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 이태준, 조선의 모파상을 무대에서 만나다
제목 : 달밤
일시 : 2017/06/08 ~ 2017/06/18
장소 : 미마지 아트센터 물빛극장
출연 : 김현중(이선생 역), 홍현택(황수건 역), 박경주(김윤건/불우선생 역), 강인대(가네무라/북한장교 역), 김상우(원배달 역), 서유덕(방물장수 역), 이효애(여가수 역), 신유주(배급원/인민방송원 역), 이경주(머루 역)
원작 : 이태준
각색/연출 : 유명훈
무대디자인 : 박동기
조명디자인 : 유성희
조연출 : 박화홍
기획 : 김다정
제작/주최 : 극단 시지프
상허는 ‘소설은 인물의 발견이다’라고 주장할 만큼 인물을 위주로 작품을 창작하였고, 작품의 의도를 전적으로 인물에 의존하여 실현하였다. 리태준 소설의 인물은 형상화와 현실인식의 변화의 추이에 따라 고찰할 수 있다. 현실 상황의 변모에 따른 현실비판적인 작품들로 자신의 문학관에 입각하여 창작한 초기작품(1925~1938), 상황의 압력아래 회의와 반성을 전제로 새롭게 변모된 중기작품(1939~1943), 해방 후 이데올로기적 인식체계 속에서 쓴 후기소설(1945~1952)로 분류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리태준 (북한문학사전, 1995. 11. 20., 국학자료원)
극단 시지프의 연극 ‘달밤’은 소설가 이태준(1904~1960 사망 추정)의 단편소설 ‘달밤’(1933)을 각색해 이태준의 삶을 전반에 걸쳐 소개한 작품이다. 이태준 작가는 서정성 짙은 작품 경향을 정착시킨 소설가로 인간 세정의 섬세한 묘사나 동정적 시선으로 대상과 사건을 바라보는 자세로 단편소설의 서정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인물 형상화에 능해 무대 위에 올리기에도 좋다.
이태준의 초창기 대표소인 달밤의 주인공 황수건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당시 핍박받는 조선인을 간접적으로 빗댄 인물이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직장이며 장사며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어수룩한 반편이이나 순수함을 잃지 않는 인물이기도 하다. 황수건을 비롯해 당시 작가의 시선으로 본 조선인들의 삶이란, 해가 진 뒤 바라본 본 풍경처럼 이렇다 할 게 없이 어두침침하고 희미하기만 하여 앞이 보이지 않을 성 싶은 무엇이었다.
하지만 달이 비추는 밤 풍경처럼 은은하고 오래 마음에 남는 모습으로 묘사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연극 역시 이 부분에 천착해서 황수건(홍현택 역)을 비롯해 방물장수, 가수, 장사꾼, 동네 아이들 등 당시 상황을 구현하는데 공을 들였다. (허나 신생 극단으로 지원을 받지 않는 이상, 여의치 않은 제작 여건이 무대 대도구 등 아쉬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영악하지 못하고 여물지 못한 황수건은 일제 당시 무능력한 지식인으로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자, 동정의 대상으로 조선 민족, 조선인으로 보인다. 단편 소설과 달리, 연극에서 황수건은 해방을 맞이하고 월북한 이후 정치적 상황에 따라 휘둘리다 숙청을 당한 이태준이 과거를 그리워하며 회상하는 대목에서 돌변해 강하게 비판하는 인물(허상)로 등장하기도 한다. 극 맥락을 보면 주체사상을 앞세운 북한 인민들에게도 서정적인 작품을 쓰다가 외면 받는 인물로 보인다.
연극은 이태준의 월북 이유를 드러내지 않은 채, 핍박을 받으며 쓸쓸히 죽음을 맞는 말년을 보여준다. 연출은 ‘6.25전쟁과 북의 사상에 글이 오염되는 과정에서도 민초들을 향한 시선을 잃지 않았다’라고 각색 의도를 밝혔다. 당시 월북 예술가들이 북한의 문화 통제 하에 숙청과 추방을 당한 게 사실이나, 1987년 ‘6·29 선언’ 이후 1988년 납·월북 문인 해금 조치 전까지 남한에서도 월북 작가의 작품은 내용과 별개로 금서일 만큼 민감한 문제였다. 월북 당시 김일성 종합대학 학생들 사이에 “러시아에는 체호프, 프랑스에는 모파상, 미국에는 오 헨리, 조선에는 이태준이 있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찬사를 받았던 이태준이 한국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 역시 남북 간 정치적인 이유라고 봐야 한다.
가족사진
이태준이 카프와 대립각을 세우고, 프로문학에 반대하는 순수문학의 대표적 단체인 구인회를 결성하여 주도한 것을 보고 그가 좌익사상과 거리가 멀다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태준이 카프에 반대한 것은 현실참여를 주장하는 프로문학의 경향성에 반대한 것이지 결코 그 좌익사상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그 증거로 이태준은 해방 후 조선문학가동맹 부위원장, 북조선예술문학예술총연맹 부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전쟁 전에도 여러 번 김일성을 찬양하는 낯 뜨거운 글을 쓰기도 했다.
(…)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도 금지되어 문단에서 거의 언급되지 못했으며 고향에서도 철저하게 묻혔다. 피치 못할 경우 언급하려면 '이○준'정도로 마지못해 언급되는 정도였고, 당시 이태준에 대한 연구하려던 어느 학자는 그의 고향 사람들에게 욕설과 같이 모욕도 당했던 적도 있다. 박헌영처럼 남북 모두에서 외면당하는 그런 부류가 된 것이다. - 이태준, 나무위키https://namu.wiki
해방 이후 당시 많은 지식인, 예술인들이 월북을 선택한 데에는 만민평등 이상사회에 대한 기대가 컸고, 이태준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 하지만, 알려진 행보를 보면 마냥 이상을 좇는 인물은 아닌 듯하다. 그가 정치적인 작품을 쓰지 않아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는 뉘앙스의 연출도 현실과 다른 점이 없지 않다.
이태준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볼 것인가, 는 연출가의 몫이다. 나름 고교시절 황국신민 교육에 반발해 학내 시위를 주도해 쫓겨난 일화나 학교에 반항조선 예술상을 받은 친일 행적을 연극 안에서 언급하기도 한다. 이 작품이 이태준의 작품세계, 특히 뛰어난 필력을 드러낸 초기 작품 세계에 집중해 풀어낸 이유를 짐작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호의를 가지고 풀어내 각색한 이태준은 전개에서 얼추 짐작가능하기도 하여 밋밋하게 보이기도 한다.
객관보다 주관이 앞서고, 이성보다 감성으로 한 인물을 접근했다고 해서 그의 삶을 왜곡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문장강화’를 발표하면서 당시 한국문학사에 남을 인물로 꼽혔던 ‘이태준’을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른 작품에서 눈에 익은 이태준 역 김현중 배우, 소설 속 인물을 꼭 빼다박은 황수건 역 홍현택 배우, 올해 서울연극제 작품상을 수상한 '페스카마-고기잡이배'에서도 열연했던 박경주 배우를 비롯해 열의로 가득한 젊은 배우들이 함께 하는 극단 시지프의, 신화 속 시지프스가 그러했듯 고단하지만 의미있는 행보를 기대한다. *
사진출처 - 극단 시지프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