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즐거운 여행 되세요]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라,는 고양이의 울음소리

구보씨 2009. 4. 4. 15:33

극발전소301 배우와 제작진이 참여해서 보게 된 작품입니다. 젊은 연극인들이 창작극만 올리는 멋진 극단이지요. 이 작품은 뭔가 분위기가 남다른 작품입니다. 분위기에 취했다고해도 그렇지, 이렇게 말랑말랑한 글을 쓰다니.. 이런 면에 저에게도 있었다는 게 놀랍습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라는 말을 입안에서 굴려보면, 여행이 되다, 라는 비문이 주는 감정이 그리 즐겁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여행을 하다, 라는 말은 주체가 나 자신이지만  여행이 되세요, 라는 말은 주체를 타인으로 삼는다. 그래서 '즐거운' 이라고 꾸밈말이 붙었는 데도 마지막 인사는 무척이나 쓸쓸하다.  남들이 떠나는 그 여행에 동참할 수 없는 혹은 하지 않은 고양이의 마지막 말,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래. 가 주는 울림이 생각보다 오래 멀리 퍼졌다. <2009 즐거운 여행 되세요>의 마지막 공연의 마지막 대사였던 탓일 수도 있고, jai의 몽롱한 목소리의 마취 효과가 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언제나 '지금'인 공간으로 설정된 그곳은 마치 실험용 쥐를 배양하는 실험실 유리상자처럼 보인다. 같은 실험 목적으로 같은 쥐가 부품처럼 계속 바뀌듯이, 어제와 오늘이 늘 똑같은 그곳에서 그들의 빈약한 기억,상상력과 커다란 두려움은 아홉 번의 삶을 사는 고양이의, 다섯 번째 삶이 사는 고양이의 삶이 갈수록 숨겨야 할 끔찍한 기억만 자꾸 늘어나고, 행복한 기억은 갈수록 잊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들의 아이들 장난 같은 놀이나 즐거운 기억의 재반복은 어느 정도 나이가 둔 순간, 악목으로 뒤바뀌는 경계 이전까지만 유효한 듯 하다. 

 

한 번의 삶과 마지막 삶이라는 이제 같은 처지의 남자와 고양이가 떠난다.홀로 그 안에서 견디어야 하는가, 라는 의문에 다섯 번째 삶을 사는 고양이의 안주는 밖이 다르지 않다는 것, 오히려 더 지독하다는 것과 음식이 나오는 통로가 그렇게  큰 이유-단순한 설정일 수도 있지만-에서내일 아침이면 또 다른 누군가가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라고도 보인다. 어쩌면 그 안에서 굶어죽을지언정 여덟 번의 삶을 살고 나서야 나서게 될 지도 모른다. 누구라도 그곳을 찾는 누군가에게 '친구'가 필요한 법이니까.*  




사진출처 - 극발전소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