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오장군의 발톱] 생명의 뿌리, 두 발에게 보내는 애가哀歌

구보씨 2010. 4. 9. 12:15


명동예술극장 개관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땅에 극장이 들어선다고 하니 이런저런 말이 많았지요. 더욱이 소극장도 없이 중극장 규모 한 동 뿐이라 더러 불만이 없지 않았습니다.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명동예술극장은 작품성이 높은 작품 제작 및 선정으로 돌파했는데요. 공간을 나누지 않은 만큼 극장 제작 환경이 좋습니다. 


이런 자신감은 '백스테이지투어' 프로그램으로 이어지기도 했지요. 글쎄요. 강연이나 전시 공간이 한 곳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만, 시설 만큼은 훌륭합니다. 무엇보다 작품이 좋습니다. 똑같은 연출가가 하는 작품이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 만큼 지원이나 여건이 나은 편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앞으로도 선전을 기원합니다. [2014.04.08]



양말 왼쪽 엄지발가락 즈음에 구멍이 나지 않았다면 발톱이 자란 줄도 모르고 또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번쩍거리는 구두와 신축성 좋은 양말이 막고 있지만 새싹처럼 삐죽이 고개를 내밀었다.  꼼꼼하게 챙기는 손톱과 다르게 발톱은 저만치에서 잡초처럼 자라고 있었다. 그렇게 안으로 오그라들다 못해 삐쳐 나온 발톱은 육식동물의 그것을 닮았는가, 하지만 그렇지도 않아서 둥글게 뭉툭한 생김새가 우그러진 녹슨 쟁기 꼴이다.

 

도시에서 산다는 건 그런 것일까. 손을 쓴다는 것, 드러내고 하는 것이 죄다 전부인 양 그렇게 살았다. 여자들이 곱게 매니큐어를 칠한 발톱을 보면 발이 아니라 있지도 않은‘뒷손’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조심조심 아슬아슬한 그것은 박차고 오르는 발이 아니라 조심조심 위태위태하게 물구나무를 서는 손이다.

 


<오장군의 발톱> 1992년 8월, 제1회 태평양국제연극제 극단 미추, 블라디보스톡 쳄버드라마 씨어터

 

<오장군의 발톱>은 80줄에 이른 노작가가 여전히 늙은 몸을 악기 삼아 구슬프게 부르는 애가(哀歌)이다. 명동예술극장의 ‘한국현대연극풍경’ 프로그램으로 살과 피를 얻어서 주목을 받기 전에도 내내 부르던, 쉬어버릴 대로 쉰 목이 아닌 침침한 눈으로, 힘든 고갯짓으로 내내 불러왔던 노래이다. 그리고 이제 명동예술극장이라는 너른 통에 이성열이라는 현을 걸어서 다시 한 번 노래를 부른다. 뭣한 표현이지만 다시 발톱을 쥐고 현을 튕긴다.

 

극작가 박조열은 1930년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버나드 쇼를 비롯해 문학에 심취했다는 얘기를 한다. 또래들이 보릿고개를 넘지 못해 고픈 배를 움켜쥐고 산과 들로 헤매고 다닐 때였다. 중등교원자격을 얻어 중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쳤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그러니까 그가 손으로 이룬 것들은 전쟁터에서는 하등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원체 약골이라서 이내 탈진하기 시작하더니, 끝내는 실신직전 상태에서 이르러, 전우들이 내 배낭을 번갈아 짊어져야 하는 골칫거리 쭉정이 병사가 돼 버렸습니다.’해방 이후 급작스러운 이데올로기 시대로의 전환, 짐작하건대 그의 문학에 대한 앎과 애정은, 이른바 당시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에서 남북 어디에서도 그다지 쓸모 있는 게 아니었을 것이다. 짐작이지만 그는 낙동강 오리알, 경계인으로 전락한 꼴이다. 이도저도 아닌 상황에서 허약한 박조열은 그의 표현대로라면 ‘쭉정이’, 버리거나 태워야할 무가치한 것이다.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그를 챙겨준 이는 ‘급박한 전세로 인해 나처럼 사격훈련도 받지 못한 채 배치된, 건강한 점 말고는 나보다 조금도 나을 바가 없는 (…)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농민들’이었다. 연극에서 오장군과 진득하니 교감을 나누는 암소, 먹쇠 같은 이들이다.

