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해링 전시회POP ART SUPERSTAR, KEITH HARING] 그는 누구? 나는 누구?
어제 남들 보기에는 별 것 아니지만 생각보다 고단했던 지역 작은 음악회를 진행하고, 행사 뒷마무리를 하고, 31일 2017년 마지막 날 오후까지 늦잠을 자다가 3시쯤 공장 기술자로 일하는 친구가 종무식을 마친 뒤 취한 채로 전화를 하길래 나가려고 하다가, 집에 일이 있어 잡힌 채로 있다가, 이번에는 집 앞까지 찾아온 후배에게 얼결에 선물을 하나 받고는, 근처 살기는 하지만, 아무려나 밀린 일은 일이고, 오늘은 술을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굳힌 참에, 어젯 밤 늦게 업무 메일 보내고는 내 일은 끝났다, 하였다가, 업무 전화를 받고 술자리에 나갔더라면 못했을 일이라, 부랴부랴 여기저기 전화해서 처리하고 헛웃음을 짓고는. 허 참!
이런 소소한 일상을 적는 이유는... 흠... 4년 전에 본 전시회 리뷰에 인생을 반성했다는 한 문장 때문이란 말입니다. 후배 중 한 명은 파산을 하고 2년 넘게 고생을 하다가 다행히 좋은 직장을 옮기게 되었고, 공무원 쯤 되는 문화재단 다니는 역시 인턴이니 뭐니 4년 넘게 고생했던 후배에게서는 늘 그렇듯 반가운 문자가 오고, 또 오래 잊고 있던 선배에게도 연락이 오니 좋은 하루라고 해야 하나. 사는 게 뭔지는 참 모르겠어요. 아무튼 '반성'은 반복하더라도 했다가 까먹더라도 해야겠습니다. [2014.12.31]
전시 : 팝아트 슈퍼스타, 키스해링 POP ART SUPERSTAR, KEITH HARING
일시 : 2010년 6월 17일(목) ~ 9월 5일(일)
장소 :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 전관
주최 : 국민체육진흥공단, 매일경제
주관 : 소마미술관, 앰허스트
팝아티스트 키스 해링의 사후 20주년 기념전시회는 팝아티스트 특유의 아이콘으로 풀어낸 가볍고 유쾌한 전시회일 거라고 생각했다. 전시 이름부터 ‘팝아트의 슈퍼스타 키스해링 전’이 아닌가. 그러나 정작 그의 작품은 가볍게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는 왜 작품 속에 동시대 경쟁 구도에 있었을 다른 팝아티스트들의 작품과 이미지를 거리낌 없이 집어넣을 수 있었을까.
주로 ‘무제’라는 제목이 달린 그의 작품들 중에서 화면을 가득 채운 몸속에 작은 인간들, 혹은 개를 비롯한 천사, 악마, TV, 괴물들이 한데 뒤섞여 있는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혼란스러운 구도와 배치를 이룬 작품은, 그의 머릿속을 그대로 투사한 듯이 보인다. 머릿속을 투사했다라, 쓰고 보니 지극히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생각을 손끝을 통해 몸 밖으로 표현할 때, 누구나 가지고 있기 마련인 거름망, 대체로 윤리, 품격, 자존심, 시선 등이 그에게는 작용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소마미술관에서 기획한 키스 해링 전시전은 6곳 전시실을 구성했다. 그리고 각자 전시실을 미처 적응할 새도 없이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작품들로 채웠다. 짧은 인생을 살아온 작가치고 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로도 유명하지만, 작품의 수에 따른 구분이라기보다 그의 경향이 시시각각 전혀 다른 테마로 악마, 천사, 어린이, 개, 괴물 등등이 자유롭게 모습을 드러낸 듯이 보인다. (6개의 전시실 중 한 곳은 동화 일러스트를 전시하는 반면에 바로 옆 전시실은 19금이다.)
