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도살장의 시간 / 벚꽃동산_오픈리뷰 칼럼] 예술의 전당, 안과 밖으로 이어진 극장의 철학

구보씨 2011. 9. 1. 15:06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


그 단순한 원칙

“미국 링컨 센터를 세 번 갔는데, 세 번 다 입장을 못했어요. 난 미국 영어에 약해서 도무지 예매란 걸 못했단 말이죠. 현장에 가니 예매만 받는다고 들여보내 주지 않았지요. 그렇게 세 번을 실패하고는 밖에 서 있자니, 보이는 건 달랑 분수밖에 없어요. 그때 생각했어요, 저 분수가 공연장 안의 노랫소리에 맞춰 움직여 주면 좋겠다고.”


물줄기가 정말 공연 실황에 맞춰 움직이는지 질문을 던지자 나이 지긋한 김석철 명지대 건축학과 석좌교수(68세)의 입에서 소탈한 경험담이 나온다. 가로 43미터, 세로 9미터 수조에 노즐 800여 개와 수중등 500여 개로 음악에 따라 물줄기가 멋지게 춤추는 예술의전당 명소 `세계음악분수‘의 배경에는 이런 속내가 담겨 있다. 낯선 타국 극장 밖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가난한 젊은이의 상상력은 극장을 무대와 객석에 한정짓지 않고 공연장의 안과 밖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 확장한 예술의전당 설계를 맡으면서 현실이 되었다. 명동연극교실 ‘김석철 - 극장을 짓는 사나이’ 강연회 때 마지막 질문으로 다소 엉뚱한 듯한 하지만 그의 대답에는 왜 그가 세계적인 건축가 반열에 올랐는지 알게 해줬다.


 

한 시간 반 남짓 김 교수가 조근조근하게 푸는 이야기에는 보여주기 위한 공간인 공연장을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 아닌 안과 밖으로 소통하면서 공간 전체가 자연스럽게 기운으로 넘치도록 관객의 눈높이를 맞춘다는 극장의 기본 철학을 잘 보여준다.  세계적인 공연장에 버금가는 시설을 지어야 하는 책임감에 자칫 치적으로 삼기에 치중할 수도 있겠으나 그 공간을 채우는 건 예술가이건 관객이건 사람이고 그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어쩌면 가장 단순한 원칙을 보여준다. 미술과 다르게 예술가와 동시 호흡이 중요한 공연장 환경이라면, 체감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도심보다는 예술 특유의 시간관념으로 느리게, 혹은 물리적 개념과 상관없이 슬프게 밝게 가볍게 흘러가는 시공간으로 전체를 아우리는 환경이 중요하다.

 

예술의전당은 80년대 나라 전체를 슬픔으로 몰아넣은 독재자의 명령에 따라 지어진 씁쓸한 과거를 안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예술의전당은 세계적인 공연장으로 평가를 받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리고 요사이 IT관련 기사를 차용하자면,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로 예당 공연은 국내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는 평가에 이견이 없는 듯하다. 시민을 위해 마련한 세계음악분수가 높은 수준의 공연과 연동하지 못한다면 한낱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예술의전당에 한 발 들어선 순간 살짝 기분이 올라가면서 긴장감이 도는 이유는 내가 선택한 공연이나 전시에 대한 기대감과 동시에 예술의전당 자체가 주는 아우라에 있다.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한 번쯤은 꼭 들러서 혼신을 다해 땀방울을 흘린 자리에서 같이 호흡을 한다고 생각하면 말이다. 


 


상상력을 품은 극장

공연을 보다 보면 극장이 상상력을 제한하고 한계를 짓고 있구나, 하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아 제대로 된 극장이 얼마나 소중한지 자연스레 체감하게 된다. 김석철 교수의 강연을 부러 찾아간 이유도 그러했는데, “하나의 공간구조 속에서 양자역학적 감흥을 줄 수 있는 최상의 비례”로 예술의전당 공연장을 소개하는 그의 말이 유독 귀에 들어왔다. 자유소극장과 토월극장에서 그의 말에 동의할 만한 작품을 만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벌써 3년 전인 2009년 10월, 자유소극장에서 본 한태숙 연출 <도살장의 시간>은 ‘현실과 비현실,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사라진 공간’이라는 상상력을 무대 자체로 구현한 작품으로 그 충격이 여전하다. 


