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품은 슈퍼맨Superman embraces the moon] 빨래와 무엇 사이
제목 : 달을 품은 슈퍼맨Superman embraces the moon
일시 : 2014/08/01 ~ 2014/11/02
장소 : 한성아트홀 1관
출연 : 우현 역 – 이찬우, 도현 역 – 김동현, 써니 역 – 홍민아, 안경 역 – 윤성원, 도요타 역 – 맹상렬, 엄마 역 - 김해정
작/연출 : 추정화
음악 : 허수현
제작 : YD뮤지컬
일본 공연예술계 흐름을 정리한 글(연극 <반신> 팸플릿 중 ‘노다 히데키 이전과 이후’ 이시카와 쥬리)을 보면 ‘거품경제가 붕괴한 90년 대 이후 (…) 꿈을 좇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아니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하는 시대가 오자, (…) 눈높이에 맞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공감하기 시작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일본 연극과 한국 연극 사이 문화 풍토가 달라 동일한 분석 혹은 적용이 가능하지 모르지만, 98년 IMF사태 이후 지금까지 한국 20대 젊은이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일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90년대 후반이후로 사춘기를 보낸 세대들은 일찍 세상에 눈을 떴고, 재미나 꿈을 좇기보다 스펙을 쌓아야 하는 현실적인 판단을 했다. 그 와중에 예술가들의 사정은 더욱 곤궁하여 여 당장 학교를 졸업하면 갈 데가 없었다.
그때 그 절묘한 시점에 현실과 꿈이 성공한 사례가 뮤지컬에서 나온다. 추민주 연출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시절 만든 뮤지컬 <빨래>(2005)이다.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대극장용 라이선스 뮤지컬이 대세인 시절-요즘 거품이 꺼지고 있으나 경제적으로 보면 여전히 공연계 대부분을 좌지우지하는-, 성공 방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반대로 한 것이다. (기획의 성공 이전에 하고 싶은 작품을 올리겠다는 아티스트의 꿈이라고 본다.)
소극장용 창작뮤지컬에 배경은 달동네이고, 주인공은 동남아 이주노동자이다. 로맨스가 없지 않지만 이주노동자들이 각박한 한국에서 더 살벌하게 살아야하는 현실을 어느 정도 녹여냈다. 달달한 로맨스나 해프닝 코미디 정도가 소극장 뮤지컬 틈새시장을 채우던 시절-지금도 그렇지만-에 가당키나 한 기획이었을까. 연극에서도 쉽지 않을 판이다. 하지만 <빨래>는 뮤지컬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피할 수도 있었던 무거운 주제를 살짝 덜어내고 탄탄한 구성에 좋은 OST를 얹혀 35만 관객 동원에 이어 여전히 순항 중이다. 게다가 수입이 대부분인 뮤지컬 시장에 라이선스 뮤지컬로 역수출을 이끌어냈다.
앞서 언급했듯 소극장 뮤지컬은 로맨틱코미디가 대세이고-감정, 우연성, 에피소드, 캐릭터 등 한계가 있으니 선택하기 쉬운-여전히 20~30대 여성층 관객들이 대다수지만 빨래의 성공은 기존 관객층을 품으면서도 저변을 확대하는 데에 기여를 했다. 문제는 영화 <명량>이 1,700만 관중 동원을 한 이후 역사적으로 한국 해전을 다룬 작품이 의도했던 아니던 <명량> 아류로 분류될 처지이듯, 기획단계에서 많은 반대에 부딪혔으나 성공을 이끌어낸 작품의 영향에 힘입어 비슷한 유형의 작품을 올릴 경우 빨래의 그림자는 감수해야 한다.
<달을 품은 슈퍼맨>(이하 달품맨)은 <연탄길> 등 이어 <빨래>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달동네를 배경으로 홀로 장애인 첫째 아들을 돌보며 동대문에서 옷장사를 하는 엄마, 군대를 제대했지만 뭘 할지 막막한 둘째 아들, 배우로 갈 길이 먼 서울대 출신 지망생, 빚에 쫓겨 싼 집을 찾아온 지방 출신 여대생…. 퍽퍽한 일상 가운데 가난하지만 따뜻한 인정이 있는 사람들이 있고, 백수와 여대생 사이 에피소드가 생기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훈훈한 작품.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이 작품은 기본 얼개나 무대 등 많은 부분 <빨래>에 기댄 작품으로 읽힌다.
