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바뀌지 않는 사회, 떠도는 유령들
제목 : 유령 - 어느 관리의 죽음
기간 : 2013/10/09 ~ 2013/10/13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3관
출연 : 채희재, 고형준, 정욱현, 김우현
원작 : 안톤 체홉
극본 : 공동구성
연출 : 서은정
기획 : ㈜문화아이콘
주최/주관 : 명품극단
안톤 체홉의 단편소설 <어느 관리의 죽음>은 세밀히 구분하자면 엽편소설(葉篇小說)이다. 하급 관리인 이반 드미뜨리치 체르뱌코프의 갑자기 시작한 재채기에서 비롯된 장관과의 해프닝이나 이후 어이없는 죽음을 다룬 소설은 짧고 간결하다. 이 소설에서 모티브를 딴 명품극단의 연극 <유령>은 소설에서 ‘기계적으로 걸음을 옮기며 집에 돌아온 그는 관복을 벗지도 않은 체로,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죽었다’라고 허무하게 끝난 시점 이후를 주변인들 시점에서 다루고 있다. 관람에 앞서 소설을 읽었거나, 연극이 후기담 형식을 차용했다는 점을 알고 관람한다면 <유령>을 더욱 흥미롭게 볼 여지가 있다.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들이 명품극단 단원들 사이 공동구성을 통해 뼈와 살을 입고 등장해 이반의 허무하고 어이없는 죽음을 어떻게 볼 것인지, 그 원인과 이유를 파헤친다. 명품극단 서은정 연출 데뷔작인 이 작품은 원작의 위트 있고 빠른 전개를 그대로 이어서 재기발랄하게 풀어냈다. 젊은 연출과 호흡을 맞춰 4명의 젊은 배우들은 1인 다역 연기를 제법 능수능란하게 펼친다. 검사 역을 맡은 채희재 배우는 온몸이 땀에 젖을 만큼 열의를 다한다. 극중 시간 흐름이나 상황과 맞지 않고, 법정 공방 장면이 있는 만큼 자칫 긴장하거나 자신감이 없는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다. 흠이라고 보다는 당연히 박수를 보내 격려할 일이고, 사소하게 볼 수 있지만 의상 교체나 공연장 온도 조절을 좀 더 신경 썼으면 좋겠다.
연극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羅生門)을 보듯 이반의 아내를 비롯해 이반의 죽음을 타살이냐, 혹은 자살이냐를 두고 법정에 이반의 정신분석자, 이반의 직장 상사를 비롯해 온갖 분야의 학자들과 전문가들을 재판장으로 불러들인다. 라쇼몽이 그렇듯이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인물을 소환할수록 각자 제 나름의 견해를 드러내기 바빠 사건은 점차 오리무중이다.
이 작품에 바로 앞서 4일 간격을 두고 같은 무대에 오른 김원석 상임연출의 <라긴>과 비교하면 연출을 물론 배우진도 남명렬, 백익남이 출연한 데 비해 무게감이 덜한 편이다. 극단의 현재와 미래를 체홉이라는 동일 코드를 통해 관람하는 재미도 쏠쏠한 편이다. 다만 한 극단에서 두 작품을 연이어 올리는 방식은 내부 경쟁이 좋은 시너지를 낼 수도 있으나 힘이 분산되어 두 작품 모두 이도저도 아닌 경우가 될 우려가 없지는 않다. 더욱이 연극인들이 섬긴다고 해도 좋을 체홉이라니 말이다.
현대식으로 각색한 작품이 아닌 경우, 무대와 세트에 많은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체홉 작품이라, 이번 기획이 연이은 공연으로 무대 제약이 많다는 점에서 다소 워크숍에 가깝다는, 어쩔 수 없는 연극 제작 형편에도 불구하고, 점은 두 작품이 아무려나 각색작이지만 초연이라는 점에서 관객 입장에서 욕심이 생긴다. <유령>에서 <라긴>의 무대 후면 비닐 막 활용을 보는 재미도 좋지만 이 작품 자체만 보면 필요한 장치인지 고민해볼 필요도 있다.
개인 판단에 <라긴>이 연출이나 배우 구성에서 봐도 기대보다 컸던 데 비해 다소 만족이 덜 한 반면, <유령>은 생각보다 나은 편이다. 두 작품을 두고 기대감의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앞서 말했듯 체홉이 소설에서 보여준 속도감과 간결함을 <유령>이 잘 살렸다. 다만 원작이 19세기 말 제정러시아 고지식하고 딱딱한 관료사회를 풍자한 작품인 만큼, 검사가 장관을 유죄로 몰아붙이는 경우는 시대 상황하면 비교하면 맞지 않는다. (뭐, 요 사이 국가기관이 벌인 댓글 논란 이후 벌어지는 대한민국 현실을 보면 당시 러시아와 크게 다르지 않지 않은가 싶다.) 동시대 배경의 작품을 다루고 있음에도 작품 속에 체제에 순응하는 전형적인 인물배치로 사회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드러낸 <라긴>과 다른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죽은 이반은 말이 없고, 그 책임이 이반의 사과를 거듭 무시한(?) 브리잘로프 장관에 있는가, 가 이 작품의 핵심 요지이다. 요사이 법감정으로 봐도 장관을 기소할 수 없긴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장관은 이반의 집요한 사과에 피해자라고 봐도 좋을 법하다. 아무려나 장관을 표적 삼아 오기로 치닫는 검사와 능글능글한 변호사 사이 자신의 입장만 대변하는 인물들 사이 극을 이끄는 인물로 등장하는 죽은 이반은 점차 존재가 모호한 유령이 되어간다.
그가 무대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무대 위에만 머물지 않고, 무대 밖 객석으로도 번진다. 컴컴한 객석에서 웅크리고 않은 관객들도 연출이 의도하듯 시대에 의해 언제든 가해자 혹은 피해자, 그리고 유령이 될 수 있기는 하다. 이런 해석이 사실 다소 무디고, 새롭지는 않지만 연극을 풀어가는 방식도 그렇고 새내기 연출치고는 능청맞다. 그 만큼 성심성의껏 준비를 했다고 본다.*
사진출처 - 명품극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