 

마지막 장면은 나이 지긋해진 막내 ‘시프’가 연출이 되어 <고도를 기다리며>의 리허설을 막 끝낸 참이다. 하지만 공연을 앞두고 “이제 그만 접자”라는 고백을 한다. 가슴을 아프게 파고든다. 시프가 무대 위에서 버틴 지난한 인생을 아는 한, 그가 무대를 떠나는 모습을 두고 아무도 말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고도>가 현실이 되지 않길 바란다.*

 

 

 

사진출처 - 극단 동숭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