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방바닥 긁는 남자] 누룽지처럼 타들어가는 세상에 일침

구보씨 2011. 10. 11. 12:47

제목 : 김지훈 3부작 - 방바닥 긁는 남자

기간 : 2011년 10월 11일 ~ 10월 20일

장소 : 대학로 게릴라극장

출연 : 홍민수, 김철영, 조승희, 조영근, 김지현, 노심동

작가 : 김지훈

연출 : 이윤주

제작 : 연희단거리패

기획 : 게릴라극장



김지훈을 보면 얼굴 없는 가수로 오랜 무명 생활을 겪은 김범수가 떠오른다. 물론 데뷔하자마자 각광을 받은 김지훈은 김범수과 걸어온 길이 다르다. 하지만 김범수가 ‘나는 가수다’에서 비주얼 가수로 거듭났듯이 작가, 배우에 이어 이번에 연출로 데뷔하는 만능 연극인 김지훈 역시 바가지 머리에 능글맞게 연기하던 모습에서 말쑥한 모습으로 거듭났다.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두 사람 다 외모가 달려지기보다는 실력을 바탕으로한 아우라가 빛을 발한다고 봐야할 것이다. <방바닥을 긁는 남자>가 연희단거리패 25주년 공연 기획 ‘김지훈 우상파괴 3부작’ 첫 작품으로 올랐다. 김지훈은 이제 이윤택 대표의 카리스마에 흡사 종교집단 뉘앙스를 풍기는 연희단거리패 차세대 주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듯하다. 현재 남산예술센터 상주작가 지원 프로그램 관련 김지훈 작가와 작업 중인 김재엽 연출은 “글 쓰는 모습을 보면 그 분이 오셨다는 걸 알 수 있다”라는 표현을 썼다. 무속인 끼가 다분한 연희단거리패 출신답다. 

 

아직 몇 작품 쓰지 않았으나 이목을 받는 만큼 시기, 질투도 만만치 않을 터, 작품마다 호평만 받을 수는 없다. 안으로 둘러봐도 극성맞기(極盛, 劇性 다 해당하는)로 소문난 연희단거리패 재주꾼들 사이에서 다방면으로 작업을 한다는 건 당최 만만치 않을 게다. 허나 이번 3부작은 그가 확실히 연희단거리패 세대교체의 중심에 있다는 심증을 굳힌다. 4시간 30분짜리 <원전유서>야 워낙 대작이라 모든 배우들이 총출동한 상황이니 그렇다고 쳐도 80분 남짓 짧은 김지훈 3부작에 연희단거리패 대표 배우들이 무대에 오른다는 건 뭔가 김정일 이후 북한 지도부가 김정은을 인정한다는 제스추어가 그렇듯이 마찬가지의 의미가 아닐까.



 

<길바닥에 나 앉다>에는 작년 초연 당시 신인급 연기자들 대신 연희단거리패 2대 햄릿 이승헌, 4대 햄릿 윤정섭 등 대표 배우들이 나서고, 연희단거리패 간판 배우 김소희는 김지훈 작가가 연출까지 맡은 <판 엎고, 퉤!>에 오른다. 그녀가 새내기 연출의 초연작 출연이라니 존재만으로도 판이 확 커지고 휠씬 든든해졌다. 연극판 밖에서 볼 때야 모르겠지만 안에서 이 정도 호응이면-북한 사정이 그렇듯이-거의 조선노동당 부위원장급 대우라고 봐도 무방하다. 요런 의미를 극단은 ‘3부작을 통해 게릴라극장과 연희단거리패가 지향하는 연극작업과 방향성을 가늠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말로 에둘러 소개한다.

