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도미부인_NTOK 전문가 리뷰] 도미부인 치맛단 아래에 서서

구보씨 2012. 10. 15. 14:55

 


[도미부인] 치맛단 아래에 서서

- 20년 만에 찾아온, 20년을 이끌어 갈 국립무용단 레퍼토리


 

‘한국무용 최고의 걸작’ 국립극장 레퍼토리 무용극 <도미부인> 포스터에 붙은 카피다. 왜 최고인지 힌트가 없으니 한국 무용을 도통 모르는 누구는 의아스럽고, 한국무용을 아는 누군가는 어쩌면 발끈할 수도 있겠구나 싶다.  ‘최고’, ‘걸작’을 보고 같이 간 일행은 국립극장 아래 장충동 족발 골목의 ‘원조’ ‘방송 출연’ 과잉 간판만큼 식상하다고 이죽거렸다. 맙소사, 단 단어 세 개로 이렇게 발끈하게 만들다니, 관객들이 팔짱 끼고 '두고 보자'고 보길 원하는 걸까? 영화판에서도 낯간지러워 쓰지 않는 이런 표현을 국립극장에서 보게 되니 생경하다.

 

해오름극장에 걸린 <도미부인> 대형 현수막 아래에서 고개를 쳐들고는 아스트랄한 심경에 빠져 있을 즈음이다. 남산을 타고 내려온 추풍에 이윤정(도미부인 역)의 치맛자락이 펄럭거린다.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작을 연 <수궁가>에서 본 바다처럼 넓디넓은 도창의 치마폭인양 도미부인의 오방색 치맛자락이 몸을 휘감는다. 대놓고 치마 속을 훔쳐보는 꼴이지만 목이 뻐근한 줄도 모르고 멍하니 있었다. 현수막이 펄럭일 때마다 움찔움찔했다.

 

  


사대부들이 난을 쳐서 사랑방 벽에 화폭을 걸고 그윽하게 바라보듯, 치켜든 손끝부터 몸을 타고 흐르는 단아한 그 자태를 옆에 두고 품어보고 싶다, 는 아니 싶었던 백제 개루왕(후대 개로왕이라는 견해도 있다) 심정이 이해가 간다. 3천 명까지는 아니어도 당시 삼국에서 궁녀 많기로는 으뜸인 백제의 왕이라도 말이다.

 

‘포악한 왕의 유혹과 탄압에도 부부의 의를 지킨 도미의 비극적인 이야기’라는 식의 건조한 ‘도미설화’ 교훈은 교과서에서나 통할까, 무용극 <도미부인>에서는 얼토당토않다. 고우면서도 농익은 선으로 가슴을 두근두근 먹먹하게 하는 춤은 관객을 슬슬 어르고 달래며 혼을 빼놓기 위함이지, 케케묵은 교훈을 전하고자 함이 아니다. 작품만 놓고 보면 권력 구조에 얽힌 애절한 삼각구도가 아니었다면, 굳이 도미설화일 필요도 없겠다 싶다. 이런 점에서 ‘의연하고 비장한 한국여인네 시리즈’가 아니어도 상관없겠다.

 

개루왕(蓋婁王)이 듣고 도미를 불러 말하되 "대개 부인의 덕이 정결(貞潔)하다 하나 만약 으슥한 곳에서 잘 꾀기만 하면 마음이 변할 이 많다." 도미 가로대 "사람의 마음은 헤일 수 없사오나 신의 아내는 죽을망정 딴 뜻은 없소이다." 

- 지식백과 [도미설화 都彌說話 ] 소개 중에서

 

설화를 보면 작품과 달리 개루왕이 도미부인에게 첫 눈에 반했다기보다 내기에서 비롯된 자존심 싸움에 가까우니, 애초 의도부터 설화와 선을 긋고 가는 셈이다. 극을 보면 사당패의 호쾌한 무용 못지않게 선녀들인 양 화려하고 곱디고운 궁중무용으로 무대 한가득 채운 춤판에 어질어질할 지경인데, 상사람 즉, 늘 연습과 공연에 땀내 나고 새까맣게 그을린 사당패 아낙에게 선뜻 한 눈에 반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일례로 남편 도미가 부인대신‘한 비자(婢子)를 단장(丹裝)하여 들이었’을 때 왕이 속았다는, 이른바 ‘화장발’에 구분 못했다는 일화에서도 추측해볼 수 있다.

