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창조경제 공공극장 편] 나의 창조활동이 나의경제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구보씨 2017. 7. 23. 03:14

제목 : 창조경제 공공극장편

일시 : 2017/07/06 ~ 2017/07/16

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구성/연출 : 전윤환

출연 : 극단 앤드씨어터, 극단 불의 전차, 극단 신야, 극단 잣 프로젝트, 극단 907

제작 : 남산예술센터, 극단 앤드씨어터

주최 : 서울특별시

주관 : 서울문화재단, 극단 앤드씨어터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1호 일자리 정책은 국회 추경예산 심사 과정에서 여야 입장 차이로 발목이 잡혔다가 오늘(07.22)에서야 실마리가 풀렸다. 이를 두고 공공부분 10만 개 일자리 창출이 옳은 방향인지 그 동안 의견이 분분했다. OECD기준으로 한국 공무원 수가 적으니 뽑아야 한다는 의견과 공무원 증원이 앞으로 엄청난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의견이 대표적으로 상반된 경우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일자리 정책이 한국 사회에 어떤 변화와 영향을 끼칠지 두고 봐야겠지만, 적어도 졸속으로 시행되었던 과거 일자리 정책과 다른 점이 있다. ‘창조경제’라는 식의 우주의 기운이 묻어나는 신비하고 오묘한 구호가 더 이상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과정과 결과에 책임을 국민이 고루 져야 한다면 다양한 의견 청취가 필요하고, 더디더라도 그리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광화문 정치 세대’의 등장은 힘들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연극 ‘창조경제_공공극장 편’은 전윤환 연출의 의도와 상관없이, 추경예산 통과 과정과 맞닿은 질문을 던진다. ‘…공공극장의 서포트로 이룬 작품 제작인프라의 양적확대는 이들의 창조적 경제활동을 몇 배로 증진시켜줄 수 있을 것인가?’(공연 소개 일부) 공공지원이 연극의 양적 성장에는 이바지했지만, 한편으로 순수예술에 치중하는 빈곤한 예술가들을 양산했다는 비판이다. 



극단 앤드씨어터


영향력이나 파급력을 보면 대중문화라고 꼽기 힘든 연극계가 박근혜 정부가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유독 강한 영향을 받은 데에는 공공지원을 받지 않으면 연극을 올리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검열이 있기 전에도, 한도가 있는 지원금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경쟁 과정이 공정한가? 이번 작품에 참가한 젊은 극단들은 작품이 아닌 기획서로 심사하고 결정하는 기존 공공지원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상대적으로 작품 수가 많은 기성 극단이 유리한 데다, 연극계 인맥이 영향을 미칠 여지가 있기도 하다. 무대 경험이 적은 젊은 연극인들은 설 자리가 줄고, 그 와중에 신인상처럼 받던 인큐베이팅 지원이 끝이 난다. 


그나마 여러모로 비보만 들리던 예술계에 다행스러운 소식이 들린다. "예술인들이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고용보험과 어려울 때 융자를 받을 수 있는 예술인 복지금고 등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만들겠다"는 구체적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도종환 "'예술인복지 국가 왜 나서나'는 말은 안 돼"(종합) [뉴스1 2017-07-07] 어느 정도 시스템을 갖춘다면 그들 스스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한다‘, 는 압박을 일정 부분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극단을 한 지 10년 됐는데 6년 정도는 모든 지원사업에서 떨어지면서 '왜 난 안되는 거지'라는 열등감이 있었다"는 전윤환 연출의 고백은 공공지원에 대한 비판 이전에 지원을 받고 싶은 욕구 혹은 받아야 하는 현실이 섞인 양가감정이 드러난다. ‘창조경제_공공극장편’은 공공지원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했던 젊은 연극인들이 좋은 환경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무대라는 데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관객 입장에서 보면 공공극장 공연이 아니면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극단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극단 불의 전차

 

그러나 단순히 관객과 극단 사이 만남과 주선이 연출 의도가 아닐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작품은 앤드씨어터가 '2015 혜화동1번지 6기동인 가을 페스티벌 참가작 ‘창조경제’' 두 번째 버전이다. 기획서만 보고 지원금을 결정하는 방식과 기준이 납득이 가지 않으니, 경쟁을 해야 한다면 공정하게 작품으로 겨뤄야 한다는 제작 의도는 올해 남산예술센터가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에도 어느 정도 부합한다. 남산예술센터 2017년 공연 리스트를 보면 혜화동1번지 동인 출신의 작품을 발전시킨 작품, 혹은 완성도를 떠나 작품 리부팅을 돕는 방식이다.


