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위대한 유산] 미지근하지만 2014년 연말 연극 다운

구보씨 2014. 12. 3. 17:50

제목 : 위대한 유산

기간 : 2014.12.03~ 2014.12.28

장소 : 명동예술극장

출연 : 김석훈, 오광록, 길해연, 조희봉, 정승길, 이혜원, 이화룡, 김현웅, 양영조, 양동탁, 문수아, 최성호, 변민지, 박유진

작가 : 찰스 디킨스

각색 : 김은성

연출 : 최용훈

제작 : 명동예술극장





명동예술극장 객석에 앉으면 확실히 다른 극장에 비해 나이 지긋한 중장년 관객이 많이 눈에 들어온다. 일반적으로 ‘완고하지만 한편으로 충성도가 높다’고들 하는 분들이고, 디킨스의 작품을 한다고 할 때 <크리스마스 캐럴>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명동예술극장 라인업을 마무리하는 <위대한 유산>은 극장을 찾는 팬들에게도 한 해 공연을 갈무리하는 공연이 될 만한 작품이다. 콘서트는 말할 것도 없고, 발레나 오페라와 달리 연극은 굳이 연말 분위기를 타지 않는 바라, 좋은 기획이라고 본다.

 

참여 배우들이 TV나 영화로 익숙한 이들인데다, 조연으로 등장하는 정승길, 양동탁도 그렇고 최고 수준으로 섭외했다. 이 정도면 가족 단위를 겨냥한 나름 품격 있는 클래식한 작품을 기대해볼 만하다. 작가로 디킨스는 익숙하지만 작품으로 <위대한 유산>은 낯설다. 연극을 자주 보는 관객들, 이를테면 모니터 요원인 나는 작품 자체로 궁금하고, 김은성 작가가 각색을 맡았다니 기대가 더 크다. 최용훈 연출은 내 기억에서 무난한 일상을 작품으로 올리는데 강점이 있는 연출가다. 그렇게 <올리버 트위스트>와 <크리스마스 캐럴> 중간 어디쯤을 상상하고 작품을 봤다.

 


 

작품은… 무난하다. 어쩌면 명동예술극장 만의 공을 들인 무대 세트나 의상, 소품 등 손이 많이 가는 세심한 작업물이 눈에 익어 덜 감명을 받은 탓일 수도 있다. 명동예술극장의 다른 작품들도 그렇지만 이 작품 무대는 여러모로 발레나 오페라 무대로 그대로 활용해도 좋을 만하고, 카탈스럽기로 유명한 라이선스 뮤지컬의 그것이라고 해도 좋을 만하다. 다만 김은성 작가가 장편을 각색하는 과정에 대한 고충을 이야기했으나, 눈에 보이는 결말이라도 나름 신파극으로 감동을 주는 디킨스 특유의 무엇, 17세기 영국인들이 사랑한 대중작가 디킨스의 매력도 줄었고, 김은성 작가 특유의 세상을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도 보이지 않는다.

 

테네시 윌리엄스 <유리 동물원>을 원작 삼아 김은성 작가가 배경을 동시대 대한민국으로 바꿔 각색해 올린 <달나라 연속극>은 명동예술극장에서 본 <유리동물원>과 다른 지난한 아픔이 절절한 작품으로 기억한다. 소극장용 작품은 그가 한예종 출신들과 만든 극단의 대표 레퍼토리가 되었다. 

 

 

 

현실에 대한 아픔관객 제각각 호불호가 어찌되었건, 연극이 상품인 동시에 예술로 가치가 강하게 남은 장르라면, 어떤 식으로든 끝까지 밀어붙일 때 감흥이 솟기 마련이다. 대본, 연출, 연기가 뭐가 되었든 어중간할 때 관객은 당황하거나 지루함에 빠진다. <달나라 연속극>을 한예종에서 발표작으로 보면서 김은성은 열악한 조건을 대본의 힘으로 주욱 밀어붙이는 힘이 대단한 작가, 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위대한 유산>에서 느낌 아쉬움은 뭘까? 주요 배역임에도 내용을 쳐내기 바빠서였을까. 여러 사연을 품고 있지만 좀처럼 와 닿지 않는 캐릭터, 헤비셤이나 맥워치는 배우 자체의 연기력으로 극복한 경우라고 보는데 각색이나 연출이 어떤 인물을 세웠는지 보이지 않는다. 사랑극이라고 보기도 애매하고, 시대극이라고 보기도 애매하고 자신을 극복했다고 보기도 어렵고, 작품이 중심을 잡지 못한 듯하다.

 


 

사실, 그간 명동예술극장 공연작을 보면 선입견이 없는 신진 작가, 연출, 배우들에게는 가능성을 실현하고 끌어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 화려한 라인업에 비해 기대치를 채우지 못할 때가 있었다. 다른 말로 하지만 잘 다듬었지만 무난한 작품 정도라는 것이다. 참여하는 스태프 들의 속내를 알 길이 없지만 주눅이 들어서일까. 작품들이 대체로 조심스럽다는 인상이 강하게 받는다.

 

앞서 올린 <반신>이 그렇지 않은 사례인가 싶지만, 배우들의 긴장도랄지, 작품 이해도가 낮다는 인상도 그렇고, 뭔가 옷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상은 비슷하다. 아무래도 명동예술극장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그래서일 수도 있다. 품격 있는 작품을 권위로 읽어내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볼 만하다. 오히려 그랬으면 좋겠다.

 


 

<반신>이 작품에 대한 배경 설명을 팸플릿과 홈페이지 교육 자료를 통해 관객과 공유했을 때, 작품만 봐서는 이해가 힘들 수도 있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봤다. 무난한 가족극이라고 봤던 <위대한 유산>이 개막 이후 작품 이해를 돕기 위해 올린 자료를 보면 빠르고 좋은 판단이지만, 작품 안에서 풀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는 데에 문제점을 인지했다고 봐야할지, 궁금한 부분이다.

 

각색, 연출은 물론 연습부터 긴 공연기간까지 <위대한 유산> 정도 배우 라인업을 끌어낼 수 있는 제작 극장은 명동예술극장이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제작비 차원이 아니다. 극장 자체로 품은 아우라가 그렇다. 제작 결정 이후, 작품에 대한 권한은 예술가들의 몫이다. 또 극장에서 어느 수준까지 관여하는 잘 모르기도 하다. 다만 관객들의 기대치와 극장이 요구하는 완성도가 다르지 않다면 콘셉트부터 세부 조율을 긴밀히 했으면 한다. 김은성보다는 예민함이나 총명함은 덜해도 좀 더 노련한 누군가가 했다면 좀 더 흔한 신파극으로 흐를지라도, 나을 수 있다.*

 


 

사진출처 - 명동예술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