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광기의 역사History of Madness] 4관객프로덕션의 부활을 기다리며

구보씨 2009. 11. 13. 19:03

4관객프로덕션의 작품을 보고서 곧바로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구매했습니다. 몸에서 열꽃이 피어나듯 들떠서 급하게 손에 쥔 책인데요. 게으름이라니... 물론 아래 글에서 말했듯 500페이지 짜리 두꺼운 책이 부담스럽게 보이기도 했습니다만.... 새것과 다름없는 형태로 책장에 꽂혀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정독에 도전해봐야겠습니다. 블러그에서 종종 소개한 극단 '성북동비둘기'와 더불어 가장 강렬한 인상은 남긴 그룹이 '4관객프로덕션'입니다. '성북동비둘기'가 꾸준하게 작품을 올리는 반면, '4관객프로덕션' 작품은 드문드문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작품성을 우선 고려하는 분들의 작업을 보면 극단을 꾸려나가기가 쉽지 않겠지만... 극장에서 종좁 뵙기를 기대합니다. 참고로, 요즘은 흔한 편이지만 이 즈음에 누드를 다룬 연극이 이슈였는데요. 정말 이 작품 말미에서 남자배우가 실오라기 없이 벗고 연기를 펼쳤음에도 관심을 갖지 않더란 말이죠. 결국 보는 시선의 문제였다고 봅니다.  


재공연이 아닌 작품으로 두 번 관람한 몇 안 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 만큼 강렬했다고 볼 수도 있고, 그들 스스로 '누구나 보고 듣고 이해하고 철학을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난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결말 구성이 각각 달랐습니다. 2주 남짓 공연하는 동안 쉬지않고 변했다고 해야할까요? 두루두루 기억에 남는 수작입니다. [2013.08.24]


제목 : 광기의 역사(History of Madness)

기간 : 2009/11/13 ~ 2009/11/22

장소 : 아트원씨어터 2관

출연 : 김광덕, 박상우, 설의현, 설창희, 안치욱, 이경훈, 이광진, 최두리

구성/연출 : 이준희

제작 : 4관객프로덕션

기획 : 원더스페이스



2008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참가작 포스터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 ‘신체의 운동성, 음악, 이미지, 영상 등의 공간에 대한 파격적인 변화를 통해 우리의 아픈 기억과 몸의 흔적들, 현대인의 무감각의 관계성, 철저한 파괴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보고 나니 내가 이해하기에는 하나같이 거대한 명제들이라 뭐라고 후기를 남겨야 하나 망설였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4관객프로덕션 작업이 광기, 갈등, 폭력을 다루고 있음에도 매력적이다. 


여기서 매력이란 피부처럼 표피가 아닌 속으로부터 끌어낸 형태를 알기 힘들지만 분명히 내 안에 있어서 호응을 한 그 무엇이다. 그들의 말처럼 이 작품은 ‘결코 신나고 재미있는 연극’-4관객 프로덕션은 연극, 음악, 미디어, 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젋은 예술가들로 출발했으며 지금은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일반적인 연극의 범주에 있지는 않다-이 아니다.



2007 거창국제연극제 대상 수상 당시


이들을 지난 10월 7일, 2009뉴웨이브페스티벌에서 ‘The Blue(원작 : 햄릿)’으로 첫 인연을 맺었다. 그때의 생경함을 두고 난 이렇게 썼다. “남산예술센터 자체 뼈대인 미니멀한 골조의 층계를 가리지 않고 드러낸 무대는 하나같이 상처 입지 않은 짐승들이 없는 <The Blue>의 황량한 내면에 적격이다. 무대 뒤 이층, 삼층의 통로를 떠도는 내내, 햄릿의 고뇌와 방황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각 층마다 엇갈린 인물 배치는 단절의 회복 불가능을 드러낸다. 감옥의 한 단면, 혹은 배의 한 단면 같은 무대, 낯설게 들리는 생경한 효과음, 적절한 영상 배치, 밝음보다 어둠에 비중을 더 많이 두면서 무대를 계속 잘라내는 조명은 남산예술센터 극장와도 놀라울 정도로 접점을 이룬다. 다른 극장이라면 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2007 거창국제연극제 대상 수상 당시