그는 자신을 표현하기에 소재, 주제, 장소 그 무엇도 거리낌이 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그림을 이른바 ‘완성도’에 상관없이 누구보다 자유롭게 펼친 작가이다. 그가 팝아트계의 슈퍼스타인 이유가 그의 작품을 차용한 수많든 상품들이 수도 없이 팔리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뭐, 그래도 상관없다만) 수억 개 이미지들이 키스 해링이 누군지 모르더라도 세계 곳곳에서 거부감 없이 쓰이는 데에는 누구나 한 번쯤 그려봤음직한 단순하고 친순한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회는 무난하고 적당한 이미지보다 난해하고 복잡하고,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보기에 난색을 보일만한 작품들로 꽉꽉 채웠다. 스스로에 대한 반발? 혹은 몇몇 이미지만 차용해 규정한 세상에 대한 불만? 아니면 이와 같은 단순한 해석 및 동정 및 궁금증을 유발할 고도의 상술? 뭐든, 뭐라고 부르든 미술계라는 극히 보수적인 틀거리 안에서 자유롭고 또 자유로운 작가라 할 수 있다.
이날 전시회 다큐멘터리나 사진을 통해서 본 그의 작품은 지하철 광고판 그림으로 워낙 유명하지만, 길거리 버려진 문짝 등에서 다양하게 발견된다. (그의 유명세에 오름에 따라 그가 남긴 거리의 작품들은 누군가 다 떼어갔다고 하지만 말이다.) 요절을 했으니 후대라는 표현이 그렇지만, 아무튼 변화를 보인 후대 그림들과 다르게 단순한 선으로 표현한 키스 해링 특유의 따뜻한 이미지들은 전시실 벽에 걸려 있든, 짝퉁 중국산 티셔츠에 새겨있든 전혀 차이가 없다. 그는 복제의 시대가 예술을 망치는 게 아니라 복제가 예술을 완성한다고 하는 역설을 실천하면서도 앤디 워홀과 다른 지점에 있다.
“나의 드로잉은 삶을 모방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삶을 창조하기 위해서, 삶을 고안해내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팝아트는 기존에 제작된 원본에서 주제를 구하고 상업적으로 친숙한 모티프를 사용하지만, 해링의 작품 세계의 기초는 작가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원동력이었다. -예술을 위한 삶 ‘키스 해링’ 중에서, 알렉산드라 콜로사 지음
앤디 워홀이 모방을 통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반면, 키스 해링은 작품에 내면을 고스란히 투사했고, 또 주목을 받았다. 앤디 워홀보다 더 투정을 부린 셈이라고 할 수도 있고, 자유롭다고 할 수도 있고, 짧은 삶을 예감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아무튼 그는 진정한 미국 대중문화가 않은 아이자 아이돌이며, 팝아트의 수혜자이면도 팝아트 형식으로 팝아트의 새로운 장을 연 모험가이다.
전시회를 통해 특히 얻은 게 그의 작품이 티셔츠 프린팅 등으로 될 수 있는 작품들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아니러니 하게도 그의 작품이 서글픈 이유는 그가 흑인 차별, 동성애 문제 등 사회문제에 대해 강경발언을 하면서도 그의 아이콘 작업들이 그의 진중한 무게를 달기에는 너무 ‘가볍게’만 해석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죽음을 앞두고 그가 작업한 윌리엄 버로스 소설 연작 등을 통해 표현한 지옥 시리즈 등은 이전 작품들과 다르게 매우 복잡하고 난해하다. 그래서 요즘 감성으로도 한눈에 자연스럽게 파악되는 럭키스트라이크 담배 광고 연작 등과 다르게 거의 해석불가에 가깝다. (지옥도를 해석한다는 자체가 난센스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윌리엄 버로스와 함께. 그날 따라 사격을 잘 했는지, 과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Etching, 25.4 x 22.8 cm The Valley 1989. 윌리엄 버로스와 함께 작업한 '계곡' 일부
그리고 그가 본 지옥도는 바로 미국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그를 유쾌한 작가로 규정하기 힘든 이유이다. 앤디워홀과 미키마우스의 조합, 장 미셸 바스키아의 3개의 꼭짓점을 가진 왕관 차용 등 동시대 팝아티스트들을 작품 속에서 그대로 녹여서 경의와 존경을 표현한 키스 해링, 서른한 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팝아티스트. 짧은 삶이 아쉬운 반면, 남들보다 두배 세배 이상 살았다고 해도 좋을 테다. 젠장, 가볍게 갔다가 그에 비해 잉여로 살고 있는 자신을 두고 반성을 하고 돌아온 참이다.*
이미지 출처 - 소마미술관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