남산예술센터 2017 공연 기획 축소판 버전 격인 ‘창조경제_공공극장 편’은 공공지원금 가운데 따로 뗀 1,800만원 상금을 걸고 불의 전차, 신야, 잣 프로젝트, 907 등 극단 4곳이 ‘나의 창조활동이 나의 경제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주제로 벌이는 13분 공연을 올려 관객의 투표를 통해 1등을 선정한다, 고한다. 


“나의 창조활동이 나의경제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도발적 언설은 연극(예술)은 신성해야 한다는 금기에 도전하고, 생존하기 위해 경쟁을 강제하는 구조를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 천주희 문화연구자, 팸플릿 논고 일부

 

그렇다면 전윤환 연출이 10년 고된 경험을 바탕으로 내세운 대안을 시험하는 이번 기회가 비슷한 처지인 연극인들의 이목을 끌고 호응을 이끌어냈을까. 서바이벌 예능에 참가하는 신인들이 참가하는 이유가 우승에 앞서 홍보에 있다는 걸 감안하면 일정 부분 언론의 주목도 받고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선발 과정이 생략된 채로 관객에게 선보이는 본선 무대인 실제 연극만 봐서는 서바이벌에 참가할 팀을, 이른바 예선 없이 바로 결선에 오른 4팀이 생경하기만 하다.  



극단 신야


참가자들이 본선 무대에 오르기까지 예선 심사 과정을 생략하는 서바이벌 예능 기획이 있는가? 심사위원들이 참여하는, 그 멀리 미국, 유럽, 남미까지 찾아가는, 예선 심사는 공정성을 덧입혀 서바이벌 오디션에 시청자를 몰입시키기 위한 중요한 기본 틀이다. 참가자의 후일담으로 불거지는 ‘악마의 편집’ 논란을 두고, 방송사가 민감하고 재빠른 대응 역시 최대한 공정성을 유지한다는 식의 기본 판을 지키려는 몸부림이라고 봐야한다. 그러나 ‘창조경제 공공극장 편’에서는 4곳 극단을 누가 어떻게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는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서바이벌 예능의 불문율이 무너지니 그들의 무대가 나름 유쾌하지만 흥미진진하게 몰입할 정도로는 아니다. 관객 투표로 결정한다는데 감정이입이 되지 않으니 개별 무대를 즐기면 그만, 투표를 굳이 할 이유가 없다. 


기본 전제를 무시하고, 그들끼리의 리그가 되어버리니 기획서만으로 받고 못받고 결정한다는 공공지원 제도의 불합리성에 대한 불만이 무색해지는 이율배반이다. 경쟁 구도 자체가 모큐멘터리mocumentary 방식일까 싶었지만 인터뷰 기사나 팸플릿에 정색하고 한 말과 쓴 글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도대체 허점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 이 기획의 의도는 무엇인가. 


나는 갈등을 믿는다. 그 외에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내가 작업에서 내가 시도하려는 것은 갈등에 대한, 모순과 대결에 대한 의식을 강화시키는 일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답과 해결은 내게 흥미를 주지 못한다. 나는 어떤 해답이나 해결도 제공해 줄 수 없다. 내게 흥미로운 것은 여러 가지 문제와 갈등이다. 