그들만큼 무대를 잘 이해하고 접근하는 극단을 익히 본 적이 없다. 공간예술인 연극이 취할 마지막 단계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가능성을 봤다. ‘광기의 역사’가 올라간 대학로 아트원씨어터는 이제 막 완공이 끝난 전문 공연장이다. 건물 안에는 여전히 지독한 페인트 냄새가 배어 있었고, 바닥에는 공사 흔적이 가루가 되어 뽀얗게 쌓여 있었다. 타고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는 판때기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2008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참가작 당시

 

머리가 지끈,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러나 내 머리를 취하게 만드는 건, 단순히 공사 마무리의 탓이 아니다. 내가 극장에 오기까지 타고 안고 서고 기대고 눕고 보고 만졌던 모든 것들이 원래 적응을 하거나 타협하기 전까지 원래 그 형태나 질감, 속성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것들이 품었던 악취는 어디로 간 걸까. 어디로 가긴 내 폐 안에 담겼거나, 내 코를 중독 시켰을 뿐, 우리 주변에 어디든 여전히 떠 있다. 쓰레기가 파도를 타고 방파제 주변에서 살랑살랑 떠다니듯.



2008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참가작 당시


뜬금없는 극장 얘기를 하는 까닭은, 4관객프로덕션의 ‘광기의 역사’가 이성이라는 앞면 뒤의 권력의 통제에 대한 푸코의 반발을 원작으로 삼은 바, 이 작품이 보여주는 광기에 대한 연극적 고찰은 2009년 현재에서만 유효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읽는 게 정당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순간!

 

몸에 대한 고찰이 극에 달해 동성애자로 에이즈 환자로 스스로의 해방을 택했으나 광기라는 식으로 내몰린, 그래서 이런 게 광기라면 얼마든지 광기의 광신자가 되겠다고 한 푸코의 지침을 이어받은 이들의 작업이 왜 유효한가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연극은 관객이 없으면 외로운 장르, 그들이 빈 깡통 같은 내 머리를 뒤흔든 가장 큰 장면은 바로 그림자 연출이다. (위에서 말한바, 900쪽 짜리 원작 ‘광기의 역사’를 두고 엄두도 못 내고 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우선 겸손해지는 것이다.)



2008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참가작 당시

 

남자가 여자의 뒤에 서서 흘러내리는 바지를 올리고, 또 여자의 치마를 내리는 장면의 반복은 반대편 벽에서 쏘는 조명에 의해 점점 형태가 흐트러지면서 반추상이 된다. 이와 대비로 반대쪽에 멈춰선 네 명은 그림자에서 이스터 섬의 거석처럼 인간의 형태를 보이는 반면 실체가 뚜렷하지 않거나 혹은 그림자로는 도저히 네 명의 서로 다른 차이를 구분할 수 없다. 그러니까 통제가 빚은 인형들이다.

 

이 장면에 과도하게 심취한 이유는 인간의 본질이란 결국 이런 것! 이라고 말하듯이 핏물이 배어 나오는 고깃덩이를 들고 다닌 내내,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들, 이른바 ‘동물-되기’가 떠오른다. 베이컨의 그림을 그림자로 그려내다니 놀랍고, 그 효과는 그림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연극의 관습을 넘는 작업이랄지, 연극의 본질을 꾀는 작업이랄지 뭐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2008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참가작 당시

 

그림이 아닌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배우들이 무대 전체를 화폭 삼아 담은 ‘움직이는 그림’은 놀랍고 대단하다. 이 외에 수많은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는 공연이지만, 머리도 달리고 감각도 달린다. 연극을 보는 이유가 아니라 꼭 봐야하는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다.*




사진출처 - 4관객프로덕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