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어왕_연극인 객석다이어리 선정작] 광대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라

구보씨 2015. 6. 4. 16:32
리어왕 수정 전 리뷰 : http://blog.daum.net/gruru/2062  
연극인 객석다이어리 : http://webzine.e-stc.or.kr/01_guide/diary_view.asp?SearchKey=Z&SearchValue=%EC%9D%B4%ED%83%9C%EC%9A%B1&rd=&flag=READ&Idx=624


광대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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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극장 <리어왕>

윤광진 연출의 번역극을 보면 원작 안에 머물지 않고 다른 작품이 들어와 확장하는 순간이 있다. 타자의 욕망이 내면화되어 소비되다가 폐기처분 당하는 과정을 다룬 <못생긴 남자>를 신탁에 휘둘리는 오이디푸스의 21세기 버전이라고 보는 식이다. 관객에게 해석이나 상상의 여지를 넉넉하게 두는 방식이 윤광진 연출의 장점이다. <리어왕>은 신작이 아닌 고전이고, 소극장이 아닌 중극장 작품이라 궁금했던 참이다.

셰익스피어라는 원작 무게에 걸맞게 좋은 연기를 선보이는 베테랑들로만 채웠다. <못생긴 남자>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젊은 배우들을 발굴한 사례를 보면 사뭇 신중하게 접근한 편이다. <아메리칸 환갑>에서 호흡을 맞췄던 리어왕 역 장두이를 비롯해, 세 딸 역에 서주희, 이영숙, 서은경이라니 대표급 여배우들이다. 원작에서 키를 쥔 인물은 에드먼드인데 <못생긴 남자> 주역 오동식이다. 주변 인물들인 켄트, 글로스터, 에드거, 알바니 등등 눈에 익은 배우들이다.

배우 구성이 과하다 싶은 반면 무대는 텅 비었다. 연극 무대를 재량껏 구성할 수 있는 명동예술극장 제작 여건은 무대 디자이너에게 꿈과 같은 곳이다.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을 보면서 만족도는 차이가 있었지만, 무대에 실망을 한 적이 없다. 다른 극장과 달리 명동예술극장은 무대만 봐도 남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는 편이다.

<리어왕>은 완만한 경사 무대 한 가운데 의자 하나가 전부다. 게다가 무대 좌우를 터서 등퇴장로가 훤히 보이는 구조라 더 휑하다. 무대를 채운 게 아니라 도리어 넓게 비운 셈이다. 배경도 없고, 소품도 없으니 기량이 뛰어난 배우들로 꾸린 이유가 납득이 간다. 그런데 그렇다고 무대를 넓게 쓰지도 않는다. 경사가 제법 가팔라서 걸음은 조심스럽고, 셰익스피어 특유의 긴 대사를 소화하려니 이렇다 할 동선이 없다. 등장하면 제자리에서 방백을 하듯 주변을 맴돌며 대사를 하는 식이다.

예술극장 <리어왕>

그러니 국내 초연이라면 모르지만, 아는 줄거리에 익숙한 패턴의 반복이라 좀 지루하다. 마침 작년 이맘때 같은 무대 위에 김광보 연출이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를 올렸다. 높고 좁게 친 철망 울타리 안에서 배우들이 뛰어다니면서 속도감을 올리는 방식으로 정적으로 흐를 수 있는 정치극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시도했던 방식이 기억난다. (이 작품은 51회 동아연극상에서 시청각 디자인상을 비롯해 3개 부문을 수상했다.)

이윽고 리어왕이 황야를 헤매는 순간, 경사진 무대가 들리기 시작한다. 줄이 달렸으니 짐작했던 부분이다. 그런데 무대 위로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고, 좌우에서 바람이 거세게 분다. 무대 좌우 옆면을 비웠던 이유이다. 중앙 무대가 분리가 되면서 뗏목처럼 밧줄에 의지해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앞뒤를 제외하고 무대를 비워야만 가능한 무대의 확장! 바닥이 아닌 공간 전체가 리어왕의 연기와 절절한 절망과 하나가 되어서 혼돈으로 빠져든다. 백발과 수염을 흩날리는 폭풍우를 맞닥뜨린 리어왕, 포스터 그대로의 모습이다.

무대 위에는 고목이 한 그루 매달려 리어왕과 함께 흔들리는데, 빈 무대 위에 나무 한 그루는 익히 봤던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배경과 일치한다. 극단 산울림 임영웅 연출의 대표 레퍼토리는 소극장이든 대극장이든 바뀌지 않는 무대이다. 리어왕의 고통은 그리고 광기 서린 독백은 서로 꼬리를 물고 반복하면서 답을 찾을 수 없는 고고와 디디의 대화의 변주이다. 다시 말해 고고와 디디의 기다림이 고도의 행보와 무관하듯이, 리어왕의 절망은 두 딸이 누리는 행복에 하등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뿌리 뽑힌 채로 같이 흔들리는 나무는 리어왕의 격정과 처지를 드러내지만, 한편으로 고도를 기다리며의 나무가 작년의 그 나무가 아니거나 아닐 수 있듯 자체로 불통, 혹은 의미 없음을 상징한다.

예술극장 <리어왕>

2막이 되니 미쳐버린 리어왕에게 세상은 어찌 돌아가든 관심사가 아니다. 막내딸의 죽음도 슬픔이 아니고, 첫째 딸과 둘째딸의 비극도 복수가 아니다. 그렇게 딸들이 다 죽어나갔으니 한편으로 모르는 편이 낫다. 서자 에드먼드의 권력욕도 그렇고 집안에서 벌어진 권력쟁탈극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멀리 객석에서 보면 씁쓸하고 부질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현실을 보면 각자 문제에 피로도가 쌓여 허덕이다 매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극 후반부 광대가 무대에서 객석을 통해 퇴장했다가 다시 무대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어쩌면 명동 시내를 한 바퀴 돌고 돌아온 건지도 모른다. 무대 위 웃기고도 슬픈 비극이 거울처럼 펼치지는 현실을 보고 왔다면 그의 얘기를 알아들어야 하는 건 미친 노인네가 아니라 관객이어야 한다.

[사진: 명동예술극장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