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육혈포 강도] 무엇이 문제인가?

구보씨 2011. 9. 8. 18:47

제목 : 2011년 <한국연극 100년 재발견 2> : 임성구와 혁신단 “육혈포 강도”

기간 : 2011/09/08 ~ 2011/09/18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출연 : 유준원, 백운철, 박기덕, 반상윤, 서정식, 오광욱, 한상완, 김원정

번안 : 임성구

연출 : 1911 김석만 / 2011 김재엽

주최/주관 : 한국연극연출가협회

 

 

한국연극연출가협회에서 2010년 동농 이해조선생의 <자유종> 발간 100년을 맞이하여 처음 시도된 <한국연극 100년 재발견> 프로그램은 한국연극의 100년을 돌아보고 100년 전에 있었던 연극적 사건을 재조명해서 그 선배 연극인들의 자취와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우리의 연극 유산을 돌아보기 위한 의도로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올해 한국 최초 극단 ‘혁신단’ 창단 100주년을 기념해 대표작 <육혈포강도六穴砲强盜>를 ‘한국연극 100년 재발견’ 두 번째 작품으로 올렸다. 임성구는 대한제국이 멸망한 후 일본 신파극의 영향을 받아 신파극단 ‘혁신단’을 창단하여 민간 연극운동의 기치를 내걸었던 인물로 한국 연극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학술적 가치로 박물관에 있을 만하나, 한국연극연출가협회에서 연극으로 다시 부활시켰다. 문제는 일반 대중에게 어떤 형식으로 다가갈 것인가, 하는 지점인데 작품을 원형대로 부활하는 대신 크게 두 갈래로 나눠 김석만 연출이 임성구를 주인공으로 혁신단 창단 과정을 소개하는 1911년 편과 원작을 새롭게 각색한 김재엽 연출의 2011년 편이 한 묶음으로 무대에 올라왔다. ‘연극의 재미와 사업의 의미를 더욱 살릴 예정’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심산이나 두 가지 의도가 제대로 살았는지는 의문이다. 



'육혈포 강도단' 번안자 임성구(왼쪽)와 그의 작품 '월혼'의 한 장면
 

김석만, 김재엽 연출이 각각 중견과 신예로 매년 활발하게 작품을 올리는 인정받은 연출이라고 하나, 아미도 지원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완성도를 높이기란 역시 쉽지 않다. 두 연출가를 포스터에 내세운 데에 비하면 좀 무색하다. 과거와 가상의 미래를 상정한 두 작품을 한 무대 구현이 가능할까 궁금했는데, 영상막을 배경으로 삼고 간단한 소품 몇 가지로 꾸민 단출한 방식은 고민의 여지가 없애버린다. 


김석만 연출의 경우, 최근작 <갈매기>(명동예술극장, 2011/04/12 ~ 05/08)나 한예종 레퍼토리 공연 <산적>(한예종 예술극장, 2011/06/09 ~ 06/11)을 보면 무대와 라이브 연주 등에 많은 공을 들인 바 있다.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긴 했으나 1911 편은 머릿속에 그다지 남는 장면이 없다. 일본식 신파극을 들여올 당시 연극인으로 스승 격인 고마츠와 임성구 사이 관계를 중심에 두었으나 그 둘 사이 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임성구의 고뇌나 연극인으로 시대 고민 역시 잘 보이지 않는다. 



 혁신단 활동 기사

 

2011 편은 1911 편과 구분을 짓기 위해 블랙코미디를 차용하고 있지만 배경이 고마츠가 지배하는 제국인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앞선 작품과 연계성이 큰 줄기는 아니나, 같은 배우가 같은 배역(이름)으로 두 편을 동시에 출연하는 바 고마츠를 독재자로 설정한 이유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설핏 그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일본 강점기 잔재나 자본독식 사회, 강압적인 정권, 자살률 1위 등 현 정부를 비꼰 부분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임성구와 “고마츠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자칫 고마츠가 임성구의 혁신단 발전을 가로막은 인물로 그려질 수 있다. 


실제로 그러한지 둘째로 치고 전체적인 구도가 어긋나는 식이다. 임성구가 이끄는 극단 'Direct Action'은 문제를 직접 해결하자는 아나키스트들의 구호로 미워하는 인물을 직접 해결하는 극중 상황과 맞아떨어지지만, 이 역시 실제 인물 임성구가 연극 미학을 최초로 들여온 점은 맞지만 “연극을 통해 진실로 조선 민중의 의식을 개혁하려 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김남석 연극 평론가)는 평가와 연계하면 그 접점이 그리 와 닿지는 않는다.

  

김재엽 연출은 극단 드림팩토리의 레퍼토리 공연 <장석조네 사람들>에서 영상을 사용한 바 있지만, 코너 소개 정도였고, <육혈포 강도>에서도 그리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9월에만 이 작품 외에도 <장석조네 사람들>(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011/09/14 ~ 09/17) <마호로바>(연우소극장, 2011/09/01 ~ 09/25)를 동시에 올린다. 남산예술센터 제작 공연으로 가을 공연 예정까지 더 하면 가장 다작을 올리는 연출이다. 문제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시의성 짙은 작품인 경우 직설로 풀어내는 부분이 부담스럽고 잘 와 닿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 사람이 있다>(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2011/04.28 ~ 05/01)는 2011 서울연극제 희곡상을 받은 작품이라는데, 사실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는다. 



임성구의 혁신단은 흥행수입으로 각종 자선행사를 벌였다. 사진은 1911년의 걸인잔치 기념사진

<육혈포 강도>와 하루를 두고 본 <마호로바>를 보면, “정말 같은 연출작인가?” 싶을 정도로 짜임새가 단단하다. 무엇보다 배우 캐릭터를 잡고 다듬는 부분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두루 호평을 받은 <장석조네 사람들> 경우도 캐릭터가 소설에서 튀어나온 듯이 잘 살아 있다. 좋은 원작을 가공하는 작품에 만족이 높은 데에 비해 직접 쓰고 연출하는 경우(주로 시의성 높은 작품인 경우) 그 시도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연극만이 할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고유의 실효성이라는 점에서 다소 의문이 든다.

 

<육혈포 강도>는 재발견이라기 의미보다 타이틀을 위한 작품 수준에서 멈춘다. 연출 개인의 전작만 못한 범작이라는 평가에 앞서 이 작품이 한국연극연출가협회에서 주관하고 주최한 작품이고 보면 실망이 크다. 열악한 처지를 짐작하지 못하는 건 아니나, 연출, 배우, 작가 등 치열하게 봤던 그들의 전작에 비해 낮은 완성도에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무성의하고 쉬이 처리한 영상 사용은 한국연극 재발견이라는 취지에도, 백년 전 당시 도전 정신으로 연극을 마주했던 혁신단 정신과도 맞지 않는다. *

사진출처 - 한국연극연출가협회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