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오아시스세탁소습격사건_시즌 1] 세월은 흘러도 세탁소 습격은 여전해

구보씨 2015. 7. 1. 12:35

제목 :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기간 : 2015/07/01 ~ 2015/09/13

장소 : 미마지 아트센터 풀빛극장

출연 : 조준형, 이재훤, 정래석, 문상희, 정종훈, 고훈목, 송성애, 정연심, 박옥출, 박은미, 공혜진, 안소정, 김명애, 최정만

대본 : 김정숙

연출 : 권호성

주최/제작 : 극단 모시는사람들



대학로에서 오픈런을 하는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오픈런을 한다고 해서 모두 좋은 작품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러나저러나 여러모로 열악한 공연계 종사자들에게 악착같이 견디는 작품이 있다는 건 나름 한줄기 희망 혹은 넓디넓은 사막 한 가운데에 있는 오아시스와 같은 의미일 게다. ‘오아시스세탁소습격사건’은 제목이 그러하고, 2대에 걸쳐 50년 이상 한 자리에서 세탁소를 하면서 견디고 견디어냈다는 배경을 가지고 있어 극중 허구와 극 밖 현실이 나름 부합하는 작품이다.

 

세탁소 안이 무대라 세트며 소품이 동네 골목길에 있을 법한 오래된 세탁소를 그대로 옮긴 듯 정겹다. 미마지아트센터 소극장이 답답하고 좁은 감이 없지 않지만 소극장용 작품치고 짐이 많으니 이동이 여의치 않다. 그러므로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공연을 올리는 오픈런 방식은 장점이 있다. 작품 자체로 인정을 받고 널리 알려진 작품이라 지역 지자체 등 초청공연으로 수익을 낼 여지가 있다. (초청공연은 수익성이 높은 편이다. 오픈런을 하는 작품들은 비슷한 전략을 가지고 있다.)

 

원년 배우들이 함께 한 무대는 그들의 삶처럼 자연스러운 연기에 안방에 앉아 서민들의 일상다반사를 다룬 인간극장을 보는 듯 편안하다. 짧게는 수일부터 길게는 수개월 혹은 해를 넘기기까지 같은 역할을 연기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매일 반복해서 공연을 하는 와중에 저차 관객이 줄고, 점차 느는 빈 객석을 보면서 연기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2003년 5월 예술의 전당에서의 첫 공연으로 시작한 연극<오아시스세탁소습격사건>은 그해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비롯하여, 많은 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03년 대학로 전용극장에서 오픈런 공연을 시작하여 2011년 12월 공연종료까지 4,396회 공연, 33만 관객 돌파의 기록을 남겼다. 또한 2010년부터 중학교 국어교과서(미래엔, 천재교육, 금성출판사)에 수록되는 등 다양한 기록을 남기며 국민연극으로 자리매김하였다. - 소개 글 가운데

 

시대가 달라졌고, 세상이 바뀌었다. 하지만 세탁소는 흐름을 덜 타는 듯도 하다. 오며가며 동네 세탁소를 밖에서 볼 때 그렇게 보인다는 정도라, 쉬이 장담할 수는 없다. 아무리 잘났다고 한들 옷 안 입고 다닐 수 없고, 안 빨고, 안 고치고 살 수 있을까 싶다. 패스트패션이 유행이라 세탁소에 맡기느니 수거함에 넣고 새 옷을 사는 편이 싼 경우도 있다. 직장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니 양복을 맡기는 경우도 적을 테다.

 

동네 자영업이 없어지듯 세탁소도 사양산업에 속한다고 하니, 오아시스세탁소처럼 대를 이어 세탁업을 하는 시절은 다시 오기 힘들 것이다. 세상이 변하니, 오아시스세탁소처럼 착한 주인이 있어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곳이 살아남을 확률은 더 적다. 극중 중병을 앓는 노인의 대소변을 받아낸 속바지를 빨아주는 세탁소가 과연 있겠는가. (내가 세탁소 주인이라도 절대 빨지 않는다.)



 

세입자들은 떠나기 마련이고, 부잣집은 동네 세탁소 솝씨가 명품을 맡기기에 미덥지 않다. 말마따나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이 있으니 웬만한 얼룩 정도는 굳이 세탁소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대충 집에서 해결한다. 이도저도 안 되는 독한 옷들만 세탁소에 온다. 독한 녀석들은 독하고 강한 세제로 다스려야 할 것이고, 자연 사람들도 독해질 것이다.

 

언젠가는 이 작품이 아니면 알지 못할 에피소드들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신분증을 맡기고 옷을 빌려가는 무명배우의 모습처럼. 넋두리는 그만. 두 번째 버전을 먼저 보고, 첫 번째 버전을 이번에 본 입장에서 첫 번째 버전이 더 살갑다. 배우들은 그때고 지금이고 오래 입어 익숙한 옷을 입은 듯이 참 자연스럽다. 서민들의 애환을 능청맞게 풀어낸 작품이 오랫동안 사랑받기를 바란다. 교과서에도 실렸으니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와도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학생 대여섯이랑 나란히 앉아 같이 연극을 봤다.*

 

사진출처 - 극단 모시는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