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어의 하늘 the firmament of a mullet] 진정한 환경 예술로 거듭나기를
파사무용단의 공연은 이 작품이 처음인데요. 이후 비보이와 협연한 <옷깃> 등 다른 작품으로도 기억하고있습니다. 이때 환경 문제에 관심이 있었을 때라, 다소 시니컬하게 썼네요.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 환경 문제가 사회적 이슈이기도 했습니다. 흠, 완성도는 높은 공연으로 기억합니다. 토월극장의 깊은 무대를 잘 활용하기도 하였구요. 다소 관념적인 작품이긴 합니다.
숭어(崇魚)의 하늘(the firmament of a mullet)
“한눈에 봐도 물고기가 살기 힘들만큼 오염이 심한 울산의 ‘태화강’,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곳으로 숭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렇다면 숭어는 어떻게 산업폐기물과 중금속으로 오염된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는 그 하천에서 견딜 수 있는 것일까 하는 물음에서부터 이 작품은 출발합니다.”
파사무용단의 2009 앵콜공연 <숭어의 하늘>은 태양에서 지구까지 빛 에너지가 도달하는 시간인 8분 20초, 즉 생명의 근원은 태양에서 비롯된다고 점에서 출발한다. 지금도 유효한 8분 20초라는 시간은 생명의 ‘진화’ 과정의 한 모티브인 셈이다. 그리고 오염물질을 거르는 역할을 한다는 숭어의 배꼽이라는, 밤이라는 모래주머니에서 지구의 무궁무진한 생명력의 상징이다. 민물과 바닷물을 오가는 회귀어인 숭어의 밤은 오염이 심한 태화강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진화의 산물이고, ‘하늘을 향해 수면을 박차고 오르는 숭어의 몸짓이 미래를 향한 무한한 도전’이라고 작품의도를 밝힌다.
무용극이 낯선 초보 관객에게는 다소 난해한 공연이지만, 파사무용단이 풀어낸 <숭어의 하늘>은 실력 있는 무용수들의 힘차고 격이 맞는 군무와 하늘을 형상화한 무대, 무대를 거대한 시간의 틀로 상징한 조명, 영상 등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밤이라는 모래주머니가 숭어 외에도 몇몇 어종에게 있고, 실제로 오염물질을 정화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있다고 해서, 숭어의 끈질긴 생명력과 환경오염에 대한 반성이라는 주제가 축소될 리는 없다. 다만, 이 작품이 올해 초연을 올린 작품이 아닌 2006년 이후 앵콜 공연이라는 점에서 무대의 몇 가지 장면 추가 외에도 환경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풀어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초연을 보지 못한 상황이나 09년 올린 작품이 과연 ‘09년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만한 내용을 담고 있는가, 에 대한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MBC뉴스데스크 1996-08-30
80년 대 낙동강 페놀 사건 이후 우리나라의 환경오염과 관련된 수준은 오염 기준치나 관련 기술, 법적 제재 등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왔다. 선진국과 비슷한 환경 기준치를 어느 정도 만족하는 지금, 환경과 관련한 가장 커다란 이슈는 ‘개발’이다. 극에서 다룬 태화강의 예를 들자면 오염 예방 수준이 만족할만한 수준인가를 떠나서 어느 정도는 생태하천의 모습을 되찾은 상황이다. 요즘 강과 관련된 환경운동 진형의 이슈는 운하 등 4대강 정비 반대이다. 운하로 촉발된 4대강 정비사업은, 극에서 등장한 숭어를 비롯해 동식물의 생태를 해친다는 건 당연한 상식이다.
국가성장 동력으로 정부가 택한 가장 큰 사업거리고 보면, 환경적인 측면이 아닌 경제적인 측면에서(대규모 콘크리트사업이 실질적인 성장을 가져올지 논란이 분분하나) 하천을 개발할 논의가 자꾸만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인간의 기준’이다. 그래서 “최근의 급격한 유가 변동성으로 인해 에너지안보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그 해결책으로 녹색산업이 대두되고 있으며, 우리 정부 또한 ‘저탄소 녹색성장’ 비전으로 녹색산업 진입의 청신호를 밝힌바 있다”와 뒤 이은 문장인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발맞춰 <파사무용단>은 ‘숭어의 하늘’이라는 환경복원을 메시지로 담은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자 한다”는 작품 의도는 전혀 상반된 내용을 담고 있는 셈이다.
돌연 “과거 녹색은 주로 환경적 관점에서만 이슈화되어 종종 성장 우선론자들의 반대에 직면했으나”라는 관공서 보도자료에나 나올 말을 하려면 생명의 진화니, 불가사의한 정화능력이니 라는 말을 써가며 생체 기관일 뿐인 ‘숭어의 밤’을 띄울 일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아무렇지 않게 쓰고는 있지만, 음식과 쓰레기, 녹색과 성장은 ‘뜨거운 얼음’처럼 어울릴 수 없는 문법상 의미상 모순이다. 적어도 개발주의자들의 언어이지, 시대의 '잠수함 속 토끼'의 역할을 해야 하는 예술가의 언어는 아니다. <숭어의 하늘>이 여러 장인의 손길이 담긴 그릇인 만큼, 그 안에 보다 치열한 고민을 담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