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전율, 그 전율 맥베스]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그 열기
3월이면 국립극단이 주최하는 셰익스피어 3부작 가운데 맥베스가 무대에 오릅니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고, 저 아니더라도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작품이라 무대에 가장 많이 오르지 않나 싶습니다. 리뷰에서 소개하겠지만 근대 이후이 작품이 사랑을 받는 데에는 그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맥베스는 극단마다 해석, 시점, 방식이 달라서 보는 재미가 남다르기도 합니다.
3월 맥베스가 이병훈 연출작으로 나름 원작에 충실하고 품격이 있다면-명동예술극장 공연 작품이 대체로 그렇지요-, 리뷰에서 소개하는 극단 초인의 맥베스는 거칠데 없는 질주로 가득한 공연입니다. 어느 지점에서 대척점에 있다고 할까요. 극단 초인의 맥베스는 1인극으로도 유명합니다. 집단극과 1인극 모두 기회가 되면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이래저래 맥베스는 늘 기대를 하는작품입니다.
[맥베스] 연희단 거리패의 새로운 레퍼토리 http://blog.daum.net/gruru/162 명동예술극장 맥베스에서 레이디 맥베스로 출연하는 김소희 배우의 이전 맥베스 출연작입 리뷰니다. 당시에는 게릴라소극장 작은 무대에서 외국 젊은 연출가의 공연으로 선을 보였지요. 이병훈 연출이 이때 그녀의 진가를 본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2014.02.28]
제목 : 궁극의 전율, 그 전율 맥베스
기간 : 2010/06/04 ~ 2010/06/13
장소 :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출연 : 이영호, 신정원, 김기태, 오형석, 김주연, 김태윤, 윤주희, 이종훈, 김해정, 홍미라, 황재희, 이진겸, 이성재, 박상이, 조도경
극작 : 셰익스피어
각색/연출 : 박정의
조연출 : 이상희
무대감독 : 임해열
조명디자인 : Colin Dieck
작곡 : 조선형
기획 : 김연정
안무 : 박영수
의상 : 김동영
주관 : 극단 초인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이질적인 작품이다. 우선 가장 짧다. 둘째, 햄릿과 리어, 오셀로와 달리 주인공 자신이 악당이다. 맥베스는 전쟁영웅이지만 왕을 암살하고 그 자리를 찬탈한 것도 모자라 정적의 가족까지 무차별 학살하는 범죄자다. 셋째, 극의 비극성이 외부세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내면에서 발생한다. 소름끼치는 비극의 씨앗이 발아하는 것도, 곰팡내 나는 공포의 꽃을 피우는 것도, 시커먼 죽음의 열매를 달게 삼키는 것도 모두 맥베스 자신이다. [권재현 기자의 망연자실] 극단 초인의 ‘맥베스’외(2010-06-15)
극단 죽죽의 <맥베드>, 혹은 극단 초인의 <맥베스>, 혹은 극단 물리의 <레이디 맥베스>. 짧은 식견으로 단정 짓기는 힘들지만 작년과 올해 무대에 올라선 세 편의 <맥베스>는 한국 연극의 일획을 긋는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호불호에 따라, 혹은 완성도에 따라, 의도에 따라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지만 어느 작품 하나 문제작이 아닌 작품이 없고, 기억에 남지 않는 작품이 없다. (2010서울연극제 미래 연극 발굴 프로젝트 ‘미래야 솟아라!’ 참가작 <세 마녀 이야기>가 있지만 단 1회 공연이라 놓쳤다.)
셰익스피어 ‘멕베스’가 가진 묘한 마력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선호하는 편이 아닌데, 올해 본 세 편의 ‘맥베스’는 하나의 명패를 달았으나 각각 문을 통과할 때마다 새로운 세계로 인도했다. 극 초반에 맥베스를 부르는 세 명의 마녀가 하나의 이야기를 하지만 각각 다른 존재이듯이 말이다.
인용한 기사에서 말하는 맥베스의 이질적인 요소, 반영웅으로 맥베스는 ‘근대사회의 발전과정 속에서 개인의 운명이 집단화된 가치규범에 귀속되는 전통적인 삶의 양식이 점차 소멸의 길을 걷게 되면서 개인적 삶과 집단적 삶 사이의 이념적 결속력이 뚜렷하게 약화되어가는 현상’이라는 해석에서 보면 한국 연극에서 새로운 씨앗이 되어 각색과 연출과 배우들에 의해 각각 현란한 꽃을 피운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연극이야말로 기껏 스무 명 남짓 소수의 배우들이 작은 무대에서 벌이는 1인극의 향연인 셈이다.