 


 

그저 동물로 보자면 부려먹다가 팔아먹거나 키워 잡아먹어야 응당하지만 작품에서 먹쇠는 가난한 산골 농사에 꼭 필요한 도구이기 이전에 의지해서 지내는 친구이다. 먹쇠를 시집보낼 생각에 여념이 없는 오장군의 모습은 다 큰 여동생을 대하는 듯하다. 잠을 자는 오장군을 조심조심 토닥이며 잠을 재우는 먹쇠의 모습 역시 어린 동생을 돌보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내내 산골 밭을 가는 장면에 몇 번에 걸쳐 등장하는 이유는 생명이 입방정이나 손놀림이 아닌 두 발, 혹은 네 발의 정직한 힘이 생명의 원천이라는 의미일 게다.

 

땅을 일구고 열매를 수확하는 과정에서 오장군과 먹쇠는 땅심이라는 하나의 생명줄로 이어진 피붙이들이다. 양 발을 뿌리 삼아 생명 일체와 교감을 나누는 이들이 줄기 격인 양 손에서 열매를 낳는 건 당연지사, 쭉정이 병사 박조열을 전쟁 소품으로 보자면 당연히 싸움을 위해서 내치는 게 마땅하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박조열은 그들의 보살핌으로 어찌하여 살았으나 기름지고 넉넉한 땅은 폭탄으로 산산이 깨어지고 또 뜨겁게 타올라서 벽돌 콘크리트가 되어 지렁이 한 마리 살지 못하는 죽은 밭이 되고 말았다. 그런 땅에는 맨 발로 딛고 설 수가 없으니 군화처럼 쇠처럼 단단한 가죽으로 발을 꽁꽁 싸매야 한다. 이제 땅을 움켜쥐는 대신 꾹꾹 숨어 양말에 구멍이나 내는 발톱은 하찮고 귀찮기만 하다.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과 경외감, 이성열 연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데에도 아동극 무대처럼 단순하고 둥글게 꾸민 무대는 각지지 않고 부드러운 생명의 순환을 염원하는 마음이 가득 담겼다. 그렇다면 소나 개의 탈을 쓰거나, 나뭇가지를 들고 나무로 등장하는 배우들 그렇고 아동극 무대라서 유치한가? 그렇지 않다. 덜 여문 여린 아이들의 눈으로 보는 각진 세상도 동글게 보는 힘이 곧 생명을 낳는 힘일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찬가를 부르는 건 아니다. 나무들이 옆으로 쓰러지면서 철책으로 바뀌고, 서로 몸을 부비는 개들은 군견으로 바뀌는 정도만으로도 끔찍한 전쟁터로 탈바꿈한다. 생명이 아닌 도구로 전락하는 순간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둥근 세상도 각진 세상으로 보고 만다. 전쟁터와 산골마을을 오가는 연극적 무대의 한계에 따른 연출이기도 하나, 어느 순간 아이가 어른이 되듯이 생명과 도구의 경계란 사는 내내 스스로 경계를 하지 않으면 어느새 바뀌고 만다는 교훈이 되고 만다.

 

유일하게 어머니와 꽃분이와 먹쇠가 사는 산골만 여전히 그 둥근 모양새를 유지한다. 여전히 너 나 경계 없이 잘 났다고 나서지 않는 곳, 인간이고 동물이고 나무고 모두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그 곳은 말이다. 그래서 연극 말미에 꽃분이의 부른 배만이 아닌 먹쇠의 부른 배가 눈에 들어온다. 생명이 생명으로 이어지는 희망이자 생명이 다른 생명을 업신여기지 않는 세상, 이 연극이 하고자 하는 주제가 오롯이 두 어미의 뱃속에 담겼다.*

 


 

사진출처 - 명동예술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