자유소극장 무대 바닥을 열어 지하공간을 무대로 짠 뒤 그 위에 관객 눈높이 구조물을 쌓고 그 위에 한 단을 더 쌓아 종으로 총 3층을 세운 무대였다.  지금 국립극단 상임연출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녀가 2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선보인 첫 복귀작으로 자유소극장 깊고 높은 무대 시설을 갖추지 못하면 어디에서도 재공연을 올리지 못할 작품이다. 뛰어난 무대연출가이기도 한 한태숙 연출의 2년여 쟁여둔 상상력이 극에 달해 토해낸 무대에 반해 이후로 그녀의 작품을 빼놓지 않고 찾게 된 계기가 되었다.



'도살장의 시간'(2009.10) 무대. 무대미술가 이소영 님 블러그http://blog.naver.com/celinalee82

  

<도살장의 시간>의 무대 미학이 마치 거인을 세워두고 반으로 갈라 신체의 단면도를 보여주듯이 그로테스크하게 그린다면 2010년 5월 토월극장에서 올라간 그리고리 지차트콥스키 연출 <안톤 체홉의 벚꽃동산>는 횡으로 아득한 깊이를 확보한다. 30m에 달하는 깊숙한 무대에 대각선으로 나무 벽을 세워 원근감을 준 무대는 깊고 어두운 벚꽃나무 숲속의 수백년 세월을 한정된 무대 위에 잘 구현했다. 긴 판자를 덧대어 세운 벽 사이로 치는 무대 안쪽 화려하고 밝은 샹들리에 불빛에 언뜻언뜻 어른거리며 보이는 무도회 장면은 쇠락한 저택과 정점의 대비를 이뤄 세기 말 변화를, 말 그대로 당시 인상화 화가의 그림처럼 표현한다. 분명 종이 아닌 횡으로 누인 무대지만 역사의 흐름에 현기증을 일으키는 작품으로, 이 작품 역시 토월극장의 깊이 아니면 상상하기 힘든 무대이다. 


 그리고리 지차트콥스키 연출 '안톤 체홉의 벚꽃동산'(2010.05). 한·러수교 20주년 기념 문화축제, 토월정통연극ⅩⅡ


극장다운 극장

<도살장의 시간>은 층으로 나눈 상징이 거친 데다 작품 전체적으로 절제가 부족한 편이고, <벚꽃동산>은 등장인물 사이 호흡이 장점인 체홉 작품에서 러시아 연출과 한국 출연진 사이 호흡 부족인지, 연기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공연예술이란 현실이 아닌 비현실이 상상력을 덧입고 현실에서 최대한 구현되었을 때 감흥이 최고조에 달한다고 하면, 개인적으로 낯설고도 기이한 세계로 이끈 두 작품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그리고 자유소극장과 토월극장이 각각 소극장과 중극장 규모지만 대형 뮤지컬도 보지 못한 무대 미학을 보여준다고 한다면 역시 보이지 않는 공간을 보이는 공간 못지 않게 신경을 쓴 극장 철학에서 그 바탕을 찾을 수 있다. ‘잘 만들어진 연극 한편의 감동이 여행의 감동보다 짙기에, 그러기 위해 극장은 극장다워야 한다’는 김석철 교수의 말은 상상력의 실체로 극장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같은 극장에서그릇의 크기를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작품을 보면 아쉬움이 남지만, 역시 예술의전당을 찾는 이유로 늘 극장의 숨은 이면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정도면 충분하다. 



서울경제신문 '뮤지컬 전용극장 4파전 시대 열린다' 2011-07-27 


내년 말이면 토월극장이 대기업 후원으로 2층 600석에서 3개층 1000석 규모로 덩치가 커진다. 서울 외곽으로 뮤지컬 전용 극장을 내세운 구로 디큐브아트센터와 강동아트센터가 개관했고, 한남동과 대학로를 비롯해 줄이어 들어서는 추세라, 토월극장 리모델링 소식이 반갑지만은 않다. 애초 역사적 의미를 담은 토월(土月)이 빠지는 이름 변경을 두고 연극계 반발이 이어졌다가 기업 로고를 앞에 붙이는 정도로 수긍했다는데, 1000석을 뮤지컬 외에 채우기 어렵고, 티켓 가격 역시 오를 것이라는 우려가 있어 그러고 말일인지는 모르겠다. 몇 년 사이 연극계에서 중극장 붐이 활발하지만 토월극장이 가진 그 깊이를 구현할 만한 수준의 즉 극장 철학을 갖춘 극장이 몇이나 되나 싶어 아쉬움이 좀 남는다.*


오픈리뷰 2011년 9월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