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홀연했던 사나이_2011 봄작가 겨울무대] 봄작가 겨울무대의 문을 여는

구보씨 2011. 11. 2. 15:57

제목 : 2011 봄작가 겨울무대 - 홀연했던 사나이

기간 : 2011년 11월 2일(수) ~ 11월 3일(목)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출연 : 이승기, 배수진, 박호석, 이은주, 장경아, 송영학, 배상돈, 이승구, 양승한

작가 : 오세혁

연출 : 유수미

주최/주관 : 한국공연예술센터


 

올해로 4회를 맞이하는 <봄 작가, 겨울 무대>은 신예 작가들에게 프로 무대로 첫 걸음을 축하하는 자리로 의미가 깊다. 겨울 무대라고 했으나, 가을이 결실의 계절이니 가을 무대라는 게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이 프로그램이 기대가 되는 건 갈수록 지원이 는다는 데에 있다. 올해는 이틀씩 4회 공연 기회가 주어졌다. 짧지만 작가들에게는 참 행복한 시간일 것이다. 그런데 선정된 4명의 작가 중에 튀는 인물이 한 명 눈에 띈다. <홀연했던 사나이>의 작가 오세혁은 첫 걸음을 축하하는 자리에 끼기에 좀 쑥스럽다. 정식 작가 데뷔를 작년 신춘문예 당선으로 한 셈이니 2005년부터 극단 걸판 활동 이력이 문제될 건 없지만, 올 한해 그는 가장 바쁜 작가이자 연출가였다. 단연 연극부문 올해의 신인상에 해당하는 그는 한국공연예술센터에서 기획한 차세대공연가시리즈 2011 <봄 작가, 겨울 무대>의 전체 흥을 돋을 스타로는 손색이 없다.

 

인터뷰 기사를 보면 김지훈 작가와 비견되기도 하는데, 그래서 <홀연했던 사나이>는 기대가 다른 참가작에 비해 높은 편이다. 아니나 다를까, 매진이다. ‘게릴라 극장 젊은 극작가 오세혁 기획전 : 크리스마스에 소꿉놀이를(크리스마스에 30만원 만난 확률 + 아빠들의 소꿉놀이)’로 만났을 때 일품이었던 시선을 잡아끄는 순발력 넘치는 도입부와 극을 끌어가는 집중력이 떠오르는 한편, 마지막 결말이 늘 아쉬웠다. 희곡보다 코미디 프로 작가로 잘 어울리는 특징이지만 이야기 안에 늘 서민들의 애환을 담았다. 나이 서른에 트인 시야는 갈수록 깊고 넓어지겠지만, 우선 위트 있게 보듬는 따뜻한 시선만큼은 팍팍한 세상에서 필요한 재능이다.

 

신춘문예 당선작 두 편에서 드러난 특징은 이번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다만 8월 공연과 11월 공연 사이 커다란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보면 약점으로 지적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그에게는 모든 작업이 바쁘게 겹쳐서 진행되고 있을 터, 훌쩍 자란 내공보다는 눈에 확 드러나지 않아도 멈추지 않은 성장판을 확인하는 자리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신춘문예 당선작과 어린 시절 실제 겪은 경험담을 풀어쓴 이번 작품만 놓고 비교하면 마지막 반전에서 힘이 떨어지는 부분은 어린 시절 경험담을 엮은 이번 작품을 보면서 좀 더 우려가 된다. 실직 가장을 다룬 <아빠들의 소꿉놀이> 외에 <크리스마스에 30만원 만난 확률>도 본인 경험담을 풀어냈지만, 어린 시절 경험담을 재현한 이번 작품은 80년대를 배경으로 삼아 좀 더 묵혔으면 소재주의 작품으로 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연습 장면. 홀연했던 사나이는 거들었을 뿐, 등장인물들이 알아서 극을 써내려갔나니.

 

극작법에 능숙한 혹은 정석에 따라 오세혁 작가가 쓰고 유수미 연출이 도입부에 차용한 ‘한 지붕 세 가족’ 드라마 오디오는 시대 배경을 설명하는 수단으로, 주인공 소년 이름을 비슷하게 지어 그 시대 감성을 그대로 끌고 간다. 이전과 비해 확실히 한팩의 지원, 일정 등 나아지긴 했으나 당시 시대배경으로 지하 다방을 꾸미기에는 무리였다고 보면 노련한 도입부이다.

 

작가이자 연출이자 제작자 입장에서 본다면 제작 여건을 살피는 이런 시도가 타당하지만, 자리가 작가로 그 재능을 발휘하는 취지인 만큼 실제로 단출한 무대 배경이나 옷차림에서 20년 전 배경을 드러내기 힘든 여건과 상관없이 대본에서 시대 상황을 인물에 대입하여 더 강하게 드러냈어야 했다. 승돌이가 입버릇처럼 추억의 오락실(아케이드) 게임 ‘갤러그Galaga’를 외치지만, 극에 자연스럽게 녹지 않는 몇 가지 단편으로 배경에 녹아들기에는 힘들다. 순박함은 다를지 모르지만 극중 인물들 상황이나 오가는 대화는 지금이라도 해도 무리가 없다. 동시대 관객을 고려한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동시에 약점이고, 패기를 보여줬으면 하는 신진작가 발굴 프로그램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다.

 

4편 중 1편을 골라 내년 3월 정식 공연을 지원하는 올해 프로그램에서 대본, 연출 등 여러모로 달라질 여지가 다른 3편에 비해 많다는 점은 기대치를 높이는 부분이다. 하지만 오세혁의 바쁜 행보를 보면 역으로 균등 차원에서 다른 작가들에게 그 기회가 돌아갈 수도 있다. 4편 각각 연출진이 한팩에서 검증한 고른 기량을 갖췄다고 보면, 작가 역량으로 좋은 배우들이 참여한 게 아닌가 싶다. 프로젝트 이틀 공연 일정임에도 눈에 띄는 배우들이 있다. 아무려나 오세혁은 무대 경험이 많은 능구렁이 같은 이야기꾼이다. (뱀은 온도를 마지막까지 그 힘이 유지되는 작품이 무척 기대된다.*



한국 연극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작가들. 왼쪽에서 세 번째가 늘 유쾌한 오세혁 작가이다.


사진출처 - 한국공연예술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