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

[형제는 용감했다] 봉봉 형제, 금덩어리로 다시 태어나다

구보씨 2008. 12. 1. 18:00

나름 파릇파릇한 정성화 씨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포스터에 대한민국 국회대상 뮤지컬 부문 수상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그런 게 있었나? 싶게 생경합니다.  2008년 12월, <형제는 용감했다>는 처음 본 소극장 뮤지컬입니다. 두산아트센터 시설을 두고 소극장이라 하기가 뭣 하지만 그렇게 분류를 했네요. <서편제>, <스피링 어웨이크닝>, <메노포즈>를 보면서 익숙해진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본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합니다. 작은 극장에서도 이렇게 짜임새 있게 만들 수 있구나, 감탄하면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알고보니 초연을 2008년 봄에 PMC대학로자유극장에서 올려서 뮤지컬어워즈를 수상한 뒤, 업그레이드 되어 연강홀로 온 작품이었습니다.) 


2010년 말까지 두루 사랑을 받은 작품인데요. 앞으로도 종종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이 때만 해도 장유정 연출, 장소영 음악감독이 누군지 몰랐습니다. 요새 뮤지컬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계신, 뭐 이제는 정상이라고 봐도 될만한 분들이시죠. 정성화 씨도 이 작품을 볼 때 개그맨 출신 정도만 알았는데요. 이후에 <맨 오브 라만차>를 보면서 대단한 배우로구나! 제대로 깨달았습니다. 전 정성화 씨 작품으로 <영웅>보다 <맨 오브 라만차>를 더 좋아합니다. 지금이라고 뭐, 대단한 걸 아는 건 아지만 나름 이것저것 따져보기도 하니 환골탈태를 한 셈입니다.



과연. 종갓집이 대단한 이유가 있다. 편의점에 납품할 정도로 김치를 잘 담가서만은 아니다. 종갓집의 힘은 “유세차~”를 외우면서 절을 올리는 종손들이 아닌 아이스크림 ‘써리원’보다 두 종류나 더 맞은 서른세 가지 제상차림을 다달이 해내는 며느리들에게서 나온다.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는 바로 그 종갓집 며느리 순례의 ‘앉으나 서나 사나 죽으나’ 자식 사랑 분투기이다. 평소 집안일에 몸이 녹아날 지경이지만 치질에 걸려 죽는 한이 있어도 “자고로 가문에 흠이 되는 일은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묵계를 신조로 병원 치료도 받지 않는 며느리들의 지옥, 뼈대 있는 안동 이씨 종갓집은 위기 상황이다.


대를 이를 아들만 둘이 있건만 둘 다 장가는커녕 “말만 양반집 자제들이 하는 짓은 영락없이 개차반”인 까닭이다. 참고로 개차반이란 개가 먹는 차반(茶飯), 즉 똥이다. 강마에 입을 빌자면 말 그대로 “똥 덩어리!”다.  차남 주봉의 말처럼 “양반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닌” 세상, 어쩌면 안동 이씨 종갓집의 마지막 며느리가 될지 모르는 순례의 머리는 복잡하고, 가슴은 애가 탄다. 장손인 석봉은 경마에 다단계로 집안 재산을 일찌감치 말아먹고는 별 볼일 없는 신세다. 똑똑한 차남 주봉 역시 데모하다가 대학도 그만두고 징역살이를 했는데, 형 못지않게 속물이다. 




세상 쓴 맛을 봤으나 봉봉 형제는 여전히 철(Fe++)이 부족한 관계로 거덜 난 집에 내려와서는 석봉은 다단계 옥장판 사업 자금을, 주봉은 외국 유학비용을 대달라고 아버지 춘배에게 떼를 쓴다. (이에 반해 맨발의 기봉이는 얼마나 착한가!) 하지만 재산이라고는 낡은 고택만 남았을 뿐이다. 자식들이 원한다고 선산을 팔수도 없는 일이다. (참고로 보통 선산은 이런 잡놈들 때문에라도 가문 명의로 등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종갓집을 사금고쯤으로 아는 이들이 형제애라고 있을 리가 없다. 석봉은 자신과 달리 똑똑한 주봉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주봉은 장손 특혜를 보는 석봉이 싫다. 아무리 코믹 뮤지컬이라지만 주인공인 형제가 둘 다 이렇게 상투적이면서도 진부하게 철이 없는 응가들이어도 되나? 싶은데 이때쯤 가슴 찡한 대목이 나온다. 




평생 시골 종갓집 며느리로 산 순례에게 자식들이 하는 얘기는 딴 세상 얘기처럼 들린다. 그래도 자식들이 원하는 걸 해주고 싶다. 남편 춘배와 아이들이 방에서 싸우는 동안 들어가 말리지도 못하고 마당에서 안절부절못하더니 화가 나서 대문을 박차고 나가는 자식들의 손에 뭔가를 꼭 쥐어 주는 순례. 돈인가? 아니다. 돌이다! 돈 보길 돌 같이 하라는 탁월한 은유인가 싶지만 실은 순례가 치매기가 있어 정신이 오락가락했던 것이다. 얼이 반쯤 빠진 와중에도 자식을 향한 마음만은 그대로였던 것이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내리 사랑을 한다는 대한민국 어머니의 뜨거운 마음이 절절하게 와 닿는다. 또 순례를 향한 춘배의 무뚝뚝하나 속 깊은 춘배의 사랑도 보기 좋다. 근데 아무리 감동 뮤지컬이라지만 순례와 춘배가 이렇게 지고지순하고 희생적이기만 해도 되나 싶기도 하다. 




어머니 순례가 죽고 3년이 흘렀다. 봉봉 형제는 어머니의 고생과 죽음의 원인이 아버지 춘배에게 있다고 여겨 두 번 다시 집에 내려오지 않았다. 아버지 춘배는 홀로 외롭게 세상을 떠나고, 그제야 장례보다는 종갓집 정리에 눈독을 들인 형제가 “썩~썩~썩~ 썩을 놈 석봉이, 주~주~주~ 죽일 놈 주봉이”라는 동네 먼 인척들의 환대(?)를 받으면서 등장한다. 발인 전까지 남은 시간은 이틀, 축시(새벽 1시)마다 찾아오는 법무사 직원 오로라는 누구며, 또 그녀가 전한 아버지의 유언 “로또가 집안 어딘가에 있다”는 소식은 똥덩어리 봉봉 형제를 금덩어리로 바꿀 수 있을 것인가….

 

다소 억지스런 설정이 군데군데 눈에 띄지만 제 2회 뮤지컬 어워즈 베스트 소극장 부문 수상작답게 작품성과 흥행성, 둘 다 뛰어난 편이다. 또 4명의 조연 배우들이 총 60명의 캐릭터로 등장하는 등 주, 조연 구분없이 뛰어난 연기와 노래 실력을 자랑하는 형제는 용감했다 팀의 호흡이 척척 들어맞는 다채로운 볼거리가 종갓집, 장례식, 가족애 등 무거운 소재와 내용을 감싸 안으면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무대를 꾸민다.*



사진출처 - 두산아트센터

 


[마지막으로 큰 아들 석봉 역 정성화 배우의 인터뷰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