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유년의 뜰_혜화동1번지 봄 페스티벌] 물 밑으로 난 길 어귀, 대추나무 한 그루

구보씨 2011. 6. 3. 12:10

제목 : 유년의 뜰-혜화동1번지 봄 페스티벌

기간 : 2011년 6월 3월 ~ 6월 12일

장소 :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구성/연출 : 이양구

출연 : 김철홍, 유영욱, 조시현, 최설화, 유명상, 이나리, 박례영

주최 : 혜화동1번지 5기 동인

제작 : 극단 해인


 

중요한 건, 누군가가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행복한 추억이건 서글픈 기억이건 표현하지 않거나 혹은 그 이야기를 서로 나누기 전까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연극 <유년의 뜰>을 보기 전까지 이양구 연출을 알지 못했다. 혜화동 로터리 혜화동1번지 극장 입구 주변에서 서성이디가 극장 입구에서 표를 받았던 그이가 이양구였다. 


혜화동1번지 5기 동인 봄 페스티벌 - “나는 나르시시스트다” 프로그램 팸플릿과 별도로 A4용지에 복사해서 나눠준 프린트에는 혜화동1번지 작은 극장 안으로 대추나무 한 그루. 어쩔 수 없이 잘라 들여와야 했을 때 안타까움이 글에 실렸다. 죽은 나무를 가져왔으나 말이다. 이양구 연출의 글이 덤덤하면서도 꽤 유려했다. 잡부처럼 살아왔다면 더 믿음이 갈만한 깡마른 그이는 옹이진 나무라도 속살처럼 글이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했다. 이양구 여출 어린 시절 가족이 떠날 때 같이 떠나지 못한 대추나무는 그렇게 속절없이 충주댐이 들어서면서 죽어 버렸다. 그때 나무가 물에 잠겨 죽기 전에 베어낸 아버지의 심정으로, 나무에 기대 욕을 하며 반항을 했던 소년 이양구는 극장 안에 나무를 들였을 것이다. 


섬세함이 느껴지는 연출도 그렇고 프로필을 보니 신춘문예 희곡 당선 이력이 보인다. 소설가 오정희 동명 소설에서 제목에서 따온 연극은, 겹치는 부분이 없이 장르도 다르지만  정서만은 그 결따라 잘 살았다. 어린 시절을 복원한 대화는 자연스럽게 80년 대 촌스럽지만 정겨운 가족 사이 정이 잘 묻어나고, 철없는 형제들 다툼을 보면 그 상황이 왠지 내 어린 시절과 다르지 않아 괜히 애잔하다. 




어쩌면 작가는 어린 시절, 집안이 동네에서 유독 빈곤하여 동네를 마지막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처지였을지도 모르겠다. 추억어린 동네의 과거를 연극으로 재현하되, 현재 동네 모습은 영상에 담아냈다.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는 장치로 사진(카메라)과 연극이 아닌 반대로 전복 사용하면서 과거를 살아 숨쉬게 하나, 물가에 하릴없이 나 앉은 실제 현재의 작가/연출 이양구의 모습은 이 모든 게 결국 아련한 과거일 뿐이라는 걸 그린다. 나르시시스트 기획으로 그가 물가에서 바라보는 건 자신의 얼굴이 아니라 그 안에 깊이 잠든 마을이고, 곧 그의 내면이기도 하다. 


자신의 주관적 과거를 그렸으되, 마을을 벗어난 뒤 겪었을 지난한 후일담은 작품에서 드러나지 않았다. 관이나 주민들 사이 갈등, 환경 파괴 논쟁 등 사회적 문제로 풀어낼 부분을 절제하면서 그의 이야기는 원망으로 번질 수도 있을 부분을 그리움으로 대신한다. 즉 어린 시절 철 몰랐으나 행복했던 아이 이양구 시점에서 연극을 이끌고 그 안에서 끝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속내도 소소한 이야기 뒤에 묵묵한 태도로만 정서를 전달할 뿐이다. 


영상 속 이양구와 연극 속 어린 시절 개구장이 이양구는 객석에 앉아 카메라를 잡아 영상을 투사하면서 객석 진행을 이끌고 또 연극 안으로도 배우로 개입해 어린 시절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또 한 명의 이양구를 통해 현실과 과거, 실제와 허상이 하나로 고리를 맺으면서 서로 돌고 돈다. 그 시간 이 모든 이야기 고리를 만든 이양구가 있다. 




연극이 끝난 뒤 극장을 나서자 그는 옆 커피숍 테라스에 담배를 물고 무심히 앉아 있었다. 관객 표정을 보고 있었으리라. 그 시절은 우리가 되새긴들 다시 돌아가지 못하겠으나  쉽게 포기해서 될 일만도 아니지 싶다. 나르시시스트로 그의 이야기는 곧 그 시절을 겪어온 내 이야기다. 여전히 동네로 가는 길이 물 밑으로 나 있다는 이양구의 대사가 의미하는 바를 곰곰히 생각하게 된다.


“철학적 문제는 해결이 아니라 해소”라고 한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단다. 해결이 없다면 해소, 새로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 삭일 수 있는지가 관건이고, 그 척도를 사회의 욕망이 아닌 나로부터 찾아내려는 노력을 부단하게 하는 게 나르시시스트의 첫 번째 조건이라면 연극 무대만큼 황홀한 데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허공을 젖는 손짓이 아니라 누군가 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는지에 달렸다. 이왕이면 환호까지는 아니어도 격려의 박수, 공감의 눈빛이 이이지면 좋을텐데 이양구 연출은 수몰 지역에서 건진 물이끼낀 녹슨 것들로 관객과 소통을 잘 이뤄냈다. 


작은 건물 지하 혜화동1번지 극장은 사실 관람하기에도 공연을 올리기에도 좋은 시설은 아니다. 수몰지 이야기에 따라 동네와 주변부 등 다양한 이야기 거리를 있었을 것이나 부모님과 삼형제 이야기로 끌어 앉은 데에는 장단점이 분명하다. 아무려나 그 공간에 모인 혜화동 1번지 동인은 두려워하거나 숨기거나 감추거나 위악을 드러내지 않는 내는 예술가 모임으로 알고 있다. 이제 흔치 않게 남은 좋은 기획 프로그램 혜화동 1번지 동인 페스티벌을 응원한다. 앞으로도 내 안에서 기억 어딘가로 쓸려간 나만의 공간을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사진출처 - 혜화동 1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