극장에 들어서면 무대 막에 투사한 독일 극작가 하이너 뮐러의 글이 눈에 들어온다. 극단 내부 혹은 극단들 사이 생소한 방식을 도입하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벌어지는 갈등의 불연속성을 끌어내는 게 연출보다 기획, 구성에 가까운 전윤환의 의도인 듯하다. (뮐러의 글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이유가 전체 조율 책임지지 못한 데에 대한 변명처럼 보여 안쓰럽기도 하다.) 극단 당 13분씩 4곳 도합 52분 경연 외에  관객 투표를 빼고 40분 정도 무대는 리포터 역을 맡은 앤드씨어터 배우들의 불만, 비난, 불평, 타협, 변화 과정을 담았다. 그 와중에 배우도 아닌 조연출이 무대에 나와 연출이 천명관의 인터뷰를 생뚱맞게 삽입했다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문단 카르텔을 비판하는 천명관 인터뷰는 매우 직설적이다.) 남산예술센터 지원을 받을 때 사용한 '틀-예능 서바이벌 방식'을 두고 그들 내부에서 합의하지 못했고, 토론의 과정 중에 있다고 고백하는 식이다. 그러나 공연 확정 이후 누가 받든 지원금으로 올리고 상금을 타는 구조가 짜인 다음의 갈등은 재방송 마술, 스포츠 중계를 보듯 허탈하다. (하이너 뮐러의 글을 그대로 차용한 건 역설법일지도.)    



극단 잣 프로젝트


마무리할 자신이 없다면 무리하지 말았어야 한다. 관객을 무대 위로 올려 줄을 세우는 투표 방식은 하지 말았어야 할 실수다. 치열한 선발 과정도 없고 경쟁을 하고 싶다는 건지 아닌지 모호한 상황이 빚은 부조화가 빚은 부담을 관객 몫으로 떠넘긴다는 인상을 주고 만다. 앤드씨어터가 정했든 극단들끼리 합의를 했든 투표 예시에 ‘당선작 없음’이 없으니 1,800만원을 독식하건 나누건 관객의 관심사는 아니다. 더해 제작비로 쓰임새를 정한 서울문화재단 사업비를 증빙이 필요 없는 상금 형태로 지급하는 게 문제의 소지는 없는지 우려스럽다. 관련하여 무대 위에 줄 세우기식 투료 방식이 관객이 동의했다는 근거로 삼으려는 의도가 아닌지 괜한 의심마저 든다. 


(…)


7월 17일, ‘창조경제_공공극장편’ 관객 투표 집계 결과를 발표했다. 경쟁찬성 631표, 경쟁반대 455표로 돌일 분배가 아닌 최다 득표 극단 ‘불의 전차’(467표 중 260표)이 상금을 받았다. 더불어 공지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실렸다. 예능서바이벌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우승자 발표 순간이다. 하지만 관객의 반응 탓인가, 사과문이다. 


앤드씨어터가 창조경제 기획을 ‘민간극장 편’이나 ‘기업 편’으로 확장할 수 있다면 ‘공공극장 편’을 통해 겪은 경험은 자양분이 될 것이다. 소설가 천명관 지적처럼 문학 외에 회생가능성이 없는 예술 분야에서 공공지원금으로 유지하는 게 옳은가, 지원한다면 경쟁 없는 지원이 가능한가. 연극 '창조경제'가 던지는 메시지들은 창조경제, 라는 신조어가 박근혜의 입을 빌어 나오면서 골치 아픈 화두가 된 뒤로 생각할 여지가 많은 화두가 되었다.


■ 사과의 말씀

불편하게 느끼실 수 있는 투표 방법을 지켜봐 주시고 직접 참여해주셔서 관객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매 공연과 투표마다 최선을 다하였으나 투표 과정 중 미처 생각지 못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거나 준비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의 말씀드립니다. 

원활하지 못한 진행과 더불어 실수가 나오지 말아야 하는 투표 집계에서 오류가 있었음을 밝히며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공연 중의 투표 집계 발표와 다소 차이가 있었던 부분을 정정하여 공개합니다.


http://www.nsartscenter.or.kr/Home/Community/NormalNotice.aspx?Mode=r&IdNormalBoard=1799 



극단 907


사진출처 - 남산예술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