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거짓말_김철승 프로젝트] 한 여자가 짐을 싸면서 겪는 에피소드

구보씨 2012. 4. 12. 17:02

제목 : 김철승 프로젝트 - 거짓말

기간 : 2012/04/12 ~ 2012/04/21

장소 : LIG아트홀

출연 : 유은지, 강소영, 유미영, 정새별, 조아라, 황은후, 황인수

연출 : 김철승

제작 : 극단 마찰

주최/주관 : LIG아트홀


공연에서 몸은 붓이고, 무대는 도화지이다. 말은 어떨까. 물감 정도일라나, 그럼 거짓말은, 제길.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으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말에서 의도가 종종 드러나므로 붓질이라고 해두자. 그럼 거짓말은 의도를 숨기려는 거짓 붓질이다. 혹은 가식이다. 무대로 한정지은 공간에서 관객들은 배우의 몸만 바라보고, 배우의 말한 듣는다. 그런데 하는 얘기가 거짓말이라니, 왜 듣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김철승 프로젝트 <거짓말>은 ‘불완전한 기억 속에 감쳐진 거짓과의 충돌’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작품으로 쉬이 이해가 되지 않으니 주변에 의도적으로 흘린 퍼즐을 끼워 맞춰야 한다. 다만 완성된 퍼즐의 형태는 형태가 가지고 있되, 관객마다 받아들이는 한 편의 작품으로, 무대라는 도화지에서 본 작품과 전혀 동떨어진 이미지가 될 수 있다. 그래도 그만이다. 겉멋이 들어 제목을 이렇게 붙이지 않은 이상, 작품은 <거짓말>이다. 거짓말에서 참말을 찾아내는 작업은 관객 각자의 몫이다.

 


 

'극연구소 마찰.' '사운드 아티스트 지미 쎄르(JIMMY SERT).' '거짓의 소리를 찾아내는 여정.' 리플렛에 적힌 몇 가지 힌트는 무대에서 흔적 없이 사라지는 소리들을 집중하도록 요구한다. 몇 가지 단상으로 남은 공연에서 쓰인 도드라진 소리들이 진짜 이 작품에서 들었던 소리인지 자신할 수가 없다. 자동차 경적 소리라거나, 아무튼 도시에서 흔히 듣는 일상적인 마찰음으로 작품에서 의도적으로 쓰인 ‘현장에서 채취한 소리들’이 내가 들었거나 아는 소리와 분명 비슷하지만 다른 소리인 바, 내 귀가 기억하는 소리는, 다른 소리 즉 거짓말이다.

  

그렇다면 배우들이 보여주는 즉흥성을 띤 ‘계산되지 않은 몸의 움직임과 즉흥적 내러티브로, 무대 위에서 철저하게 ‘현재성’을 추구하는‘ 방식은, 오로지 온전한 내 기억이 아닌 홍보문구에 따온 이런 식의 가식적인 기억은 또 어떠한가. 즉흥성과 내러티브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의문인데, 내러티브를 당최 알 수 없는 전개는 당혹스럽게 하는 한편, 무대를 떠나 LIG아트홀 밖 강남사거리 역으로 시선을 돌리면, 혹은 돌렸다고 생각을 고쳐먹거나 속이면 무질서한 행동들은 밀레의 만종을 보듯이 아주 평화로운 풍경화가 된다. 소리 역시 앞서 말한 그대로이다.

 

 

 

그 안에서 뒤섞여 있을 때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게 애써서 굳이 극장으로 들어와서 보니 매우 이질적이었다는 식은 <거짓말>이 아니어도 그 뒤틀어진 차원과 차원 사이 간격으로-개인적으로 현실과 무대를 그렇게 이해한다-종종 깨닫는 부분이다. 물론 완성도의 차이는 있기 마련인데, 간격을 보여주는 정도로 그치면 역시 틀을 깨지 못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 틀을 깰 수 있는 유일한 창구 역시 공연이고, 공연예술가의 몫이다. 무대에서 보여주는 상상력이 과학자나 기업가만도 못한 시트콤 같은 작품들을 보면 나름 웃음, 슬픔, 허무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시간이 아깝다.  

 

이 작품이 흥미로웠다면 내가 어찌 이해했던지, 여자의 기억을 되짚어간다는 데에 있다. 누군지 모를 낯선 여자의 기억은 그녀가 목욕을 하거나 섹스를 하는 장면을 재현하지 않는 이상, 지루한 일상이 뿐이다. 그럼에도 보여주는 기억을 구현하는 방식이 아닌(구현 방식은 자유로우나 가다듬을 필요가 여기저기 눈에 보인다. 내 기준에서 그럴 수도 있다.)파편화된 기억을 보여주는 의도에 이르면, 작품 속 그녀가 기억하고 보여주는 기억이라는 것이, 내가 기억한다고 믿는 내 기억이 그렇듯이 과연 제대로 된 기억인가, 의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녀의 기억은 온통 엉뚱한 행동을 보여주는 인물들과 행동의 반복과 지긋지긋하게 들리는 현장음인데, 내 기억이 재현하는 방식이 모니터링을 한다면 그리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배우들이 보여주는 같은 행동의 반복은 내가 원하는 어떤 식으로 재현하고 구성한 인물들의 패턴일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한다는 사람들의 특징을 겹쳐보면 결국 내가 좋아하는 체위가 어떤 여자와 만나든지 거기서 거기이듯 같은 식의 반복된 장면이 재현될 수도 있다. 강하게 부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의도 때문일 수도 있고, 볼륨을 올린 파열음이 그렇듯이 우연이 빚어낸 소리라고 착각하지만 내 주변 일상에서 벌어지는 몇 가지 반복되는 상황으로 익숙해진 오감 때문일 수도 있다.

 

소리에 대한 경계, 혹은 부정. 김철승 프로젝트가 의도하는 바에 부러 충실할 필요는 없겠지만, 늘 이어폰을 끼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일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스스로 방어막을 친 그 공간에서 울리는 소리 역시 선택한 소리인지, 혹은 선택했다고 ‘착각’을 유도하는 소리인지 궁금하다. 거짓의 여정을 쫓는 주인공 여자의 모습은 주변에서 너무 흔하다. 여자가 아닌 남자여도 마찬가지다. 일상에서 들리는 거짓말, 정확하게는 거짓음을 과장하여 올리는데, 우리는 편안하고 졸리다.*


사진출처 - LIG아트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