 

<방바닥 긁는 남자>만 2009년 당시 ‘새로운 얼굴’이라고 불렸던 당시 배우들이 대부분 다시 등장한다. 욕지기가 절로 나오는 게으름과 지저분함의 끝을 보여주는 기상천외한 누룽지형 인간 연기를 다른 배우들이 누가할까 싶기도 하다. 공연을 보면 알겠으나 저녁 시간에 짜장면 냄새를 맡고 욕지기를 느끼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지독함의 끝을 보여주는 연기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말한 프랑수아즈 사강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연기자로 그들을 봤을 때 가능한 얘기인데, 그들은 역할 속에서 쾌감을, 관객의 반응에서 배우로서 존재감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사강이 코카인 복용 혐의로 재판을 받을 때 했던 의미와 사적 영역이라는 면에서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비슷한 의미망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2009년 초연 이후 ‘누룽지인간’이 점차 늘어가는 현실로 작품을 대입하면 이 연극은 지독한 잔혹극이다. 끝간데가 어디인지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관객의 상식을 허문다. 마지막 집이 허물어지듯이 X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왠지 그렇지 않은 척, 주변부 인생을 살면서도 짝퉁 브랜드를 고수하려는 관습적 행태를 부순다. 누룽지 인간들이 할 수 있고 하는 일이란 서로 헐뜯는 난투의 반복인데, 입던 팬티를 권력구조에 따라 갈아입는 대목은 세상 권력이라는 게 ‘거지발싸개’ 혹은 ‘구멍 난 팬티’와 같다는 푸념을 그대로 형상화한 대목이다. 즉 연극이 보여주는 풍경은 풍자보다는 직설에 가깝다. 

 

소박한 부엌데기 조왕신마저 견디지 못하게 만드는 세상이라니! 예수, 부처보다 더 오래된 신도 질겁을 하고 떠나는 상황은 정말 아더메치(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하다)하다. 그러나 권력 구조의 중심인 낡은 단칸방 쪽방은 무너진다. ‘재개발이 예정되어 주민들이 모두 빠져나간 어느 동네’ 배경 설정은 곧 누룽지인간보다 약삭빠르게 이권을 찾아 떠난 팔랑개비 인간들을 조롱하는 듯하지만, 그들이라고 다를까,  ‘거대한 단칸방’인 사회 안에서 묵은 팬티 뺏기 싸움이나 벌이는 식이다. 비유로 보면 외부 권력-그 역시 가난한 중국집 아들이지만-에 의해 단칸방이 무너지는 상황은 누룽지 사내들만의 비극은 아니다. 




무너진 집을 떠나 조심스럽게 해가 뜨는 골목으로 나선 그의 다음 행보는 어디일까? 사람이 살지 않는 재개발 지역에서 나와 사회로 나온 그들이 갈 곳은 어디일까?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그들의 삶은 은유에서 직유로 바뀔 수 있다. '누룽지 같은' 인간은 길바닥에서 ‘누룽지처럼’ 사는 노숙자 혹은 달리는 차에 몸을 던져 스스로 '누룽지'가 된 처참한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도 그들이 나서는 길에서 비치는 햇빛처럼 희망을 본다면 등짝에 등갑처럼 달라붙은 바닥을 벗어나는 길뿐이다. 그런데 하늘을 보니 1000일이 넘도록 크레인에 매달린 채 시위를 해대는 요지경 현실이다. 


약삭빠르기로는 누구 못지않은 그들은 시대의 광대, 혹은 희생양으로 세상 온갖 죄를 뒤집어쓴 속죄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가 연희단거리패 합숙생활 기간에 채록한 잡담과 논쟁을 실마리 삼은 작품은 고양이의 아홉번 삶보다 많은 인생을 경험한 연극배우들의 입에서 나온 만큼 농도가 짙다. 그리고 하는 행동이나 오가는 대화가 각각 개인사와 그리 다르지 않다. 극중 보이는 과장된 폭력은 '해병대 총기 사건'이후 드러난 군대에서 벌어지는 일들보다 더하지는 않다.  



 

2009년 이후 3년 지났으나 세상은 참 빠르게 바뀌었다. 그 사이 사회를 두고 평가는 제각각이지만 99%의 분노가 예사롭지 않은 요즘이다. 사실 김지훈 작가가 천착하는 주제가 그렇듯이 인간이란 늘 그 모양 그 꼴로 살았지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늘 이렇게 저렇게 알록달록 감추고 꾸며서 모른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해를 더해갈수록 진해지는 작품이라니 구조가 명확하지 않고 때로 생뚱맞은 덜 다듬어진 짧은 단막극을 두고 마냥 칭찬을 늘어놓을 생각은 없지만, 김지훈 작가의 차기작이 궁금한 심정은 역시 남들과 마찬가지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게릴라극장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