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엔론ENRON_두산인문극장 2014] 우리는 과연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가

구보씨 2014. 5. 7. 18:00

제목 : 엔론

부제 : 두산인문극장 2014

기간 : 2014/05/07 ~ 2014/05/31

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출연 : 유연수, 김영필, 박윤정, 양종욱, 송흥진, 신안진, 곽지숙, 이 길, 박창순, 이안나, 강경호, 민아비

극작 : 루시 프레블

번역 : 성수정

연출 : 이수인

기획/제작 : 두산아트센터



<엔론>은 내 경험으로 비춰보면 스페이스111 공연 가운데 좌우 폭을 가장 넓게 확장한 작품이었다. 심지어 객석 폭보다 무대를 넓게 활용했는데, 흥미로우면서도 객석 위치에 따라 사각이 생긴다. 아무려나 연기는 극장 중앙부에서 이루어지는 바, 배우들 동선이 길게 늘어진다.

 

<엔론> 자체로 자본주의 꽃, 미국의 7대 기업까지 올랐던 대기업의 거대 금융 비리를 다룬 작품인데, 소극장 무대로는 표현하기가 힘들었다는 반증이자 소극장에서 올리는 데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려는 임기응변이라고 봤다. 스페이스111은 나름 스크린을 활용하기 좋은 극장이고, 작품에서 적절하게 활용한다. 하지만 중극장인 연강홀 대형 스크린에서 관객을 현란하게 압도하면 이미지에 매몰되어 현대인들의 돈에 대한 맹신 등 신기루를 더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진만 보면 소극장 무대로 보이지 않는다. 엔론의 주식 수치가 그랬듯 일종의 왜곡이라고 볼 수 있을까.   


제작자가 아닌 관객 입장에서 소극장 공연이 120분을 넘긴다면 천정이 낮고 다닥다닥 붙은 객석이 좁은 밀실인 듯 답답하고 고역이라 역효과가 날 수 있다. 허나 <엔론>은 쉬는 시간 없이 120분 공연을 고수한다. 배우들이 의도한 대로 관객이 엔론 임원으로 숫자놀음을 할 때 짜릿함을 줄 정도로 몰입해 숫자놀음에 취해야 하는 만큼 환기할 수 있는 쉬는 시간을 주기가 힘든 작품이다.

 

원작도 그랬을 성 싶고, 연출의 배짱일 수도 있다. 어려운 조건에도 몰입도가 높아서 흥미진진하고 재밌다. 두산이 대기업인 이상, 몇 가지 혹은 범위를 넓히면 극중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텐데, 대기업을 풍자한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했다는 자체도 흥미롭다.

 



주인공 제프리 스컬링 역의 김영필 배우는 첫인상이 순박하지만 가면을 쓴 듯 냉혹한 역할이 적격이다. 연극 <헤르메스>(~4.30)에서 이승훈과 더블캐스팅으로 출연했을 때, 이승훈의 굵은 외모와 강한 카리스마에 밀린 듯 했다. 하지만 돈을 좇는 냉혹하고도 자괴감에 빠진 듯 비열한 김영필의 연기를 보고 되레 ‘안 봤으면 어쨌나’ 싶었다.

 

<헤르메스> 다음 작품으로 <엔론>에서 단독 주연은 단연 잘 맞는 캐스팅이다. 김영필은 엘리트 악역 캐릭터에 물이 올랐다. 주식이나 해봤으면 모를까, 대기업 내부 복잡한 사정을 물론 난해한 경제 지식이나 상식이 없는 내가 봐도 지루할 새 없이 흥미진진하다. <엔론>는 작품성에 재미까지 모든 부분에서 극복을 해낸 작품이다. 무엇보다 기업물이 드물고, 있다 해도 두루뭉술하거나 뻔한 교훈을 전제한 경우라고 보면 <엔론>은 자료조사부터 구성까지 희곡으로도, 또 한국에서 번안극 중에서도 손에 꼽을 수작이다.

 



신변잡기가 대부분인 대한민국 연극 현실에서 더욱 반갑다. 바라기는 두산아트센터가 기획 제작을 맡은 이상 작품 규모를 키워 연강홀에서 재공연을 올려야 한다. 요사이 4.16 세월호 사태를 보면 이른바 관피아 관행이 사회 전체의 정의나 상식인양 관습처럼 달라붙어 일어난 사건이다. 내부 비리와 관행이라, 딱 <엔론>이 말한 내용이다. 엔론으로부터 우리는 불감증에 걸린 시대에 딱 맞는 작품이다. 두산인문극장 <불신의 시대>라는 주제에 적격이다.

 

‘엔론의 CEO 제프리 스킬링과 경영진들의 잘못된 리더십과 도덕심이 거대 기업 엔론을 어떻게 성장시키고 또 파멸에 이르게 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는 작품 소개가 마치 한국 사회를 겨냥한 풍자나 은유로 보이지 않는가. 두려운 점은 엔론을 유명 경제 잡지 포춘Fortune이 1996년부터 2001년까지-엔론은 2001년 12월에 파산했다-내리 6년 동안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소개했고, 2000년에는 '일하기 좋은 100대 회사'라고 추켜세울 정도로 징후를 몰랐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징후가 보이지 않기는커녕, 정 반대의 정보가 넘쳐나다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서야 후회하기 마련이다. 글쎄 지금 미국, 한국을 비롯한 다국적 대기업들이 과연 엔론의 운영방식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말 그대로 밝혀지기 전까지 짐작만 할 수 있다. 

 

…엔론의 파산으로 미국에서만 4천5백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노후를 위해 저축해온 연금마저 거의 잃게 되었다. 그리고 워싱턴포스트지가 부시 전 대통령 재임시절 레이 회장은 정치자금 모금에 기여한 공로로 백악관에 초대돼 하룻밤을 묵었으며 이후 지난 10년 동안 엔론과 레이 회장은 수백만 달러의 자금을 쏟아 부으면서 의회와 백악관, 감독관청 등을 대상으로 로비활동을 해왔다고 밝혀 엔론 사태가 '엔론 게이트'로 확대되었다. - 엔론社 소개 중에서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사진출처 - 두산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