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덕원 이야기] 그 심리적인 거리에 대하여
한국 연극의 맥을 근근히 이어온 극단 체제가 분업화, 전문화되는 추세에 점차 바뀐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공공극장 제작 방식으로 인해, 극단 집단 수용보다는 효율과 절차에 따라 연출, 작가, 배우, 무대 등 작품이 선정되기 때문인데요. 이익이 앞서는 다른 분야에서는 청탁 혹은 결탁 의혹이 있는 이상 구분을 짓는 게 맞다고 보지만(그래도 뭐, 토건사업이나 이권사업을 보면 늘 그놈이 그놈이고, 그 기업이 그 기업입니다만), 연극은 특성 상, 또 수익 구조라 나기 힘든 예술이라고 하면 극단에게 제작지원금을 주는 방식도 나쁘지는 않다고 봅니다. 다만, 이 역시도 극단 대표와의 관계 등 논란의 여지가 많으리라고는 봅니다.
극단 차이무는 자체 내에서 배우와 작가와 연출이 서로 넘나들며 공존하는 방식으로 여전히 작업을 합니다. 연희단거리패와 성격은 다릅니다만, 자체 레퍼토리로 자체 극단을 운영하는 등 손에 꼽는 극단이지요. 연극와 영화를 넘나드는 연출가 이상우 대표를 비롯해 문성근, 강신일, 이대연 등 워낙 유명한 배우들을 양산한 유명한 극단(http://www.stageship.com/)이라 따로 소개가 필요없지 싶습니다. 자체 극장을 운영하기도 하고, 또 레퍼토리 작품도 꽤 재밌습니다. <양덕원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목 : 양덕원 이야기
기간 : 2010/05/07 ~ 2010/08/29
장소 : 아트원씨어터 3관
배우 : 신혜경, 김학선, 최덕문, 송재룡, 김지현
희곡 : 민복기
연출 : 박원상
예술감독 : 이상우
제작 : 극단 차이무
양덕원은 어디쯤일까. 배경 설명을 보면 지리상 강원도 홍천군 어디쯤 도로 개통으로 개발붐이 슬슬 고개를 드는 시골 소도시지만, 내 개인 감성으로 접근하면 몇 년전 친척 어르신 장례식장 풍경이 눈에 선하게 펼쳐진다. 당시 기억을 떠올리면, 안타까운 일이나 노환으로 돌아가셨으니 호상에 가깝고, 자식들 역시 무던하게 자랐으며, 다리를 다쳐 누워 거동을 못하는 아버지 대신 참석한 자리는 서로 왕래가 드물어 사실 돌아가신 어르신을 잘 알지 못한데다, 몇몇 사촌 빼고는 통 모르는 사람들 틈에 있다 보니 덤덤했다.
장례식장에 가보면 알지만 아버지의 부재는 사실 죽은 뒤가 아니라 가장의 역할을 넘긴 직후부터 시작된다. 가족을 책임지는 힘겨운 역학을 내려놓은 한편, 더 이상 아버지 역할을 기대하기 힘든 현실에서, 다시 가장 존재감을 발하는 순간은 자신의 장례식에서나 때이다. 허망하다고 해야 할까, 순리라고 해야 할까. <양덕원 이야기>에서도 병환을 앓고 있는 아버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내내 등장인물의 대사로만 처리하는 그의 생사여부는 후반부 무대를 나직하게 밝히는 조등으로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중년의 자식들에게 고향집 부모란 그저 언젠가 한번 겪고 넘어가야할 큰 대소사 정도로 치부되고 말지만 어머니의 모습은 아버지와는 또 다르게 다가온다. 임종이 예정보다 3시간을 넘기고 3일을 넘기고 3주를 넘겨 3달을 넘길 판에 이르러서 서울에서 강원도 양덕원까지 물리적 거리는, 점점 아득한 심리적인 거리로 바뀐다.
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겠지만, 늙으신 부모님과 함께 사는 자식과 타지에 사는 형제 사이 다른 입장인 여극 설정이 현실과 겹친다. 뭐, 좁은 집에 같이 살면서도 부대끼기보다 아침 출근하면서 잠깐 인사하고, 밤에 불 꺼진 안방을 보는 정도니 멀리 사는 형제들을 탓할 일도 아니다. 나라고 부모님이 좋아 같이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따로 떨어져 도히지에 사는 자식들은 능력있다는 평가를 받고, 부모와 같이 살면 무능력하다는 얘기를 듣는 아이러니라니. 연극을 보면 동네에서 수재라고 소문난 큰아들은 중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서울로 유학을 떠났고, 둘째 아들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서울로 형을 따라 나서나, 막내딸은 고향에 살다 전문대를 나왔다는 설정이다.딸은 자신의 처지를 두고 어머니 앞에서 속상함을 토로한다. 어머니도 정작 부모를 챙기는 자식은 딸이지만, 서른 넘도록 시집 못 간 모습이 안쓰럽다.
임종 소식이 들릴 때마다 데면데면하게 살던 자식들이 만나는 자리가 이어지고, 그들 사이 어린 시절 재밌는 추억은 화기애애한 자리를 이끈다. 짐작 가능한 전개지만, 곧 삭지 못한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꺼끌꺼끌하니 흉터가 남을 만한 생채기를 나이들어 서로 남기기도 한다. 허나 그나마 속으로만 끙끙 앓거나 가식적으로 반가운 척 하는 가면은 한 꺼풀 벗어낸 모습이라, 형제들이 많은 비슷한 처지에서 보면 부럽기도 하다.
조등이 달린 시골 어느 조용한 마을을 미시적으로 접근해 속살이를 담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뒤로는 압축 성장을 거친 한국 사회의 단절의 공간을 잇고 덧대는 의지를 담고 있다. 아버지와 한국전쟁을 같이 겪은 지씨는 코믹한 역할로 자칫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젊은 관객들에게도 쏠쏠한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그가 허풍을 떨듯 말하는 전쟁을 겪은 경험은 재미를 위한 장치만은 아니다.
지씨와 주인공들은 같은 공간에서 만나지만 50년 넘는 골이 그대로 묻어난다. 지씨의 능청스러운 모습에서 극중 임종을 앞둔 상황이 이끄는 긴장이 풀리고, 재미있게 보고 있지만, 그의 얘기가 정작 삼남매의 얘기처럼 몸으로 와 닿지는 않는다. 미흡한 연출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으로만 치부되는 삶, 내내 앞만 보고 달리는 삶을 강요받으면서 살아온 세대인 탓이다.
작품이라기보다 상품에 가까운 연극 간판이 더 많이 눈에 띄는 대학로에서, 극단 차이무가 양덕원의 박제된 듯 멈춘 감수성과 가장 먼 거리에 있을 수도 있는 자본의 아귀판에서 순간 이동을 하듯, 관객들을 양덕원 마을 어귀로 데려다주는 실력은 단연 일품이다.
떠들썩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연극을 하겠다고 나서는 젊은이들이 꼭 봤으면 하는 이유는 우선 장치가 아닌 연극 본연의 기본기가 탄탄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또 책으로 배우기 힘든 정서를 품은 만큼, 연극을 좋아하는 관객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극중 아버지의 부고를 두고 보이는 반응처럼 우리 사회에서 잊히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를 준다. 어느 순간 <양덕원 이야기>를 두고 정서적 교감을 느끼지 못할 때가 그리 멀지 않았다는 괜한 불안이 든다. 그래서 <양덕원 이야기> 같은 작품이 필요하다.*
사진출처 - 극단 차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