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의 고도_두산인문극장 2014] 지금 여기, 또 하나의 배수의 고도
제목 : 배수의 고도
기간 : 2014/06/10 ~ 2014/07/05
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출연 : 선종남, 하성광, 이윤재, 선명균, 김승언, 오대석, 이종무, 김소진, 이진희, 이정수, 김시유
희곡 : 나카츠루 아키히토
무대 : 여신동
연출 : 김재엽
기획/제작 : 두산아트센터
3년 전 일본에서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들이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에게 자신의 마음이 담긴 선물을 전달했다. 전국재해구호협회 희망브리지는 동일본 대지진 이재민들이 세월호 피해 가족들에게 손으로 직접 만든 일본 전통인형 300개를 보냈다고 29일 밝혔다. 일본 전통복장을 한 인형에는 한글과 한자로 기도(祈禱), 진혼(鎭魂), 기원(祈願) 등이 적힌 메모지가 함께 있었고, 일본어와 서툰 한글로 쓴 편지도 들어있었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한국인 자원봉사자들의 도움과 위로의 마음을 기억하는 이재민들은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며 작은 보답을 준비했다고 한다. 인형 제작을 제안한 일본인 영화감독 시이 유키고는 “고통을 겪었을 때 받은 위로를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게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동일본 대지진은 2011년 3월11일 일본 미야기(宮城)현 산리쿠(三陸) 앞바다에서 발생한 규모 9.0의 강력한 지진이다. 사망자만 1만5천여 명, 실종자는 2천600여 명에 이르는 대참사로 전해진다. 대지진 이재민들은 3년째 임시 주택에 거주하는 등 일상생활로 복귀하지 못한 상태이며, 인형 등 수공예 제품을 만들어 생계를 잇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들, 세월호 피해자에 인형 선물’ 민중의 소리 이병호 기자 lbh@vop.co.kr 발행시간 2014-06-30 11:13:06
실종자를 다 찾지도 못한 채, 가라앉은 채로 진행형 비극인 4.16세월호 참사를 두고 일본인들은 2011년 3.11동일본 대지진을 되새긴다는 기사를 봤다. 기사를 보면서 3월11일 일본 비극이 다시 생각났다. 그리고 ‘인형 등 수공예 제품을 만들어 생계를 잇고 있’다는 마지막 한 줄을 읽으면서 고향을 지키면서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된다는 그들의 의지, 그리고 일본 정부의 무관심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고 봤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당시 한국 정부가 벌인 거짓말 ‘세월호 '에어포켓' 쇼였다…인체에 유해한 공기주입’ 기사가 6.4지방선거가 끝나고 7.30보궐선거가 이슈가 되기 전, 딱 중간 즈음인 어제(29일) 나왔다. 무능력, 무책임 정홍원 총리는 결국 유임이 되어 끈질기게 살아남는 모양새이다. 살아야 할 정신이나 의지나 태도와 죽어야 할 것이 현실에서는 정반대로 벌어진다. 아이러니하다.
「두산인문극장 2014 : 불신시대」 마지막 작품 <배수의 고도>는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과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다룬다. 2011년 초연 시 극단 TRASHMASTERS의 대표인 나카츠루 아키히토가 작, 연출을 맡아 일본 연극계에 화제가 된 작품이다. ‘배수의 고도(背水の孤島)’에서 ‘배수’란 ‘절대 절명의 위기에 오히려 강을 등지고 온 힘을 다해 싸운다’는 중국 사기에 나오는 전략에서 비롯된 말로 현재의 일본의 상황을 비유한다. 작가는 취재와 조사를 통해 다양한 인간군상과 그 안에 내포된 감정들을 구체적인 에피소드에 담아 표현한다. 이 작품은 일본 사회를 넘어 환경 대재앙 등 오늘날 인류가 처한 극단적 위기에서 사회 정의는 과연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 연극 ‘배수의 고도’ 소개 가운데
다큐멘터리 <밀양전>, <도쿄발전소> 등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원전 공사 문제를 다룬 영화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탈핵영화제’ 등 다양한 이름으로 여기저기에서 상영 중이다. 2008년 7월 이후 송전탑 건설을 두고 밀양에서 벌어지는 주민과 한전과의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6.4지방선거에서 내심 관심사는 밀양시장 선거였다. 세월호 참사 후 시민들의 의식 변화도 있었고, 분위기도 사뭇 다르니 선거 결과가 다르지 않을까 기대했다. 밀양시민 가운데 5%에 불과한 촌부들의 목소리는 정작 선로가 지나가지 않는 밀양시를 향한 정부의 개발공약에 밀렸다. 새로 뽑힌 밀양시장의 당선 소감에는 ‘밀양=송전탑’으로 전 국민 머릿속에 새겨진 현실을 모른 척했다.
