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냐 아저씨] 바냐와 소냐의 젖은 옷이 마르듯이
제목 : 바냐 아저씨Uncle Vanya
기간 : 2012/02/28 ~ 2012/03/04
장소 : 서강대학교 메리홀
출연 : 임형택, 최승일, 송현서, 최현숙, 최지훈, 고병택, 이지혜, 김은주, 송인서
작가 : 안톤 체홉
연출 : 정승현
주최 : 서강대학교, 서강연극발전기금위원회
주관 :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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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냐 아저씨>는 ‘숨 막힐 듯한 소우주적 가족세계의 모습들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가? 몰락해 가고 있는 반(半) 지식인이자 반(半) 시골사람이 된 한 부르주아계급의 자화상을 그리기 위함인가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아쉬움이나 불만들을 토로하는 것인가?, 아니면 서로 운명처럼 맺어지게 되는 비운의 사랑이야기를 묘사한 것인가? 바냐 아저씨의 몰락 이야기인가, 아니면 한 인생 또는 여러 인생들의 실패담인가? 언어와 감정들이 난무하는 인간세계의 폭력성을 그리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등장인물들의 욕구와 욕망, 그들의 통찰력이나 사생활 노출증, 무기력함 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가? 행동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무능력, 폭력에 대한 무관심 또는 등장인물들이 파멸되어가는 모습들을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현실도피적인 우리들의 태도를 비판하기 위함인가?
2010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해외초청작 리투아니아의 OKT/빌뉴스시립극단 <바냐 아저씨 (Uncle Vanya)>을 올린 프랑스 연출가 에릭 라카스카드(Eric Lacascade)는 체홉이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할 여지를 던진다고 했다. 그는 ‘남녀, 나와 타인 간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자 했고, 소련의 지배를 받기도 했던 동구권 국가 리투아니아 배우들은 확실히 빠르게 쏘아붙이는 말투나 빠른 진행에서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빌뉴스시립극단이 전위적인 형식을 유지하면서 고전극은 현대극처럼, 현대극은 고전극처럼 공연하는 등 새로운 연극 형식을 추구하는 극단이긴 하지만, 한국의 바냐 아저씨들이 보여준 소심한 고뇌와 다르게 바냐역 Vaidotas Martinaitis는 거칠게 속내를 드러내고 표현한다.
바냐가 매형 세레브랴꼬프를 향해 권총을 쏘는 장면을 보면 국내 연출작은 ‘무대 뒤에서 들리는 총 소리’라는 원작 지문에 충실해 맞추고 싶었으나 그렇지 못했다는 식으로 자괴감에 곧 빠져들지만 빌뉴스시립극단의 바냐는 무대에서 포효를 하면서 매형이 아닌 사방으로 총을 쏴댄다. 홧김에 벌어진 상황으로 진짜 죽이려는 의도보다는 쌓인 분노를 맘껏 표출한다는 식이다. 원작 지문에 억매이지 않은 해석은 바로 이어지는 4막에서 화해에 대한 설득력에 힘을 보탠다.
2012년 2월, 서강연극연출가인큐베이팅 첫 번째 작품 <바냐 아저씨>는 어떨까? 공을 들여서 시골 풍경을 형상화하면서 짧은 기간 올리는 초청 공연이나 소극장 공연과 다르게 기대치를 더했다. 박 경이 디자인한 무대는 바닥에 물을 받고 그 위에 나무로 상판을 짜 얹히면서 체홉의 또 다른 작품 <갈매기>의 배경인 호숫가를 떠올리게 한다. 바냐나 소냐가 20년 넘게 응축한 감정이 폭발하는 장소가 바로 물속이다. 원경으로 보면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물장구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 벌어지는 셈이다.
