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변태_2014서울연극인대상 대상·연기상·극작상] 고치는 남루하기도 하여

구보씨 2014. 2. 1. 11:06

제목 : 변태 - 2014년 존재할 것인가 사라질 것인가

기간 : 2014/02/01 ~ 2014/03/30

장소 : 이랑 씨어터

출연 : 이유정, 장용철, 김귀선

작 : 최원석

연출 : 故 신호, 최원석

제작 : 극단 인어



월세, 카드값, 공과금. 매달 돌아오는 결제일을 앞두고 심하지 않지만 불면증에 시달렸던 적이 있다. 직장을 잃었다는 현실이 두려웠다가, 실업급여 기간이 끝나고, 통장잔고가 마이너스로 바뀔 때쯤이면 무심한 나를 본다. 그럭저럭 간간히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대출로 돌려막으면서 지내다보면 바뀌지 않는 하루를 맞이하는 자신을 본다. 무엇보다 내일이 바뀌지 않으며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두려움의 실체를 무엇으로 극복할 것인가.

 

단칸방에서 움직이지 않는 삶, 노트북 한 대의 불빛만큼 빛으로 견디는 일상은 유충이 고치를 만들어 변태를 하는 과정과 비슷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변태 이후 성충이 되었을 때 새를 비롯해 천적이 새끼를 기르듯이 변태 이후의 삶이 꼭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고치 안에 있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전쟁이라고 생각하면 참호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고치는 영원하지 않다. 그리고 술, 포르노로 견디는 건 한계가 있다.



 

연극 <변태>는 이른바, 정육점 사장에서 시인으로 사회적 변태(變態)를 이룬 오동탁을 중심에 두고, 시인 칭호를 얻었으나 시를 쓰지 못하는 민효석과 대학시절부터 민효석이 변하는 과정을 지켜본 아내 한소영의 이야기를 다룬다. 시를 알아주지 않는 시대, 쓰지 못하는 시대, 도서대여점을 문화공간이라고 착각하는 민효석과 비정규직 강사 한소영의 미래를 현실에 대입해보면 이혼으로 끝나는 상황은 짐작가능하다.

 

겪지 않았더라도 관계망으로 부부를 유지하는 건 어느 순간 득보다는 실이 많아지기 시작하고 힘이 많이 들며, 지치는 일이다. 두 마리가 한 고치를 만들거나 공유할 수 없는 이치이다. 무언가 그 끈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있어야 하지만, 자식이 없는 부부에게 과거 열정으로 가득했던 학생운동 시절의 추억이나 시어로 이 세상을 해석하고, 문학을 가르치는 과거를 파먹는 되새김질도 한계가 오기 마련이다. 극중 부부는 다행이다. 겉으로 고상한 척을 하지만 속으로 내내 무시했던 오동탁이, 세상이 찌들어 셈에 빠른 그가 부부와 자신과의 관계를 깨달았음에도 ‘시’를 매개삼아 그들의 구원하기 때문이다.



 

대여점 헌 책을 사들이고, 월세가 밀린 대여점을 인수해 관리자로 월급을 주는 정도를 두고 ‘구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민효석은 책을 두고 영혼의 무게니 헛소리를 해대지만 1kg당 300원-현실에서는 100원을 주지 않는다-하는 책을 산 대가로 오동탁은 손에 소, 돼지피로 진득한 굳은살이 박이고, 아양을 떨어야 했다. 민효석은 이혼 후 얼마의 위자료를 받아 노숙자가 되지 않았으며, 한소영은 싸구려지만 와인을 즐기고, 강사지만 선생이라는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중졸인 오동탁이 갑작스레 시인이 되는 과정은 실제 문학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극중 말하듯 자비 출판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 바닥의 텃세란 극중 부부의 뉘앙스에도 드러나지만, 깨지기 힘든 구조이다. 구조적인 형질이 아닌 스스로 덧칠하는 고치이다. 그러나 시인들이 다 민효석처럼 살지는 않는다. 극중 인용시를 쓴 시인 김이듬은 박사 출신이고, 대학에 출강한다. 박정대 시인을 얼마 전에 7집을 냈다. 그 역시 활기차게 살고 있다. 오동탁이 드물거나 없는 가상의 인물이듯, 민효석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업시인든 아니든 시인들 대부분 형편이 좋은 편이 아니겠지만 망할 게 뻔한 도서대여점에 연연 하거나, 도서대여점에 자부심 따위를 갖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극중 캐릭터를 거두고 40대 배우인 이유정, 장용철, 김귀선으로 놓고 봐도 이 작품의 의미망은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 한소영이 자위를 하며 시를 읊거나 자포자기 심정으로 오동탁과 섹스를 하는 대목은, 나태 혹은 절망을 포르노에 투영하는 남편의 데칼코마니이면서도 타협의 형태지만, 현실성이 있다기보다는 생뚱맞아 보인다. 그러나 연기자로 그녀의 모습은 중견배우들이 이야기하는, 어쩌면 연극인으로 그들의 실제 삶과 그리 괴리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엿보인다.



 

오동탁은 시인이 되었고, 대여점 ‘책사랑’은 민효석의 의지처럼 시인들의 문화공간이 되었다. 남편은 오동탁에게 자극을 받아 시집을 냈고, 이혼을 하면서 가장으로 책임을 놓고 자유가 되었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다. 20대에 캠퍼스커플로 품었던 사랑과 이상과 열정의 유효기간이 이 정도면 길었다. 이 정도면 해피엔딩이다. 삶이 고역이라는 건 알지만, 이 정도면 한숨을 내쉬면서 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조심스럽게 호상이라고 말하는 기분이지만 말이다. 내가 아는 경우에서 한정하면, 답답하리만치 우직하게 시를 쓰는 이가 있는가 하면, 생양아치도 있다. 잘 쓰고 못 쓰고 차이보다는, 후자는 대부분 감투싸움에 능하다. 예술가로 극 사례는 순수한 경우이다. 세속에 찌들어보이지만 오동탁도 마찬가지다.*




사진출처 - 극단 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