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서글퍼도 커튼콜_2011 봄작가 겨울무대] 커튼콜은 늘 박수를 받아야 한다

구보씨 2011. 11. 9. 16:02

제목 : 2011 봄작가 겨울무대 - 서글퍼도 커튼콜

기간 : 2011년 11월 9일(수) ~ 11월 10일(목)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출연 : 송인성, 이혜진, 천용철

작가 : 김슬기

연출 : 오유경

주최/주관 : 한국공연예술센터


 

다른 나라라고 얼마나 다를까 싶긴 하지만 물욕이 모든 열정을 거세하는 이 땅에서 예술을 한다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연극 역시 마찬가지인데, 몇몇 리뷰나 자료로만 얼추 짐작할 수 있을까, 무형의 예술 연극은 그 순간에 집중하지 않으면 흔적을 남기지 않으니 역시 참 어려운 길을 에둘러 돌아가는 일이지 않나 싶다. 그리고 그 몫은 관객이 책일질 부분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객석에서는 늘 집중하기 마련이다. 


<봄작가 겨울무대> 본선 세 번째 작품이 올랐다. 한 주에 두 편을 올려야 하는 짧고 바쁜 일정은 관객 입장에서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감안할 부분이다. <봄 작가, 겨울 무대> 네 작품 중에 가장 적은 등장인물 3명만 나오지만, 유일하게 평면 무대를 활용하는 수준이 아닌 공을 들여 무대 세트를 세웠다. 제목과 동일한 카페가 그 만큼 연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첫 날 저녁 공연, 페인트칠이 덜 말랐는지 냄새가 빠지지 않은 채였다. 뒷자리 여학생들은 ‘아세톤 냄새가 난다’고 했다. 하지만 극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은 매니큐어로 꾸밀 여지가 없는 은둔형 외톨이이다. 1년 동안 방치된 오래되고 묵은 커피숍이라는 설정에 “커피는커녕 보리차도 안 끓이는데 여태 맡아지는 이 커피 향은 뭐지?”라는 대사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소극장이라 가장 외곽 자리라고 시야가 나쁘지는 않지만, 내가 앉은 자리에서 보면, 관객 기준 무대 오른쪽 구분해서 설치한 화장실 세트 창문 너머로 세트 안쪽 앙상한 뼈대들이 보였다.

 

그러니까 바랜 듯 칠을 했지만, 해묵은 감정을 무대로 표현하기에는 아쉬움이 든 셈이다. 만약 이 작품이 레퍼토리 공연이었다면 좋지 않은 인상이 남았을 테지만,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인데 이만한 완성도로 무대를 꾸민 의도에서-경쟁 구도로 보고 싶지 않으나 넷 중 하나를 선정하는 기준에 보면-연출의 강한 열정이 느껴져서 좋았다. 세트는 현실적인 카페를 옮기는 데에 멈추지 않고, 상처 입은 등장인물들이 상처를 감추기 위해 밖으로 드러낸 가시처럼 예리한 각을 이뤘다. 한편으로 극중극을 넣지는 않았으나  제목에서 암시하듯 극중 대본이나 등장인물의 과거 등에서 연극과 긴밀한 연계망을 두고 있어 부러 무대 세트를 ‘연극용 무대’처럼 꾸민 듯도 하다.



연습장면. 우람의 우발적인 행동으로 상처을 드러낸 반지를 정란이 위로하고 있다. 

 

그렇다면 연극이 그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짐짓 속내를 감추고 꾸민 삶에 대한 회의처럼 작품이 전개되고 있지만, 상처를 드러내지 못하는 그들이 유일하게 행복한 순간 역시 쌓인 대본을 가지고 카페에서 그들만의 연극을 올릴 때이다. 조금씩 대사를 빌어 마음을 표현하고 있으니 의도는 나쁘지 않다. 다만 그때 치는 대사들마다 의미가 있을 텐데 전개가 빨라 잘 전달되지 않는다. 주인공이 극 처음 설명 없이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 대사로 여는 장면은 '프롤로그'라고 쓴 대본으로는 상관없지만 무대 위에서 전달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사실 이 작품이 가진 문제점은 짧은 시간 내에 상처를 드러내기에 급급해 내내 감정이 치닫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밀어붙면 관객이 지치거나 내성이 생겨 배우들이 상황극에서 절절하게 외치는 아픔이 제대로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한편으로 세 사람의 지독한 과거를 보면 계속 높아지는 격한 감정선이 그럴 만해보이지만, 냉정하게 과거를 분석하면 부러 절정을 설정해서 조합한 듯 다소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데뷔작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일 수 있으나 가슴으로 삭히고 거리를 두고 보는 과정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주인공 은반지와 유정란을 잇는 역할인 우람이 경우는 캐릭터나 그가 벌이는 몇몇 극단적인 사건에 대해 분명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가 여자 둘 사이를 잇기 위한 도구로만 보이는 부분은 등장인물이 적은 작품에서 크게 보이는 게 사실이다. 캐릭터가 명확하지 않으니 은반지와 관계가 모호한 데다, 몇몇 사건은 전개를 절정으로 치닫기 위한 행동으로 보여 거리감이 생긴다. 그를 품지 못하는 여자친구 혹은 엄마의 미지근한 태도는 극이 제기하는 ‘안팎으로 구원이 없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의도와도 잘 맞지 않는 부분이다.

 

데뷔하는 작가들마다 힘든 시기를 겪고는 하나, 무대를 상상하면서 쓴 희곡은 무대가 되지 않는 이상 그 의미를 찾을 수 없다. 그리고 극중 널브러진 오래된 대본들처럼 읽기 위한 희곡으로 남을 뿐이다. 그 대본을 하나하나 분석했을 작가의 노력이 보이는 건 분명하다. 그래서 무대화된 언어를 이해하는 과정라고 보면 극 마지막 장면 등 김슬기 작가의 장점이 보인다. 앞으로 어떤 작가로 거듭날지 모르는 일, 데뷔작을 본 이번 경험은 큰 행운일수도 있다.*



한국 연극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작가들. 보기와 달리 아픔(?)을 다룬 김슬기 작가(오른쪽 첫 번째)


사진출처 - 한국공연예술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