같은 이유로 메리홀 깊은 무대 뒤쪽은 갈대밭으로 꾸며서 인물들 사이 갈등과 상관없이 풍요로운 자연을 보여주면서 갈등을 대비해서 보여준다. 매형 부부가 떠나고 남은 사람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앉은 장면을 사진이나 그림으로 덜어내서 본다면 목가적인 러시아 시골 풍경이라고 할 만하다. 치졸한 다툼과 자연 풍경은 어울리지 않지만 희극 혹은 비극으로 명확하게 분류되지 않는 체홉 작품이고 보면 무대의 변화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이런 무대 장치는 작년 12월 같은 극장에서 올린 극단 맨씨어터(연출 오경택)이 올린 체홈의 <갈매기>에서 본 무대가, 그 전에는 남산예술센터에서 올라간 <됴화만발>의 길게 짠 무대와 겹쳐보인다. 단순하게 짠 듯하지만 소품을 옮기는 사이, 큰 변화를 주지 않아도 생각보다 암전이 긴 편이다. (오경택의 <갈매기>는 하인들이 무대를 세팅하는 동안 삼각 관계를 마임으로 짜서 지루함을 덜어냈다.) 1막 엘레나가 타는 그네는 희곡에 충실하려는 의도였겠지만 그녀의 발랄함이나 자유로운 성정이 옷이나 행동에서 드러나고, 또 무대를 새롭게 구성한 이상 굳이 필요했을까 싶다. 연극을 시작하기 전, 관객들에게 첫 인상으로 호숫가 주변, 무대 위에서 늘어뜨린 그네가 주는 인상이 색다르면서도 강렬하게 남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연못가라는 설정에 비해 바냐나 소냐의 감정 표출이 소극적이라는 점도 들인 공에 비해 아쉬운 부분이다. 원작에 충실한 나머지 늙은 하녀나 다른 인물들이 물에 흠뻑 젖은 바냐나 소냐에게 보여주는 리액션이 없거나 미약하다는 점도 마찬가지이다. 배경이 무더운 여름으로 어깨를 드러낸 빨간색 원색 원피스를 입은 엘레나 외에 다른 인물들이 입은 무채색 계열의 계절을 알 수 없는 긴팔 의상은 갈등의 중심축으로 엘레나를 부각시키는 한편 복합적인 성격인 엘레나를 요부에 가까운 캐릭터로 한정시키는 단점이 있다.
원작을 충실하게 따라가면서도 다소 과하거나 너무 친절한 몇 가지 장치, 조명, 음향 등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첫 번째 작품으로 작품 선택 등 역사성을 반영해야한다는 부담과 새로운 해석 및 시도 사이에서 다소 중심을 잡지 못한다는 인상을 준다. 서강대 출신인 최용훈 대표가 이끄는 극단 작은신화의 노련하고 좋은 배우들이 함께 하면서 기대치를 올렸지만, 임형택 배우가 연기하는 바냐는 기존 내면의 갈등을 삭히는 연기가 평소 능청스러움이 일품인 그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다. Vaidotas Martinaitis만큼 과격한 바냐를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 바냐로 나선 이상 기대치에 비해 두루 아쉬움이 든다.
늙은 하녀 마리나 역의 최현숙 배우도 넉넉하게 집안 전체를 조망하는 위치에 앉아 사람들을 다독이면서 극 중심을 잡지만, 배우로 품은 역량에 비해 필요 이상으로 절제된 연기를 보여주거나, 쓰임새에 맞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 그녀는 넉넉한 외모로만 쓰일 배우는 아니다. 팔색조 같은 연기를 선보이는 이지혜 배우 역시도 갈등이 제대로 표현되었다기보다는 무난한 수준에 그치지 않았나 싶어 아쉽다. 의사 아스뜨로프 역 최지훈은 시골 촌부 바냐와 대척점에 두고 캐릭터를 단순하게 설정한 나머지 숲에 대한 애착을 보이는 모든 대사가 단순히 감언이설처럼 들리기도 한다.
신인 연출가 정승현의 역량 부족으로 돌리기보다는 서강연극연출가인큐베이팅지원 프로그램이 가진 취지에 억매인 경직성 혹은 부담이 작품에서 묻어난 게 아닐까 짐작한다. 물론 내가 본 공연은 이틀째로 초반이라 프리뷰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갈수록 좋은 공연이 올라갔으리라는 믿음은 있다. 원작이 품은 무게도 그렇고, 휴식 없이 140분가량 흔들림 없이 끌고 가려면 연출로 많은 내공이 필요할 것이다. 그가 중견극단으로 한국 연극의 맥을 잇는 극단 작은신화에서 내공을 쌓는 중인만큼 앞으로 단련 성과를 눈여겨보겠다.*
사진출처 - 2010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서강대학교
수작으로 꼽힌 레프 도진의 '바냐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