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소녀 도시로부터의 메아리] 신주쿠양산박 그리고 스튜디오 반

구보씨 2010. 3. 11. 14:07

'스튜디오 반'은 재일동포 연극인 김수진이 이끄는 '신주쿠 양산박'의 한국사무국(1996)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함께하고 있다. 이후 신주쿠양산박과의 한일공동 프로젝트 일환으로  ‘소녀 도시로부터의 메아리’, '해바리기의 관,' '도라지'[도라지 / 해바라기의 관_오픈리뷰 칼럼] 무대와 객석, 그 황홀한 ‘사이’ http://blog.daum.net/gruru/1893 , '열엿새달_요츠야괴담', '베텐카의 소녀' 등을 소개하면서 한일 연극인 교류, 작품 교류 등 연극 문화를 잇는 작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제가 직접 만난 일본인 혹은 재일교포 대부분을 극장에서 뵈었을 정도인데요. 아기자기하면서도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일본연극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서 기회가 되는 한 찾아서 보는 편입니다. 이제는 워낙 유명해진 정의신 작가도 비슷한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 사이 '물탱크정류장' 공연을 올리고 있습니다. [2013.06.07]

 



제목 : 소녀 도시로부터의 메아리

기간 : 2010/03/11 ~ 2010/03/20

장소 : 두산아트센터space 111

출연 : 김수진, 이마누라 요시노, 히구치 코우지, 히로시마 코, 덴다 케이나, 와타라이 쿠미코, 소메노 히로타카, 고바야시 요시나오, 

아소 무기, 나카야마 라비, 문수, 이마이 카즈미, 미나미 카오리, 사라이 타에미, 테라시마 사유리, 신 다이키, 강성락, 박준평

작가 : 가라주로

연출 : 김수진

제작 : 스튜디오 반, 신주쿠양산박



극장 크기가 곧 공연이 펼칠 수 있는 세계의 틀을 규정하니, 아무리 작품이 좋아도 좁은 가옥에 갇힌 듯한 작품을 보면 덩달아 숨이 막히고는 했다. 그리고 상상력의 틀 역시 좁은 틀 안에 가둘 수밖에 없기도 하고 말이다. 대신, 한때 80년대 제작이 열악한 한국 멜로 영화 주연 여배우들이 세계 영화제에서 연 이어 주연상을 받았듯이 좁은 공간은 배우들의 연기력을 응축해 역으로 극대화시키는, 즉 좋은 배우를 양성하는 반작용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나마 전용 극장이 아닌 일반 건물 지하를 극장으로 개조한 소극장의 경우 좁은 공간보다 더 문제인 건 낮은 천장이다. 무대 세트를 제대로 세우지 못하기도 하지만 조명이 낮게 달리면 극 전체 질감이 떨어지는 구조적 한계를 보곤 한다. 그렇다고 대형 뮤지컬 공연장을 무조건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제값을 못하기는 뮤지컬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허다하고, 공연제작비 과다출혈은 흥행에 치우친 작품을 양산한다.



 

아무려나, 극장은 연극의 기본이자 시작이다. 열악한 극장에 들어설 때면 애초 어느 정도 감안을 하는 편이다. 그런데 두산아트센터space 111에서 관람한 극단 신주쿠 양산박의 <소녀도시로부터의 메아리>는 이런 편견을 깨트리기에 충분했다. space 111은 사다리꼴 구조로 객석이 전체 4면 중 두 면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 굵은 기둥이 있다. 그러니까 꼭지점이 무대 중앙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 꼭지점에는 굵은 기둥이 있다. 다시 말해 용도가 좀 애매모호한 구조이다.

 

그래서 대부분 한쪽 객석을 포기하고 아예 막아서 일반 극장처럼 활용을 하는데, 대신 극장 수용 인원이나 무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 층 아래에 있는 중극장인 연강홀에 비해 아쉬운 점이 많지만 그래도 일반 소극장에 비해서는 좋은 시설인 점은 분명하다.



