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 / 해바라기의 관_오픈리뷰 칼럼] 무대와 객석, 그 황홀한 ‘사이’
3월 13일 일요일 오후, 재일교포 김수진이 이끄는 극단 신주쿠양산박 <해바라기의 관>을 보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 갔다. 극장 계단에서 멍하니 서 있는 미우라 신코 씨를 봤다. 그녀는 일주일 전에 본 연극 <도라지>에 출연한 배우다. 짧은 순간 시선이 마주쳤는데, 낯선 한국인의 시선에 약간 긴장한 듯 보였다. 이국에 있기 때문일까. 공연 시간을 앞두고 그녀는 총총 걸음으로 어딘가로 향했다. 규모 9.0 일본 동북부 대지진이 일어나고 이틀 뒤였다. 서울에서 작품 두 편을 선보이기로 한 신주쿠양산박은 그럼에도 예정대로 19일과 20일 전주 공연을 마치고 떠났다.
4월 12일, 후쿠시마 원전의 사고 등급이 레벨 7로 올라갔다는 속보가 떴다. 원전 사고의 최악이라는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같은 수준의 경계이다. 한 달 전 계단에서 봤던 미우라 신코의 무심한 표정이 떠오른다. <해바라기의 관>에서 그녀가 맡은 배역이 없다. 단원들이 온통 연극에만 집중하는 사이, 현실로 되돌아온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람들이 한가로이 휴일 오후를 즐기는 광화문 광장을 보면서 조국의 비극을 떠올렸을까. 연극을 올리고 즐기는 사이, 누군가가 숨을 거두고 어딘가는 무너져 내리고 있을 그곳.
무대는 현실을 반영하지만 동시에 반역의 공간이다. 무대에서 연기하는 그는 내가 맞으나 현실의 내가 아니다. 단역이라도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 아니 상관이 없다면 오로지 그 이유가 아닌가. 반대로 무대 위의 내가 실재하는 나이고 무대 밖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도라지>에서 시골 아낙 단역을 맡은 그녀는 살이 좀 찐 30대 한국인 아줌마라도 좋을 만큼 존재감이 없다.
무대는 종종 이런 우연을 낳는다. 서울 근처 위성도시 허름한 빌라에 사는 내가 신주쿠 극단 연습실 어딘가를 서성이고 있을 그녀와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난 관객과 배우,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넘어서고 싶은 생각이 없다. 거리를 허물고 만난 사적인 관계는 공연을 보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고, 작품을 볼 때마다 부담스러웠다.
내가 관객으로 거리만 유지한다면 현실과 가상이 섞인 공간성을 확보한 무대가 좀처럼 휘발하지 않는다. 한가로운 관람객으로 붐비는 극장 로비에서 미우라 신코 씨는 참 외롭다. 말도 통하지 않고 어딘지도 모를 이곳에서 그녀의 근심을 공유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그녀를 흘깃 보면서 난 <도라지>에서 김옥균과 홍종우가 ‘매국노’와 ‘자객’으로 일본 외딴 유배지 소두도와 상하이 거리를 떠도는 그들의 외로움을 떠올린다.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자이니치 가족의 비극을 다룬 <해바라기의 관>과도 맞물린다.
그러나 그녀가 선 자리 그녀의 그림자를 무대로 인식하고 난 뒤, 1인극이 펼쳐지는 순간은 특정한 틀에 잡히지 않는 이야기를 담는다. 일본에 가본 적도 없고 연고도 없는 내게 일본발 지진 속보는 수많은 포털 기사 한 줄에 머물지 않고 미우라 신코의 선해 보이는 작은 눈동자를 확대경 삼아 확장한다. 의도하지 않은 경험은 늘 되묻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난 왜 극장을 찾는가. 난 왜 넘어서지 못할 무대를 욕망하면서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가. 그들은 왜 연극을 하는지, 왜 극장을 떠나지 않는지를 먼저 물어봐야 했으나, 누구의 인터뷰와 사적인 질문에도 원하는 답을 듣지 못했다.
“존재가 없다면 다만 고통만 사라질 뿐인가? 그들의 부모는? 아내는? 아이들은? 그렇다면 (아우슈비츠) 캠프에서도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웃을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건 우리가 쓰레기이기 때문이지.” “아니, 그건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야.” 쓰레기 같은 인간들의 운명처럼 만들어지는 그 순간, 덧없이 사라지고 마는 선율들. 그 선율들을 위해 그는 땀이 푹 젖을 정도로 열성적으로 흘러간 집시 노래를 연주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 집시들의 연주를 들으면서 가스실로 들어갔다. - 김연수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266~277쪽
가스실로 들어가는 긴 행렬은 언젠가 끝이 난다. 연주를 들을 누구도 남지 않았을 때 마지막으로 가스실에 들어갈 운명을 타고난 악사들. 홀가분하게 악기를 내려놓고 땀을 닦지만 정작 평생 음악을 사랑했던 그들을 위해서는 누구도 연주를 하지 않는다. 문이 닫힌 어두컴컴한 가스실에서도 내 연주가 앞서간 그들에게 위안이 되었을까, 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고민하면서 살아야 하는 영원한 타인들.
무대와 객석 사이, 넘어서지 못할 경계에 갈렸으나 손을 뻗으면 그 옷자락이 닿을 내 앞거리에서 배우들이 몰래 내쉬는 한숨과 뒤쪽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무대를 조율하는 스텝들의 기척을 안에 담는 일이란, 아무도 내게 강요하지 않았고 결국 오독으로 가득하다고 해도 기록자로 괜한 책임을 느낀다. 멀리 아시아 어디쯤 낯선 작가가 그들이 알지 못하는 언어로 소설 한 구절 허구로 인용을 하였더라도 말이다.
기록자로 오래 남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옆자리에 배우들이 앉는다. 같이 웃고 울다가 때로는 심각하게 연극을 본다. 대학로 거리에서 종종 아주 짧은 1인극을 보곤 한다. 그들은 짐짓 무심한 척 내 옆을 지나가거나 내 앞에 앉아 책을 읽거나 내 뒤에 앉아 밥을 먹는다. 그들과 나 사이, 그래 그 빈 공간을 ‘거리’나 ‘경계’보다 ‘사이’라고 부르겠다. 그들과 나 ‘사이’ 이를 두고 공간 개념으로도 시간 개념으로도 잘 풀지 못하겠지만 미묘하고 떨리는 그 사이를 늘 찾아 헤맨다. 즐거운 방황이다.*
오픈리뷰 2011년 3월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