 

  

 

권력자들이 가진 별스런 취향 문제라고 하면 할 말이 없으나 삼국시대 대체로 자유분방했던 성문화로 봐도 그렇고, 놀이 외에 몸을 팔았던 사당패의 기구한 운명을 봐도 그렇고, 당시 사회 기준으로 보면 왕의 상식이 크게 벗어난 일은 아닌 게다. 물론 도미부부의 애틋한 사랑은 아름답고, 이후 왕이 벌인 권력에 기대 삐뚤어진 짓거리는 1.800년 지나도록 망신을 당해도 싸다. 허나 대선을 앞둔 요즘도 아니고, 개루왕의 지질함이 조선시대에 와서 열녀전의 형식으로 변형 수용되면서 까발려진 이유는 유교가 득세한 조선시대에 성을 억압하여 정권유지를 하려던 정치적 의도라고 짐작할 수 있다.

 

만화경 같은 수궁가의 짙은 잔향에 취했다고 구차한 변명을 곁들이자면 도미부인을 엇비슷한 의인극으로 짐작하는 백지장 같은 식견이긴 하나, 관탈민녀(官奪民女)를 지지한다거나 요 사이 무턱대고 치마부터 벗기고 보는 수컷들을 옹호하자는 게 결단코 아니다. 그러나 설화를 무용극으로 옮겼을 때, 그저 그런 무용극이 아닌 레퍼토리로 남으려면 관객을 다시 끌어들일 만한 달뜬 감흥이 동해야 한다. 그렇다면 <도미부인>은 그 만한 성과물을 냈는가?


극장 안으로 들어가기 전, 국립극장 앞마당 문화광장에 서서 이런 잡설이 머릿속에서 늘어났다. 

 

 


보고난 뒤 감상을 늘어놓자면 한참일터니 짧게 정리하자면 앞서 어깃장을 놨던 ‘한국무용 최고의 걸작’인지는 앞으로 다른 작품을 봐야 뭐가 뭔지 알겠으나, 최고의 제작진과 출연진이 합세한 무대는 찬사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다. 도도하기로는 서양식 춤인 발레에서 발레리노의 레오파드 위로 딱 올라붙은 엉덩이가 떠오르지만 종종걸음으로 무대를 둥글게 오므렸다 펴는 군무를 펼치는 국립무용단원들의 버선코, 아니 신발코가 보일락 말락 하는 하늘하늘한 백제 복식도 그 못지않다. 곱고 관능적이기는 말할 것도 없다.

 

작품 자체로 도도하기가 하늘을 찌르는데, 극장이 좁다하고 무대를 가로질러 사용하는 연출은 객석 위치에 따라 사각이 생길 여지가 있지만 그 자존심이 맘에 든다. 오는 11월 16일, 국립무용단이 펼치는 두 번째 레퍼토리 <그대, 논개여!>가 기대되는 참이다.*

 

 

 사진출처 - 국립극장

 

http://blog.naver.com/ntok2010/70149142381


국립무용단 도미부인 전문가 리뷰 

 

'도미부인 치맛단 아래에 서서'

거장들이 남긴 한국무용사의 일대혁명! 20년 만에 부확 하는 국립무용단의 '도미부인' 전막 공연을 두고

각종 언론과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화려한 수식어들을 헤아릴 수 없이 늘어 놓았습니다.

이렇듯 역사적 측면이나 작품성에 있어서 의심할 여지없는 명품공연이라 말 할 수 있는 <도미부인>이

국립극장 전문 칼럼리스트(필명 구보씨)에게는 어떻게 표현되었을까요? 지금부터 엔토니아와 함께 하시죠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