그리고 댓글을 보면 님비현상에 대한 비난을 할 뿐, 765㎸ 고압 송전선로는 우리가 흔히 보는 전선과 달리 녹기 때문에 피복을 입힐 수 없으며, 비가 올 경우 그 아래쪽 작물을 키울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밀양송전탑 아래 최초로 건물 들어선다’( 전자신문 2014.03.09.)는 기사를 보면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취지지만, 화재 위험이 적은 기계류 설비, 지붕을 불연재 설치해 건축 기준을 통과했다는 내용은 고압 송전선로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리는 꼴이다. 이러나저러나 8년이 흘렀다. 선거는 끝났고, 공사는 예상대로 강행 중이다. 반대가 전부일 수 없지만 우리가 놓친 부분은 없는가, 우리가 좀 더 합의하거나 성찰을 할 부분은 없는가. 밀양 문제는 그저 5,000명 남짓 무식한 노인네들의 이기심인가.
표면적으로 연극은 대지진 피해 현장의 비참함을 다루는 데에 전반부 일부를 할애하지만, 후반부 결말을 향한 장치로 기능하기 위함이다. 피해 현장이 배경인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는 20년 후 정부산하 기관으로 두고, 국채를 해외에 발행해 원전을 다시 짓겠다는 정부-재무부장관-과 반대를 하는 주민들 사이 갈등을 다룬다. 그러니까 세월호 참사에서 봤고, 집회에서 목소리가 일개 기업인 청해진해운이 아닌 박근혜 정부를 향한 이유, 그 사이 간극을 연극을 풀어낸 셈이다.
연극 <배수의 고도>는 갈등을 현상으로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 사이 이야기에 주목한다. 전반부의 피해 주민, 현장 공무원, 자원봉사자, 취재기자, 국회의원, 지역사업가, 심지어 황당하게만 보이는 미국CIA 요원의 등장은 작가는 3.11일본대지진이 누구 한쪽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데에 주목하고 집중한다. 그들 사이 광범위한 관계-실제로는 있을 법하지 않은 관계-를 설정하고 후반부에 풀어내는 방식이 지극히 작위적이지만 무대를 고정한 연극으로 보여주겠다는 일념 아래 그들은 시민운동가, 피폭자대표, 재무성장관, 장관의 비서, 데모대, 피해지역 의회의원, 치료법을 찾은 의학박사 등으로 전반부와 다른 입장으로 만나-그러나 입장은 여전히 다른 채로-얽히고설킨다.