현란하다고 하였으나, 들여다보면 공허한 맥베스의 내면은 메마른 돌사막의 밤처럼 공허하다. 수컷의 방사가 그렇듯이 올라타고 권력을 잡기까지는 힘들지만 배출은 일순간이고, 깨어나면 몽정처럼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축축한 아랫도리를 부여잡고 자괴감이 빠지고 만다.
극단 죽죽의 <맥베드>가 ‘맥베드’를, 극단 물리의 <레이디 멕베스>가 맥베스 부인을 중심에 놓았다면 극단 초인의 집단극 <맥베스>는 귀족들의 추잡하고 얽힌 권력 싸움에 스러지는 민중들의 시선에서 권력의 아귀다툼을 바라본다. 세 작품이 해석을 달리하는 지점은 맥베스가 점점 미쳐가는 아내 레이드 맥베스를 죽이는 장면이다. 극과 다르게 권력욕에 미친 죽죽의 맥베드는 아내를 죽인다. 죄의식에 빠져 점점 미쳐가는 <레이디 맥베스>의 맥베스 부인과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민중의 눈으로 보기에는 레이디 맥베스가 미쳐서 자살을 했든, 맥베스가 죽였든 다르지 않다. 어차피 권력에 눈이 멀어 벌인 추악한 발광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점은 극 초반 단 위에서 서서 맥베스와 믿지 못하고 경계하는 뱅코우도 다르지 않고, 맥배스를 토벌하는 맥더프나 던컨왕의 아들 맬컴도 역시 다르지 않다. "아름다움은 더러운 것, 더러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깨끗한 것은 아름다울 수가 없다. 권력욕이 부르는 피로 얼룩진 왕관을 집어 드는 더러운 손, 아내의 목을 조르고 옛 전우와 그의 아내와 자식과 섬기던 왕을 죽여야만 찬란하게 피는 꽃. 그러나 누구나 신망하는 그 손이다.
무대를 잡스럽지 않게 확 터놓고, 오로지 15명의 배우들만으로 군무를 추다가 연기를 하고 다시 군무를 추는 장면의 연속은 셰익스피어의 기름지고(?) 현학적인 대사로 엮는 느릿느릿한 전개와 다르게 암투의 전쟁이 벌어지는 급박한 상황을 짜임새 있게 풀어냈다. 젊은 배우 몇은 댄스 가수가 그렇듯 호흡이 달려 발음이나 연기가 아슬아슬하나 군무 속에서 어울리면서 상쇄되어 융화가 된다.
대화가 아닌 독백 형식으로 진행하는 극은 배우들의 움직임과 음악과 조명과 한 덩어리로 뭉치면서 뮤지컬도 영화도 흉내낼 수 없는 연극적이면서도 서사시와 같은 효과를 낸다. 특히 단조로운 무대를 가르고 더하는 콜린 딕의 조명 디자인은 반쯤 어둠에 가린 채로 그 모습이 어둠 속으로 스러지거나 되돌아오는 등장인물들의 상황을 잘 풀었다.
배우의 몸 이외에 어떤 오브제도 사용하는 않는 등, 앞서 소개한 두 맥베스에 등장한 최소한의 오브제가 상징하는 바를 오로지 무대 위에 펼치면서 실험극을 위한 실험극 차원에서 머물 위험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배우 외에 조명과 안무와 음악이 극에서 얼마나 높은 비중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알려준 수작이다.
굳이 세 작품을 비교하자면 극단 죽죽의, 혹은 극단 물리의 작품들이 초연도 아니고 워낙 이전부터 인지도가 있는 공연이었던 반면, 극단 초인의 무대는 다소 생소하였으나 생각지 않은 수확을 건진 기분이라 어떤 면에서 가장 신선하게 다가왔다.
‘배우의 신체를 중요한 표현 수단으로 하는 새롭고 창의적인 무대언어를 만들어 연극의 혀익과 표현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극단을 결성했다는 2002년 극단 소개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익숙한 대본에 더러 여러 극단 작품을 봤다는 느슨한 생각에 준비 없이 갔다가 많은 부분을 놓친 게 아쉽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마음을 단단히 먹고 보고 싶은 작품이다.*
사진출처 - 이루다 님(http://growuptogether.tistory.com/), 마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