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네스] 아, 그네들의 10년 후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제목 : 아! 그네스
기간 : 2014/05/23 ~ 2014/06/08
장소 : 예술공간 서울
출연 : 김용선, 이윤상, 유학승, 박기산, 강성용, 정의갑, 전광진, 조원희, 김학재, 임솔지
원작 : ‘신의 아그네스’ 존 필미어
극작 : 김윤희, 정진숙
연출 : 정진숙
주최 : 창작공연예술연구소
주관: 극단 마고
후원 : 수원여자대학교, 서울연극협회
‘창조주로 여신’이라는 의미를 가진 ‘마고’를 극단 이름으로 쓰는 극단 마고는 상상하는 바대로 여성 위주의 극단이다. 극단 마고는 수원여대 연기영상전공 출신들이 주구성원이라는 데에 짐작가능한데, 전통극이나 민속극만 하는 극단은 아니다. 다만 제작진과 배우들이 여성 위주인 극단이라니 장단점이 있을 것이고, 색다른 목적이 있으리라고 봤으나, 도드라질 정도는 아닌 듯하다. 극단 소개를 보면 여느 극단이 그렇듯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 는 포부를 드러낸 정도이다. 극단 창단 10주년이라고 하나, 작품에 참여한 면면을 보면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인다. 얼른 떠오르는 생각도 여성 극단이면 장점보다는 한계가 많은 성 싶다. 젊은 극단이니만큼 점차 색깔을 드러내면서 성장하길 기대한다.
그래서 수녀원을 배경으로 삼은 작품‘신의 아그네스’를 차용한 <아! 그네스>는 극단 입장에서는 좋은 판단이다. 졸업예정인 연극영화과 학생을 대상으로 한 ‘2014 대한민국 연극 브릿지 페스티벌’에서 연출상과 연기상을 받아 성과를 내기도 했다. 결과로 서울연극협회에서 운영하는 예술공간 서울 대관 기회를 얻었고, 일반 관객을 만났으니 출발 치고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출발이다.
그러니까 학생/연극인, 아마추어/프로의 경계에서 막 벗어난 자리에 내가 찾아간 셈이다. 지금이야 이래저래 찾아봐서 안다지만 극장을 찾을 때에는 지난한 과정과 사연을 알 수도 없고, 선입견이 생길 수 있어 알 필요도 없다. 허나 극장으로 들어서면 연출, 스텝, 배우들에 후배 혹은 동기인 듯 관객 역시 대부분 여성이라, 학교 공연장에 온 듯 짐작가능 하기는 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 발표작을 보면서 기성 극단에서 다루지 않을 주제를 과감히 다루거나, 흔치 않은 작품을 번안해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기성극보다 못할 것도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 그네스>는 연극‘신의 아그네스’를 올리기 전, 연습실에서 배우들 사이 일어나는 갈등과 해소 과정을 다룬다. 젊은 극단 마고도 그렇지만, 수원여대 역시 선후배 폭이 넓지도 않고, 비슷한 또래끼리 있을 때 볼 수 있는 갈등이 연극을 올리는 과정에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들이 경험했을 성 싶은 일화를 아이디어로 만든 작품으로 보인다. 무대 위에 꾸민 연습실 풍경도 그네들 연습실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아! 그네스> 연출, 배우는 물론 소재, 주제, 무대, 소품까지 그들에게 가장 익숙한 것들을 가지고 왔다. 그러니 어정쩡한 졸업생들 작품들보다 나을 수밖에 없다. 제약조건을 슬기롭게 극복한 점은 좋지만, 대학로 120곳에서 같은 시간 올라간 연극들과 (어쩔 수 없이) 비교하자면, ‘신의 아그네스’를 재해석했으나 새롭지는 않다. 결말 역시 짐작가능하다.