문제는 뼈대에 붙은 살인데 <빨래>와 변별점을 어떻게 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정확하게는 <빨래>를 보고 좋은 인상을 받아 공연 전에 호감을 품은 타깃 관객층에게 어쩔 수없이 따라올 수밖에 없는 비교평가를 넘어서야 하는 부담이 크다. 그리고 그 변별점이 재미 위주 에피소드 혹은 현실에서 오지 않은 사건 위주라면 뮤지컬 가운데 의미 있는 작업이고, 좋은 관객 평가를 받고, 올해 말까지 오픈런을 할 만큼 완성도가 있다 해도 평가가 야박할 수밖에 없다.
‘몽골인 솔롱고에게 ‘너희도 돈 벌러 온 게 아닌가. 한국인들도 돈을 떼인다’고 항변하고 한국에도 장가를 가지 못하는 총각이 많은데 한국 여자를 꼬신다고 화를 내는 동네 노총각들이 등장한다. 여주인공 나영이에게도 외국인을 사귄다는 힐난이 이어진다. 빈국에서 여성을 사오듯이 데려와 결혼을 하는 기형적인 한국 사회에서 그럴 능력도 없는 이들의 절규는 다시 돌아갈 곳이 있는 솔롱고보다 더 절절하다. 솔롱고는 이들에게 얻어맞으면서도 참은 이유는 나영이를 보호하려는 의도이기도 하지만 불법 체류 신분이 경찰에게 들키면 안 되기 때문이다. 더 나을 것 없는 처지의 사람들끼리 흙탕물 싸움을 벌이는 세상, 그 속에서 발에 치이고 뒹굴어야만 하는 무지개. 이런 사회라면 자의로든 타의로든 한국을 떠나야 하는 게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라고 <빨래>를 보고 쓴 적이 있다. 달동네는 돈 천원에 쌍욕이 오가기도 하는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힌 곳이기도 하다. 그곳은 환상이 피어나는 곳도 아니고, 판타지가 생길 곳도 아니다.
나는 <빨래>가 ‘이주노동자들의 시선으로 볼 때 <빨래>의 마무리는 ‘리얼’보다는 ‘판타지’에 가깝다. 정식 한국 체류가 가능한 상황이라, 더욱이 위장 결혼이 아닌 한국 여성과 진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해서 이룬 현실이라면 말이다. 현실에서 이런 커플이 없는 건 아니라고 해도 작품이 유지하는 냉정한 시선에 비해 결혼으로 뭉뚱그릴 부분이 아니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결말은 불법 체류와 관련한 사회 모순을 비켜가는 결과를 초래한다. 현실에서 미누 들이 극중 행복한 솔롱고가 되기 힘든 상황을 외면한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 무엇보다 결혼과 동시에 한국 사회로의 안착이 불법 체류자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음에도 착각을 불러온다‘[빨래] 빨면 빨수록 동그래지는 빨래 비누처럼 http://blog.daum.net/gruru/134 고 비판을 했다. <빨래>가 기획으로 성공했을지는 모르나, 비판의 여지가 없는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그 문제를 굳이 <빨래>가 풀 이유는 없다.)
<달품맨>을 보면 현실을 반영한 병원 오진에서 시작해 여장을 하고 여대축제에 참여한다는 설정, 출산 당시 의사가 장애를 입힌 의료사고에 대한 죄책감으로 유종을 앞두고 유산을 물려준다는 설정을 바탕에 깔았다. ‘퍽퍽한 현실에 맞춰 관객 눈높이와 맞춘’ 작품이 기획 의도가 아닐 수 있지만, 그렇게 보면 아쉬운 부분이다. 그리고 달동네지만 그래서 잘 보이거나 가깝다는, 희망을 품고 힘내보자는 달이라는 설정은 작품 안에서 그리 잘 녹은 건 아니다.
하지만 OST가 귀에 쉬이 들어오고, 소극장 뮤지컬이 종종 듣는 배우들 연기나 노래에 대한 비난으로부터 자유롭다. 다른 작품에서도 봤던 연기 잘하는 젊은 배우들을 여럿 캐스팅했다. 어쩌면 <달품맨>이 <빨래>와 ‘로맨틱 코미디’ 사이 틈새에 노렸을 지도 모르겠다.*
사진출처 - YD뮤지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