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家 신년음악회 Warmer than Spring] 봄을 맞이하는 풍성한 클래식의 향연
사색의향기 객원기자로 활동할 때 썼던 기사입니다. 클래식을 당최 모르다보니 변죽만 울린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아래 사진 중에 모금함에 돈을 넣는 사진은 '연출' 사진입니다. 공연보여준다고 데려 간 회사 동료에게 시켜서 찍은 사진이지요. (자세히 보면 빈 손이라는) 아무려나 그 좋은 취지를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무슨 곡을 들었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거의 가보지 않아 긴장 반 기대 반, 그랬지요.
지난 2월 17일(화) 늦은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클래식을 전공한 전문연주자들로 구성된 사단법인 예가(회장 소프라노 오은숙)의 음악회가 열렸다. 봄을 맞이하는 신춘음악회로 ‘봄보다 따뜻한 공연’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음악회는 김주현 국립오페라단 음악감독의 지휘와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연주에 예가 전문 음악인의 풍성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더한 자리였다. 무엇보다 공연의 수익금 중 일부를 소년소녀가장 돕기와 복지시설 아이들 자립기반을 돕는 '둥지만들어주기운동본부'의 후원금으로 사용하는 뜻 깊은 자리다.
영하 8도의 늦겨울 추운 날씨에도 1500명이 넘는 관객들이 콘서트홀을 채웠다. 후원회원 자격으로 참석한 나이 지긋한 관객들 사이로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주사랑(9), 주원종(8) 남매와 친구 사이인 현준하(9), 현동화(8) 남매를 보니 억지로 끌려온 얼굴이 아니다. 지루해하거나 뾰로통할 줄 알았더니 조바심을 내는 모습이 한껏 기대가 되는 눈치다. 정서 함양이랍시고 부모 손에 이끌려 왔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다.
만화가 원작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라’나 ‘베토벤 바이러스’처럼 클래식을 소재로 삼은 만화, 드라마, 영화가 국내외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클래식이 대중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하지만, 아직은 오페라감독 피터 셀라스의 말처럼 클래식은 ‘에이즈 환자’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정도로 위기감이 심상치 않다. 더욱이 클래식 감상이 어른들에게도 엄숙한 긴장감을 요구하는 바에야, 좀이 쑤시는 아이들 등쌀에 조용한 공연장 분위기를 망치는 경우를 종종 봐오지 않았는가.
사진기를 보더니 장난을 치는 모습이 영락없는 개구쟁이들인데 아이들이 원해서 찾은 자리라는 것이다. “피아노를 배우는 사랑이가 계속 꿈을 키웠으면 한다. 동생이나 친구들도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는 어머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이들이 빨리 들어가자고 손을 잡아끈다. 다시 한 번 프로그램을 들여다봐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유명 가수나 게스트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심지어 크로스오버, 소프트 재즈, 뉴에이지 등 일반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배려도 없다. 당연한 것이 이날 음악회는 말 그대로 매우 ‘클래식’한 정기 음악회였다. 그럼에도 개인 연주자 양성에는 많은 노력과 비용을 쏟지만 정작 관객 육성에는 소홀했던 한국의 클래식 음악 풍토로 볼 때, 음악회를 찾은 아이들의 모습은 희망적으로 보인다.
아이들을 인솔하고 온 최은혁 뮤즈음악원장은 “미리 알아보고 왔는데, 아이들이 같이 즐겨도 좋을만한 공연 내용”이라서 선뜻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초등학교에서도 미리부터 입시 위주의 공부를 강요하는 요즘이고 보면 소리에 민감하고 호기심도 많을 아이들이 함께 즐기는 클래식 공연이라니 환영할만한 일이다. 봄을 부르는 음악회에 가장 어울리는 관객들이 바로 이 아이들이 아닐까 싶다.
더하자면 예가에서 후원을 자청한 소년소녀 가장이나 복지시설 아이들이 함께 하는 자리였으면 더 뜻 깊은 공연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클래식 공연을 볼 기회가 많지 않은 아이들에게 공연이 제대로 전달될지도 의문이고, 예술의 전당까지 데려오고 데려가는 일부터 번거롭고 준비할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예가의 주요목적사업으로 문화소외지역 순회공연 계획이 명시된 만큼 아이들을 직접 찾아가는 공연 역시 부지런히 하겠지만, 그런 노력 못지않게 감상을 위한 시설을 온전히 갖춘 곳에서 만나는 클래식은 또 다른 의미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예가 연주자 프로필 중에서 다소 엉뚱해 보이는 프로필이 눈에 들어온다. 음악을 전공한 연주자들 사이에 법학전공자가 한 명 낀 것이다. 예가 특별회원 자격으로 참여한 정강찬 서울고등법원 판사는 테너로 출연해 성악 실력을 선보였다. 현직 판사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솔리스트로 서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하는데, 2004년부터 성악가들로부터 노래를 배우며 자선음악회에 서 온 만큼 실력이 만만치 않다.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흐르는 눈물’(Ten. 김신욱), ‘20스쿠디’(Ten. 김신욱, Bar. 배용남)를 비롯해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고 가장조, K.622(2악장), 베르티의 오페라 <라 트라이아타> 중 ‘축배의 노래’(Sop.오은숙, Ten. 김신욱, Bar. 배용남, Ten.정강찬) 등 2시간에 걸쳐 11곡의 귀에 익은 클래식이 1500여 명의 함께한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공연 중에 사소한 해프닝을 있었다. 지휘자의 지휘봉이 악장 사이에 잠시 멈추었을 때, 박수를 치는 경우가 두어 번 있었다. 이런 해프닝이 클래식 공연의 기본을 무시하는 실례일지는 모르지만, 비교하자면 남들 눈치나 보고 있다가 기립박수를 치며 ‘아는 척’ 과시하기보다는 낫다. 연주와 감동이 서로 교감하는 자리가 공연에 대한 가장 중요한 보답이고, 또 클래식과 친해지는 첫걸음일 것이기 때문이다. 악장 간 박수가 연주의 재시작을 방해하는 실수라는 건 분명하지만, 우선 익숙해져야 좋아지고 친해진다. 그러다 보면 걸맞은 예의를 시키지 않아도 배우고 익히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공연 에티켓을 아예 무시해도 된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또 클래식 에티켓은 클래식을 제대로 감상을 위해서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공연장을 찾은 이용관 베누스토 윈드 오케스트라 단장은 “일반 관객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레퍼토리로 꾸며진 흥겨운 축제의 자리로 이런 기회를 통해 자주 듣다보면 처음엔 귀로 들리던 클래식이 가슴으로 다가오는 때가 있을 것”이라는 말을 전했다. 정통 클래식을 고집하면서도 클래식의 봄바람을 불러올 예가의 대중과 만나는 접점을 넓히려는 노력과 그 행보가 기대되는 지점이다.
글.사진 ㅣ 사색의향기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