데모한다고 세상이 바뀝니까?(장관 비서)
내가 피폭자인 걸 숨겨야해. 사람들이 알면 태도를 바꿔.(쇼코)
지방 실업자 중에는 피폭자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어. 도쿄 놈들, 지들이 뭘 안다고.(지방의원)
경제가 망하면 우리는 아무 쓸모없는 나라야!…….(장관)
가상 미래에 일어나는 원전 테러를 두고 각자 입장은 단호하고 또 논리가 있다. 하지만 연극과 달리 현실에서는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조차 잡기 어렵다. 이른바 정부 의견이 단 한 가지 대책이고 방안인양 관제 언론을 타고 울려 퍼진다. 제목이 시사하듯 원전을 다시 가동하겠다는 정부와 기업의 담합이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잊은 이들에 대한 조롱이자, 절규이다. ‘불신시대’라는 딱 현실과 점차 높은 싱크로율을 보이는 정의에 맞게 현재진행형인 한국 사회 내 벌어지는 무관심, 혹은 이른 바 악성댓글로 대변할 수 있는 사회 갈등을 되짚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앞에서 말했듯 3시간이 넘는 원작을 2시간으로 줄이는 과정에서 후반부와 엮기 위한 전반부 설정이 무리한 부분이 있고, 전반적으로 구성이나 전개가 헐겁다. 그러다보니 피해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 PD이었다가 산하기관 책임자가 된 화자를 비롯해 인물들이 생동감을 잃고 작가 머릿속에서 맴도는 인상을 준다. 무엇보다 앞서 본 <엔론> 당시도 그랬지만 소극장 Space111의 좁고 낮은 무대는 담으려는 결과물에 비해 그 한계가 도드라진다.
김재엽 연출의 <마호로바>(2011/09/01~25)를 보면 비좁기로는 손에 꼽을 연우소극장 무대를 뛰어나게 활용하는 등 소극장에 강점을 보이고, 아기자기한 연출색 또한 잘 맞는 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소극장에서 중극장으로 무대를 넓혀서 다시 올렸던 <장석조네 사람들>을 보면 중극장 무대도 잘 소화해냈으리라 본다. 호평일색인 여신동 무대디자이너라도 해결하기 힘든 부분이다.
1막 고등학생 타이요가 공부하는 방은 자체로 2층집을 쓴다는 것인지, 가건물인데 다락이 있다는 것인지 애매모호하다. 이런 점은 2막 현대식 건물이라는 설정에서 타이요가 같은 위치에 올라가 아래층을 향해 협박하는 장면에서도 그 곳이 환기구인지 어딘지 불분명하다. CIA요원 혹은 미국인임을 강조하기 위해 알렉스가 메이저리그 야구 모자를 쓰고 등장하는 장면은 어찌 봐야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어떻게 이런 배우들을 모았을까, 싶을 정도로 두산아트센터 기획팀이나 김재엽 연출의 인맥이 놀랍기만 하다.
만약 국공립극장이었다면 ‘탈핵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작품을 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두산이 대기업으로 보이는 행태를 보면 이 역시 아이러니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마치 JTBC 뉴스팀 같다고나 할까, 두산아트센터가 선보인 ‘불신시대’라는 키워드도 그렇고, 작품 선정도 그렇고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냉정하게 말해 밀양 문제에 빗대어 볼 때, 집단 및 1인 시위, 언론 보도, 영화 제작, SNS, 토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 문제를 공론화하려고 했으나, 연극으로 올렸을 때와 같은 반향을 끌어내지 못했다.
천안함 침몰을 두고 벌어지는 이념 논쟁을 다룬 <천안함 랩소디>와는 또 다른 관객들의 반응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연극 관객들 사이 두산아트센터나 김재엽 연출에 대한 신뢰 등 당장 짐작할 수는 있지만 이유를 좀 더 깊게 분석해봐도 좋을 부분이다.
바라기는 ‘불신시대’ 특집으로 소극장에서 올렸던 작품을 모두 연강홀에서 올리는 기획을 적극 검토해보길 바란다. 분명 지금 현실에서 유효했던 작품은 내년까지 그 기한이 바뀔 리가 없다. 좀 더 큰 울림을 내야 한다. 연극이 할 수 있는 역할이 그러하고, 또 아트센터로 역할이 1회성에 그치지 않고 발전시켜 재공연을 하는 데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공연 사진 - 1막 타이요의 집, 2막 건물 안 / 한국 공연에 비해 무대가 휠씬 넓고 높다.
사진출처 - 두산아트센터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