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람이 발길을 인도하네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

구보씨 2009. 6. 1. 16:04

이 작품 이후 전수일 감독이 <영도다리>(2009), <핑크>(2011)을 더 찍었군요. 공연을 선호하다보니 아무래도 영화는 덜 보게됩니다. 시사회 초대로 본 작품입니다. 지금은 사라진 명동 중앙시네마에서 본 마지막 영화이기도 하네요. 스폰지하우스로 독립영화를 주로 상영하면서 명맥을 이었으나, 76년 만인 2010년 5월 31일에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재개발이 뭔지... 극장 근처 명동 상인들 투쟁이 여전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죽어 분골로 집에 돌아가는 이주노동자 도르지의 운명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기억해야겠지요. 많은 분들에게도 그렇겠지만 저에게도 추억이 많은 극장이고 골목입니다. 



<희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은 배우 최민식의 4년 만의 영화 출연으로 화제가 되고 있지만, 난 그보다는 전수일이라는 이름에 끌렸다.우연치 않게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나 <검은 땅 소녀와> 등의 무채색 영화를 보면서전수일이라는 감독 이름을 외우게 되었다. 

 

전작에서도 그렇지만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말이 많지 않다. 묵묵히 하던 일을 하거나, 혹은 방황을 한다.그러다 보니 늘 반복되는 일상이 매우 지난함에도 원 주민은 '떠남'을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과연 여행이나 방랑이 해답을 줄 것인가? 누구는 뭔가를 찾아 온 자리가 누구에게는 힘에 겨운, 지겨운 일상이 되는 아이러니.대신 영화 내 풍경이 사람들보다 많은 얘기를 한다. 세트 촬영이 절대 아니지 싶은 낡은 집 안 풍경은  그 비루함이 눈물이 겹지만 그런 속에서 누구나 견디고 사는 것이다.

 

그 절정을 봤다고나 해야할까. 영화 속 주인공들이 헤매었던 그 고단한 발길의 마지막 종착지를 찾았다고 할까. 이 영화에서도 전작의 비슷한 패턴이 반복이 된다. 하지만 배경이 히말라야다. 신들의 땅이라고 불리는 곳. 대화마저 통하지 않으니 영화 속 사람들은 더욱 말이 없다. 카메라는 히말라야 설산 아래 마을을 찬찬히 살피면서 세월 앞에 주인공 '최'의 고달픈 삶(기러기 아빠, 회사 휴직 등- 서울 어디의 완전히 페허가 된 동네 어디쯤 문 앞에 기대어 지쳐 쓰러진 장면은 그의 내면을 말하는 듯 하다), 카르마라고 말하는 업이 알고보면 흩날리는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 하다.

 

그렇다면 그 먼지는 어디로 가는가. 아니, 먼지를 날리는 바람은 어디로 가는가? 아이가 가리킨 그곳, 한국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죽은 이주노동자 도르지의 분골이 바람에 날린 그곳, 바람이 머무는 곳에 세상을 돌며 인간의 업보를 짊어진 바람이 쉬는 곳이 있다. 도르지의 분골보다 더 버거운 업을 가져온 최의 발걸음은 이제 아랫쪽으로 가는 대신 산 위쪽으로 향한다.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를 안다. 바람을 따라 가면, 산 너머에 바람이 쉬는 곳으로 가면예전의 나, 지금의 나, 미래의 나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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