 

그러니까 space 111에서 공연을 볼 때 역시, 덜 하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감안을 하고 본다는 의미이다. <소녀도시로부터의 메아리>는 재일동포 2세인 김수진이 연출 겸 배우로 참여하고, 후원으로 참여한 전주대학교 학생들이 직접 일본에서 같이 훈련하고 연습해서 직접 참여한 작품이다. 그렇다과 해도 일본 배우들이 주축이니 당연히 일본어로 연기를 한다. (중간 중간 한국어와 영어가 천연덕스럽게 뒤섞인다. 신주쿠 양산박의 대표작인 이 작품을 한국에서 다시 선보이기 위해 이들이 연극에 쏟은 정성을 가늠할 수 있다.)

 

게다가 대사가 빠르고 한국인이 이해하기에 난해한 부분이 있어서, 소극장이지만 무대 양쪽 가와 정중앙에 자막판을 설치했다. 동선에서 그만큼 더욱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게다가 여동생 유키코를 찾아 자신의 뱃속(?) 혹은 상상 속으로 떠나서는 주인공 다구치의 여행기는 파란만장하고 기괴하면서 환상적인이다.



 

그러나 현실과 내면이 혼용되는 와중에, 엉뚱하지만 여동생 유키코의 약혼자 닥터 프랑케의 회상에서 일제 강점기 당시 만주 벌판이 펼쳐지기도 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극 전개에 다양한 의미가 함축된 공연은 분명 영화로 만들어도 배경을 두고 고심할 만한 작품이지만, 두루 제약이 많은 작은 소극장 무대에서 그 전환과 전개와 상징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진다.

 

작품 완성도도 완성도지만 신주쿠 양산박의 연극은 거칠 게 없다. 연극이라고 스스로 한계를 규정짓지 않는 것! 괜히 한계를 설정한 내가 얼마나 우스웠나 싶을 지경이었다. 연극이란 게 역시 허구이자 상상력의 세계가 아닌가. 다시 말해, 치밀하고 촘촘한 짜임새라고 할 수 있을 텐데 18명의 배우들이 쉴 새 없이 다양한 배역을 맡으면서, 혹은 계속 의상을 갈아입고, 분장을 하면서, 소극장 공연에서 이전까지 보지 못한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이런 특성이 일본 연극의 전형인가, 는 단 한 편으로 정의내리기 힘들지만 작년 여름 전회 매진 사례로 앙코르 공연을 펼친 사카테 요지의 1평 무대극 <다락방>도 그렇고, 대표적인 수작들을 보면 작은 무대에서 이들이 펼치는 연극에서도 ‘장인 정신’이 배어 나온다. 오밀조밀하면서도 기상천외하게 활용하는 무대 세트도 마찬가지이고, 18명이라는 많은 배우들의 출연도 그렇고, 도저히 수지타산으로 따질 수 없는 부분(한국 연극 상황은 마찬가지지만)이다.



 

전주대학교 박병도 교수는 이들이 프랑스, 캐나다 등지에서 인정받는 세계적인 극단이 된 원인을 찾는다. 작품을 두고도 좀 더 배우고 생각해서 해야 할 말이 많지만, 우선 귀가 열리지 않았는데도 외국 유수의 작품을 봐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해준, 그리고 관객인 주제에 스스로 작은 틀 안에 가두려는 한계를 깨준 고마운 작품이다.


“…나는 도쿄에서도 지하철을 30분 넘게 타고 가서 내려, 공동묘지를 지나 어느 허름한 건물 지하 3층에 자리 잡은 그들의 연습실을 들른 적이 있다. 휴대전화도 물론 먹통이다. 외부와 유일하게 연결된 일반전화도 연습시간엔 코드를 뽑아 버린다. 고립이다. 그 안에서 하루 열 시간 넘게 피 터지게 작품과 싸워 세상에 들고 나온다.…” *

 

사진출처 - 스튜디오 반http://rebel.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