실제 극단 마고의 현실이 그럴 수 있지만, 극중 설정한 작은 극단에는 왜 학교 연극과에서나 벌어질법한 갈등을 방지하거나, 혹은 슬기롭게 극복할 경험이 많은 선배가 없는지부터 관객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현실을 그대로 따오다 보니 극중 설정도 아그네스 역할과 리빙스턴 박사 역할을 누가 맡아도 될 만큼 나이대가 고만고만한데, 실제 그간 ‘신의 아그네스’을 올린 여러 극단 출연진을 보고 왜 그러면 안 되는지 이해해야 한다. 극단마다 다르고, 배우마다 유명세가 다르지만 나이든 중년 여배우 2명과 젊은 여배우 1명으로 구성한 이유가 있다. 종교, 이념, 관습 등 대비효과를 내려는 그 간단한 이치가 극중 극단에는 해당이 되지 않는데, 왜 그런지 관객이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극중 연출 혹은 대표는 실제 무대 위에 등장하지 않지만 권위가 있거나, 도도하거나, 범접하기 힘든 인물인양 그리고 있다. ‘신의 아그네스’를 젊은 여배우들로만 구성하고, 뻔히 벌어질 상황을 방치하는 아마추어나 할 짓을 하고서? 짐작컨대 학교 선후배 사이로 실제처럼 격이 없는 관계로 그리면 낫겠는데, 젊은 연극인들이 기성세대 혹은 기성 극단을 따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럴 리도 없고, 그런 의도는 더더욱 아니겠지만 작품이 학교에서 벌어지는 정도로 보이기 시작한 순간, 엄격한 선후배 관계를 다룬 고발프로그램의 한 장면이 떠오르니 말이다.
샛길로 빠진 얘기지만 젊은 극단이라면 도제식 극단 운영 방식을 따라갈 필요가 있을까 싶다. 더욱이 극중 누가 아그네스를 맡아도 상관없는 마당에 주인공 자리를 두고 영향력을 발휘했네 마네 하는 루머가 도는 정도라면 굳이 극단 형태일 필요도 없다. 가장 맘에 들지 않는 점은 이 작품이 눈물겨우면서 헛웃음이 나오는 웃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게다. 극중 갈등이 풀어지고 연극은 올라가지만 이후 현실은 무엇인가? 극중 전지현이 기획사 오디션을 보는 대신 연극배우로 진지하게 살겠다는 말은 나름 깨우침인 양 풀지만 스스로 연극배우로 사는 게 두렵다는 걸 인정한 셈이다.
연예기획사가 왜 극단과 같은 카테고리에 있지 않고 왜 대척점에 있으며 극중 갈등 요인이 되는가? 기준이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라면 대기업 입사, 공무원 합격, 고시 공부가 왜 아닌가 말이다. 졸업생으로 고민은 이해하지만 연예기획사를 맞은편에 놓는 순간, 갈 수 있는 부류와 없는 부류로 나뉘고, 그 기준은 대부분 키, 얼굴, 가슴크기, 허리둘레, 성형 등 이른바 상품성을 갖춘 외모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연극만 예술이라거나 하는 식의 이분법은 어린 생각이다. 이 구도라면 연극을 하는 그 자체로 열등감을 드러낸 자학이 되고 만다.
동화가 아닌 이상, 이후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라는 바람 역시 쉬이 판단할 건 아니다. 배우도 관객도 마음은 편하지만 삶의 지리멸렬하고 비루하고 비굴한 면을 다루기에 적합한 연극-판타지는 영화, 드라마, 뮤지컬이 선점했으니-에서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하는 결말이 아닌가 싶다. 무대 밖 현실에서도 이 작품처럼 익숙한 이야기와 구성을 답습하는 이상 박수받기가 쉽지 않다. 잃을 게 없을 처지이고, 스스로 대한민국 연극계나 현실에 대해 지독하게 고민하고 있다면 차라리 도발적인 게 낫다. 지극히 얌전한 이 작품 스텝을 보니 제작감독, 예술 감독만 남자이다. 각각 극단대표, 대학교수라는데, 무슨 역할을 했나 모르겠으나 기존 극단 관습이 몸에 밴 그 둘이 차라리 입김을 거뒀다면 어땠을까 싶다.
‘신의 아그네스’를 보면 남들은 다들 짐작하는데 아그네스만 짐짓 모른 척 하다가-혹은 무지하거나-결국 쓸쓸하게 죽는다. 이와 반대로 야무지고 단단하게 여물길 바란다. 연극은 관객을 반성하게끔 이끌기도 하지만 또 위로하기에 좋은 매개체이기도 하다. 거칠고 둔탁한 것과는 다른 부드러운 무엇, 짐승 같은 잡놈들이 없는 젊은 배우들과 스텝들을 보니 좋은 기운이 넘친다. 첫 발을 내딛기까지 참 수고가 많았고, 극 마지막 장면에서 말하는 10년 후 그들의 바람이 이루어지길, 앞으로 좋은 작품으로 만나길 바란다. 몇몇 배우 연기는 기성배우 뺨치는 수준이다.*
사진출처 - 극단 마고, 독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