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프TAPE_한예종] 연기력이 돋보이는 심리극
제목 : 2011 예술사 스튜디오 공연Ⅱ : 테이프TAPE
장소 :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실험무대
기간 : 2011. 5. 12(목) ~ 2011. 5. 14(토)
원작 : Stephen belber
연출 : 이종민
출연 : 이도훈, 손성민, 장아름
제작 :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한예종 연극원 공연은 예술사 공연, 전문사 공연, 레퍼토리 공연을 망라하고 기성 극단에서 좀처럼 보지 못할 신선함을 주곤 한다. 비유하자면 19일자 신문에 실린 “수비축구가 유행하는 K리그와 달리 챌린저스리그는 경질 부담이 없으니 마음껏 공격축구를 펼칠 수 있다”는 포천시민축구단 이수식 감독의 인터뷰 기사가 떠오른다. 포천은 3부 리그인 챌린저스리그(K3) 팀 최초로 FA컵 32강에 올라 K리그 수원 삼성과 맞붙었고, 고배를 마셨으나 선전을 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좋은 경기력이 나오기 힘든 건 당연하고, 선수들 여건 개선이 선과제가 되어야 하는 게 맞다만 실력은 겨뤄봐야 아는 법이다. 학생들이 발표하는 연극도 여건이나 상황이 비슷할 텐데, 그중 한예종 연극원 공연을 관객들이 미리 예매를 하거나 줄을 서서 찾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게다. 무료 공연이긴 하나, 일정 수준 이상의 질을 담보하니 늘 기대를 품게 한다는 게 맞다. 한예종 연극원 공연을 기성 극단작과 다른 기준을 두고 보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좀 더 주목하는 부분은 무대, 음악, 영상 등 무대 자체를 이루는 외적인 요소들이다. 학생들 작품이니 작가, 연출, 배우들과 어느 정도 동등한 입장에서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테이프>의 무대는 같은 무대에서 4월에 올라간 전문사 공연 <망토>나 한 주전인 5월 초에 올라간 전문사 공연 <인간 부의찬>에 비하면 무난하다. 배우, 연출 외에 스텝들의 아이디어와 기량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전 두 작품이 거친 듯해도 즐겁고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면, <테이프>는 미니멀한 무대 외에 이렇다 할 변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기성 무대와 영화로 소개된 바 있는 원작을 그대로 따랐으니 당연하다.
좁은 모텔방이 배경이라 이렇다 할 동선이 없고 대사 위주의 공연인데, 공연 시간과 작품 속 시간이 동일하게 진행되는 작품이니 암전이 없고 등퇴장이 드물다. 그러다 보니 배우들 연기력에 기대는 부분이 무척 큰 작품이다. 앞으로 무대에서 활약할 배우들을 가늠해볼 수 있다는 재미가 있겠지만 연기력이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지루해질 수 있다. 더욱이 짧은 공연 기간 중에 첫날 공연이라 스텝이나 배우들 모두 긴장이 가득할 판이다.
친구 사이인 빈스와 존, 그리고 에이미가 10년 만에 만나 2시간 남짓 대화를 나누는 단순한 구조지만, 그들 사이 얽힌 사연으로 인해 10년 동안 묵었던 감정이 조금씩 흥미진진하게 드러나는 심리극을 이도훈(빈스 역), 손성민(존 역), 장아름(에이미 역) 세 배우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고르게 잘 소화해냈으니 충분히 몰입할 만한 작품이었다. 프로필을 보니 손성민과 장아름은 <광부화가들>에서 좋은 연기를 봤던 기억이 있다. 극을 끌어가는 중심에 있는 이도훈 배우도 마찬가지, 코로 코카인을 흡입하는 연기가 자연스러운(?) 걸 보니 준비된(!) 배우라는 인상을 받았다. 다만 빈스는 10년 동안 속에 쌓아둔 응어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마약과 술을 좀 한데다 마약을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으니 좀 더 거칠거나 떼를 부리거나 화를 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이들 세 배우를 무대 위에서 자주 만나게 되길 기대한다.
벽에 건 블라인드로 창문을 처리한 점은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이지만 마지막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서 방안에 불빛이 비추는 장면은 블라인드를 내린 선택과 다소 맞지 않는다. 물론 객석 방향에 창문이 있을 수는 있지만 빈스가 연기 중에 내다보는 곳은 블라인드 쪽이다. 그에 반해 공을 들여 설치한 화장실이 눈에 띈다.
빈스가 맥주를 버리는 첫 장면이 속고 속이는 심리극임을 암시하고, 에이미의 불편한 방문에 존이 화장실 거울을 보는 머리를 가다듬는 장면 역시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혹은 여전히 가식을 벗지 않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빈스가 변기에 마약을 흘려서 버리는 대목은 빈스의 본성을 비로소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기능적인 부분을 감안해서 도드라져 보이지만 극중 오브제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외국산 맥주, 담배 등 세세한 부분에 신경을 쓴 소품에서도 정성이 보이고, 테이프 케이스에 들어가는 띠지 형태로 제작한 팸플릿을 보면 아이디어가 반짝인다. 테이프를 감싸고 있는 띠지 형태는 속내를 감춘 등장인물들의 의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부족한(아마도) 제작비를 감안하면 더욱 빛나는 아디디어가 아닌가 싶다.
제작 상황, 여건 등 스테판 벨러의 <테이프>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관객 입장에서 보면(물론 관객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적은 수의 배우에게 집중하는 공연보다는 어수선해도 연극 전반에서 두루 개성이 다투는 공연이 더 끌리기는 하다. 그렇다고 <테이프>에 완성도가 낮다거나 실망했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