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contraataque] 연극배우들은 어떻게 사는가, 혹은 견뎌왔는가
제목 : contraataque - 반격
기간 : 2013.07.16 ~ 2013.07.28
장소 : 설치극장 정미소
출연 : 차순배, 이요성, 임윤비, 이양호, 임윤비, 홍수영, 이민웅, 김정석, 박소영, 길정석, 이재호
작,연출 : 성천모
움직임 : 조재은
주최 : 극단 수, 극단 종로예술극장
무대장치 없이 속살을 드러낸 설치극장 정미소의 구조는 연극 <반격>의 배경인 시골마을 분교 창고와 제법 흡사하다. 한쪽 어깨를 하릴없이 드러낸 앙상한 벽이나 벽면 베란다식 복층 구조도 그러하다. 여정의 일부라고 보면, 극단 종로예술극장이 걸어온 길을 보면 실제 연극여행을 다녔던 배우들이 ‘연극여행을 다닌다’는 설정을 한 소극장 역시 극중 분교 창고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과정을 정제해 올리는 만큼 관객의 반응이나 평가가 나름 한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게다. 배경이 분교이니만큼 중간고사 쯤 되는 식이다.
연극을 올리는 과정이 대학로 안에서도 치열하지만, 밖으로 여행을 나선 길은 낭만이나 여유와는 거리가 멀었던 듯하다. 실제 과정을 접목한 작품 안에서 배우들은 박수갈채를 받는 대신 돌에 맞거나, 소품이며 의상이 찢기는 고난의 연속에 처한다. 공연을 올려보지도 못하고, 하룻밤 만에 죄인처럼 쫓겨나는 신세는 참 처량하다. 마을에 뜻하지 않은 불행(자살)이 닥쳤는데, 무슨 연극이냐는 식이다. 극 중 마을주민들이 인식하는 연극이란, 광대놀이 쯤이지 싶다. 즐거운 여흥 정도이지, 꼭 볼 필요가 없을뿐더러, 때로 귀찮고 번거로운 요식행위인 셈이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이 작품은 ‘왜 연극인가?’라는 묵은 고민의 반복이자, 곧 동시대성에 대한 열렬한 추구를 보여준다. 그들이 처한 상황을 엇비슷한 연극 상황에 맞춰 대사로 주고받는 방식은 그럴싸하다. ‘고도를 기다리며’ 대사가 종종 등장하는데, 배우들은 뻔히 고도가 오지 않는 무언가(각자 제각각인 희망)라는 걸 익히 알고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부조리한 비극에 가깝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건 어쩌면 찾아올 희망으로 볼 수도 있다.
극중 사건에 다른 작품을 대입해 변형하면서 유희를 벌이는 방식은 다소 눈에 익기도 하거니와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 그러나 딱히 거창한 의미를 찾지 않아도 배우들의 입에 붙고, 몸에 익은 행위의 발현은 현실을 극으로 적극 끌어당기면서, 실망만 더하는 난장판을 상황을 위해 완벽한 소품을 갖춘 무대로 뒤바꾼다. 동시에 피해자(세상 기준으로 볼 때 광대) 집단에서 배우와 관객으로 그룹이 나뉘면서, 연극밖에 모르는 그들이 할 수 있는 ‘반격’의 시작이자 동시에 ‘방어선’을 형성한다. (스페인어 콘트라따뀌Contraataque는 반격, 역습 혹은 방어선이라는 의미이다.)
극단 창단작품 <종로예술극장>. ' 배우들이 몸을 푸는 장면이나, 명패의 등장은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무료공연이라 하여 극단을 불렀지만 마을사람들 눈치에 지레 마을 밖으로 내쫓으려는 학교 선생과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완고한 이장의 등장에 연극 속 연극(허구)이라는 ‘방어선’은 쉽사리 뒤흔들린다. 하지만 유동적인 이들은 곧 새로운 이야기의 줄기를 뻗고, 마을에서 일어난 자살을 두고 즉흥극을 벌인다. 이야기를 엮기 위한 가느다란 실마리는 대가(돌에 맞거나, 손이 찢기거나)가 따르지만 그 역시 허구 속에 밀어 넣고는 반죽을 해 그럴듯하게 발효를 시켜 작품을 완성한다.
이들이 말하는 ‘연극이란?’이라는 질문에 종로예술극장 방식의 독특한 대답을 내놓은 셈이다. 앞서 연극 대사를 당순 차용한 방식은 눈에 익기도 하고, 자칫 현실로부터 도피라는 염려가 들지만, 현실을 적극 반영한 창작극은 그들이 겪은 일들이 연극을 위한 좋은 기반이 되어 썩거나 도태되지 않고, 거듭나는 과정이 된다. 포스터 정도는 아니나 얼굴에 분칠을 하고 사회를 향한 '광대짓'을 제대로 시작할 참이다.
극중에서 누구는 오디션에 합격해서, 누구는 가정사로 극단을 떠나야 할 처지이다. 아마 실제로도 몇몇은 그렇게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연극에 현실을 적극 당기는 힘은, 현실에 좋은 작품을 내놓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둘을 크게 구분하지 않는 이상 헤어짐은 곧 새로운 이야기거리로 확장할 여지를 남긴다. 젊은 배우들이 열심히 연기하는 모습은 참 보기 좋다. 대사가 잘 들리지 않거나, 감정선이 일정치 않아 캐릭터가 불안한 경우도 없지 않으나, 그 모습은 그 모습대로 다음 작품, 아니 다음날 공연을 위한 자양분이다.*
사진출처 - 극단 종로예술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