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_전야제 시사회] 이제부터 명랑한 사회를 위해

구보씨 2014. 7. 29. 15:48

명량, 자칫 명랑과 헛갈릴 만도 하지만 얼굴에 주름만큼 흉터가 지고 피로 얼룩진 늙은 장수의 얼굴을 전면에 내세운 포스터를 보면 명랑한 무언가와는 아주 거리가 먼 영화입니다. 요론 재래식 코미디 멘트는 이 영화가 화제가 되기 전, 개봉 전 시사회에서 봤을 당시, 했을 법한 얘기라 끄적여봤습니다.

 

개봉일이 2014년 7월 30일인데 7월 29일(롯데시네마 노원)에 봤으니 누적관객수 15,620,193명(2014-08-22 영화진흥위원회 기준) 가운데 0.00001%에 들 정도로 일찍 본 셈입니다. 뭐, 제가 VIP도 아니고, 운 좋게 보게 된 터라 대단하달 건 없지만, 영화 성공 이후 나온 구설에 얇은 귀가 팔랑대기 전에 영화를 본 후 적은 감상입니다. 영화를 보고 든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겠구나 싶습니다. 12척으로 350척의 대선단과 겨뤄 이겼다는 믿기지 않는 기적을 역사적 사실로 알지 못하는 한, <명량>은 <어벤져스>보다 더 황당한 영화일 수도 있으니까요. 게다가 한국사회에서 이순신 장군의 위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감독도 배우도 아닌 관객이 왜 그리 감정이입을 해 긴장하면서 보게 되는지 모를 겁니다. 상업영화 한 편에 남다른 감회에 젖는지 이해하기는 더욱 힘들겠지요. 이후 나온 진중권 교수의 졸작 발언은 영와 전개도 그렇고 타당한 면이 없지 않지만, 단순히 한 줄평으로 끝날 작품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하여, 영화를 막 봤을 당시, 지금처럼 흥행할 줄 몰랐던 시기에 적은 글이라 나름 의미가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중입니다. (훗!) 대단한 리뷰하고 거리가 멀지만 난 그때 요렇게 느꼈더랬다. 하, 왜적의 침입도 없는 갑오년 왜 이리 시절이 수상하고도 수상한지 모르겠다. 환상이나마 이순신 장군을 바라는 마음은 다들 비스무리한 듯 하지만 결론은 뭐, 내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정도의 심정이 담겨 있습니다. 참고로 '명량'을 검색하면서도 자꾸 '명랑'이라고 타자를 쳐댔는데요. 단순 오타가 아닌 내 스스로 어쨌거나 비극인 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명량'보다 명랑한 세상이 더 좋아서 그렇다, 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2014.08.24]


 

천만 관객 눈물 콧물 줄줄 쏟고만 게 나이에 따른 남성호르몬 감소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순신 장군 동상이 바라보고 있는 남해 울돌목은 영화 초반 대조기 얘기와 더불어 울부짖는 소리가 맴도는 회오리를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전투에서 죽은 영혼들이 부르는 소리라고 하는데, 대조기를 말을 알게 한 세월호 참사가 울돌목에서 멀지 않은 맹골수도, 유속이 빠르기로 두 번째라고 하는 곳에서 벌어졌고, 4월 이후 100일을 넘겼으나 수습이 끝나지 않은 터라,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전개가 빠른 듯해도 육중한 작품이라 만든 이들도 본 이들도 조심스러운 분위기이다. 총평처럼 말하자면 이순신 장군이 탄 대장선인 판옥선을 두고 장루(관측대)부터 노를 젓는 하갑판까지 위아래로 3층을 훑으며 보여주는 부장, 군졸, 승병, 격군(노군)까지 시간을 할애하고 조연급 인물을 배치 면면을 보여주려고 애를 쓴 작품이라 맘에 든다.

 

대사에서도 ‘백성이 도운 일이 천운’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어찌 보면 당연하고, 요 사이 정치판에서 엇비슷하게 워낙 공염불로 떠돌아 지긋지긋한 말이기도 한데, 2시간 영화 안에서 나름 카메라워크로 잘 보여주었다. 다만 영화를 보면서 염려스러운 점은 불가능한 전투를 승리를 이끈 기적은 한 번으로 족하는 사실이다. 영화 초반 잠시 언급하다 말지만 무능한 왕과 나라가 망하는 형국에 권력다툼을 벌이는 무리들 사이에서 기적을 위한 전제가 있다는 얘기이다.

 

결국 인재로 인해 상식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에서 벌인 전투이니, 필사즉생필생즉사(必死則生必生則死)가 그나마 사기를 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울돌목이 뚫리면 나라가 망할 판인데, 무슨 짓인 듯 못하겠느냔 말이다. 우리가 영화에서 배울 교훈이 있다면 명랑전투와 같은 허무맹랑한 전투가 벌어지지 않도록 정치를 잘 하는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월호 특별법이 왜 필요한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