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콘 없는 방] 바람에 낙엽처럼 물위에 종이배처럼
제목 : 에어콘 없는 방(원제 : 유신호텔 503호)
일시 : 2017년 9월 14일(목)~2017년 10월 1일(일)
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희곡 : 고영범
연출 : 이성열
출연 : 한명구, 홍원기, 민병욱, 김동완, 김현중, 최원정, 김경희, 주예선, 심재완, 윤상원, 전주영, 이영재, 신주호, 박정현, 유승민
제작 : 남산예술센터, 극단 백수광부
주최 : 서울특별시
주관 : 서울문화재단, 극단 백수광부
이명박 대통령 시절, 국정원 농단 사태가 다시 불거졌다. 적폐청산이라는 낯선 사자성어가 사회 화두로 10년 전 일을 다시 헤집어 꺼내는 게 과연 사회통합에 도움이 되는가? 라는 질문을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이 제기하지만 국민 대다수는 늦었지만 이제라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블랙리스트로 알 수 있는 문화예술에 대한 통제는 그 영향력을 두려워하기 때문인데, 정권 교체 이후 그간 말하지 못했던 혹은 외면했던 과거로부터 귀환이 영화와 연극에서 두드러진다. 요즘 극장에 걸리는 영화나 무대에 오르는 연극은 갑작스런 정권 교체를 예상하지 못하고 기획한 작품이 대부분이다. 감시와 검열 와중에도 할 얘기는 해야 한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 의해 밝혀질 사실이다.
연극 <에어콘 없는 방>(원제: 유신호텔 503호)은 ‘3·1운동 당시 독립운동을 상하이와 전 세계에 알린 현순 목사의 아들, 1906년 하와이에서 태어나 한국, 상해, 미국을 떠돌며 살다가 해방 이후 한국을 찾은 ’피터 현’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역사의 격랑에서 조선인으로 태어났으나 조선인이 아니었고, 미국 국적을 가졌으나 미국사회의 차별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며, 냉정시대 이념 투쟁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실존 인물의 삶을 1975년 유신호텔 조명한다. 그의 누나 앨리스는 동경하는 사회주의자 박헌영이 있는 북한으로 가서 새로운 조국 건설을 꿈꾸지만 그녀가 미국의 스파이로 낙인찍히면서 박헌영은‘미제의 간첩’, ‘반당 종파분자’로 처형을 당한다. 그녀의 소식 역시 이후로 알려지지 않았다. 피터와 앨리스 남매는 소설이라고 해도 믿기 힘들 만큼 경계인으로 굴곡진 생애를 살았다.
아버지의 유해를 국립묘지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하기 위해 30년 만에 한국을 찾아왔으나 낯선 조국의 한 여름 뜨거운 무더위, 소위‘에어콘 없는 호텔방’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 실체가 없이 24시간 피부로 체감하는 두려움의 상징이자 공간이다. 미국에서 좌익 활동 혐의로 오랫동안 조사를 받은 이력이 있는 그는 유신시대 75년 국정원 사찰에 대한 악몽에 사로잡힌다.
조국에 왔으나 조국에 발이 묶여 누나 꼴이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은, 그가 태어난 해로부터 백년이 흐른 지금 젊은이들은 한국을 헬조선이라 부르며 해외 이민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상황과 묘하게 겹친다. 그의 신경쇠약은 지원 차 나온 직원을 안기부 요원으로, 사방에서 들리는 잡음을 도청 소음으로 착각한다. 그때 젊은 시절 자신이 무대에 등장한다. 의도치 않은 회상은 무의식이 쌓은 방어기제일 수도 있고 혹은 환상일 수도 있다. 단순히 회상이 아닌 이유는 젊은 피터 역시 나이든 피터를 같이 인식한다. 이 작품으로 제 6회 벽산희곡상을 작가는 평행우주론을 꺼내들지만 다소 억지스럽다는 인상을 받았다.
젊은 피터 현은 1936년 대공항기 미국 뉴욕에서 연극을 연출하고 있다.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는 배우들을 강단 있게 이끄는 그는 활기가 넘친다. 하지만 반전과 평등과 공동체를 지향하는 연극을 올려 브로드웨이에 작품을 올릴 기회를 잡는다. 하지만 극단 배우들이 동양인 이름 밑으로 브로드웨이에 서지 않겠다고 파업을 선언하고 그는 무대를 떠난다.
이 장면은 요즘 다시 불거진 미영화게 ‘화이트워싱Whitewashing’(백인이 아닌 캐릭터인데 백색 인종 배우로 캐스팅하는 행태를 의미) 논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참고로 영국배우 에드 스크레인이 맡지 않겠다고 하차하면서 화이트워싱 문제를 불러일으킨 영화 ‘헬보이' 리부트 판 일본계 미국인 벤 다이미오 역을 한국계 대니얼 대 김이 맡기로 했다.]
남산예술센터의 반원형 열린 무대는 좁은 호텔방으로 꾸미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오히려 소극장 답답한 무대가 더 잘 어울릴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 회상 혹은 환각에서 무대를 앞뒤로 활용하고, 바닥을 뜯어 그의 무의식에서 건져 올리듯 박헌영을 불러오는 듯 나름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암전 상태에서 무대전환이 되지 않는 이상, 연기 중에 무대전환은 서로 호흡을 맞추는데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시간도 제법 걸리고 앞뒤로 움직이는 뒷벽은 다소 불안하기도 하다.
v
미국 뉴욕에서 연출가 시절을 회상하면서 배우들이 무더기로 등장하는 장면은 이성열 연출이 이끄는 백수광부 젊은 배우들을 활용한다는 데 의미가 있지만 응축한 긴장감이 풀리기도 한다.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배치했다고 볼 수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다소 배우 낭비처럼 보이기도 했다. 중앙으로 집중한 무대만 보면 남산예술센터와 잘 맞는 희곡이 아니라고 볼 수 있지만 세트 너머 무대 나머지 여백, 조명이 비추지 않아 컴컴한 여백은 호텔방이 칠흑 바다 위에 떠 있는 뗏목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유랑자로 한국, 중국, 미국을 떠도는 막막함으로 다가온다.
결말부에 다다르면 실존 인물의 실제 사건을 다루는 만큼 다소 전형적으로 그려진다. 보험중개인으로 살다가 은퇴한 피터 현의 말년은 행복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가족사를 자서전을 남겼듯이 “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어. 벽에 부닥칠 때마다 온 몸으로 부딪치면서 싸웠어!”라는 대사가 과장이라고만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는 1993년 작고했지만 작가의 말과 연출의 머리와 배우의 몸을 빌려 돌아왔고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박헌영과 현앨리스(상하이, 1921년): 박헌영(1열 오른쪽 세 번째), 현앨리스(2열 오른쪽 두 번째), 주세죽(2열 오른쪽 첫 번째),
현피터(1열 오른쪽 첫 번째) ⓒ 원경, 출처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정병준 지음, 돌베개, 2015)]
사진출처 - 남산예술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