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달나라 연속극_연극인 객석다이어리 선정작] 우리에게 연속극 재방송이 필요한 이유

구보씨 2013. 2. 21. 12:20


시민의 지난한 삶을 다룬 신파극이 종종 눈에 들어오지만 잘 안 보는 편이다. 특히 젊은 연극인들이 만든 작품은 더욱 그렇다. 대단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신파라는 것이 조급해하지 않아도 절로 배어나올 때가 있으리라 여기는 탓이다. 라디오 청취자 소감도 아니고, 따뜻하게 다룬답시고 어설피 껴안았다가 이도저도 아닌 꼴이 볼썽사나워 보이는 것도 있었다. 살다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이에 따라 대들고 싸워야 할 때가 있고, 화해하고 보듬어야 할 때가 오는 법이다. 


테네시 윌리엄스 <유리 동물원>을 원작 삼아 김은성 작가가 재창작하고 부새롬이 연출한 <달나라 연속극>은 어떨까. 작품 소개에서 밝히듯, 하루하루 냉혹한 현실에 부딪치는 지난한 삶에 지친 가족에게 위로란 “만자는 은하와 은창의 미래에서, 은하는 끝없는 원주율이야기에서 그리고 은창은 그가 쓰는 시나리오 안에서”라는 식의 이루어지기 힘든 환상이라는 전제를 둔 작품이다. 감정을 넘칠 듯 말 듯 잘 조율하면서 처비 체커Chubby Checker의 경쾌한 <렛츠 트위스트 어게인>Let′s Twist Again 에 맞춰 춤을 추면서 마무리한다. 


<달나라 연속극>을 보면 초창기 박근형 작품들이 떠오른다. 연극이 세미나가 아닌 이상, 또 나처럼 어쭙잖게 알지도 못하면서 연극을 머리로 먼저 보려는 관객들에게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서라도 가슴을 후벼 파는 작품이 필요하다. 연극이 끝나고 다리를 저는 은하가 멀쩡한 다리로 일영과 나란히 객석 인사를 하니 커튼콜이라고 해도 먹먹했던 마음이 좀 놓인다. 하지만 그래서 연극과 다르게 비슷한 처지인 그들이 겪는 현실이 무한반복이 되나 싶어 더 시리게 다가온다. 


<달나라 연속극>은 작품의 경계를 외부로 확장하지 않으면서 배경을 옥탑방으로 한정하고 한 가족 구성원 안으로 절제를 하면서 섬세하게 접근한 집중도가 완성도로 이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 케이블에서 반복해 틀어주는 연속극처럼 바뀌지 않는 냉정한 현실이 이 작품 의 생명력일까 싶은 노파심에 익숙한 <렛츠 트위스트 어게인>이 구슬픈 엘레지처럼 귓가를 맴돈다. 


작가 김은성은 ‘모든 슬픔은 이야기할 때 견딜만해진다. 그러니 춤추고 노래하자’고 한다. 2011년 초연 당시와 비슷한 시기, 김은성 작가가 쓴 연극 <연변엄마>를 보면 두 작품은 아버지의 부재, 비정규직 엄마, 장애인 딸(아들-연변엄마), 일용직 아들(매춘부 딸-연변엄마)이라는 엇비슷한 배경을 두고 있다. 그러나 <달나라 연속극>과 전개나 결말이 다르다. <연변엄마>는 한국에서 모으려고 했던 아들의 수술비가 “0”이 되는 순간을 끝으로 한국에서 쫓겨난다. 무한경쟁주의 시대의 삭막함과 퍽퍽함이 한국인이든 연변동포든 가릴 리가 없으니. <달나라 연속극>은 어느 순간 한 걸음 더 내딛길 자제한 편이다. 그렇게 가르치지 않고 가리키면서, 달은 차갑고 메마른 위성에서 토끼가 떡방아를 찧기도 하는 따뜻한 위안이 된다. 


2011년 6월 한국예술종합학교 발표작으로 같은 해 8월 극단 달나라동백꽃 창단의 원동력이 된 <달나라 연속극>은 이후 작년과 올해 연 이어 무대에 올라가면서 극단 레퍼토리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극단 대표로 김은성이 쓴 작품과 작가로만 참여한 작품이 다른 이유는 곧 극단 달나라동백꽃이 가리키는 곳이 어디인지 알 만하고, 또 동의한다. 그러려면 앞으로 더 깊은 내공이 필요하기도 할 것이다. 김은성 작가와 부새롬 연출의 만남이 고연옥 작가, 김광보 연출 조합처럼 개성이 뚜렷하면서도 좋은 호흡으로 균형을 맞춰가며 한국연극계를 이끌어주길 바란다.*


사진제공 [극단 달나라동백꽃]


서울연극센터 웹진 연극인 18호 2013-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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