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젊은 패기와 열정이 가득 찬 [땅굴]

구보씨 2009. 9. 23. 16:50

말괄량이픽쳐스&씨어터. 3년 만에 검색을 해보니 첫 작품인, 이 작품 이후 다른 작품이 보이지 않습니다. 젊은 영화배우들이 등장해 나름 신선했던 작품이었는데 말이지요. 야심차게 출발한듯 한데... 좀 아쉽네요. 동승무대 소극장은 소극장 중에서도 무척 작은 편입니다. 극장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의지도 그렇고, 배우들의 진지한 연기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사전에 본 줄거리도 그렇고,  기대를 하지 않고 본 작품인데요. 기대보다 좋았습니다. 글에서 언급했지만 민병훈 감독의 2006년작 <포도나무를 베어라>를 때 마침 본 참이었습니다. 감독의 '두려움에 관한 3부작' 마지막 작품인데요. 그 먹먹함이라니...  영화로 꼭 보시길 바랍니다. 영화 주인공 서장원 씨가 등장해 더욱 관심이 갔지 싶습니다. (우연의 일치였지요.) 




엉뚱하게 얘기를 하자면 아련한 추억을 거슬러올라가 볼 겸 영화를 검색해봤습니다. 바로 며칠 전인 1월 27일자 기사로 덜컥 나오지 않겠습니까? 뭔가 보니 배우 이민정 씨 영화 데뷔작였더란 말이죠. 영화를 보면서 잘 몰랐던 터라 스틸사진을 보니 맞더라고요. 근데... 왠지... 요즘 샤방샤방한 이민정 씨와 뭔가 좀 달라보는 건 흠... 더 나이가 들어보이기도 하는데 사진 각도 때문이겠지요, 뭐.




38선이 그어진 남과 북의 경계, 그 어디쯤 땅굴에는 남파공작원들이 숨죽이고 있다. 땅굴에서 지낸지 10년이 넘도록 그들의 북한 군부의 지령에 따라 남한을 넘나든다. 사선의 경계에서 등 뒤에서 쫓아오는 죽음을 업고 사는 존재들이다. 북한에서도 극비로 다뤄질 그들의 존재는 남한이 대치를 하는 동안에는 유용하지만,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면 껄끄러운 ‘계륵’이다. 좁고 10년을 넘게 남한을 오가는 동안, 살아남은 소대원은 채 여섯 명밖에 되지 않고, 물자 지원도 부족한 상태이다.

 

그래도 이들에게도 희망이 있다. 제대가 멀지 않은 것이다. 이들은 제대 후 국가로부터 받을 혜택과 가족과 혹은 고아원에서 봉사를 하면서 소박하게 살 꿈을 꾸고 있다. 몇 남지 않은 소대원을 어떻게든 살아서 제대시키려는 소대장 인배와 군부의 명령을 실행하는 정보요원 장원은 하달된 작전을 두고 들 대치를 한다. 이들은 형제나 상황은 늘 이들을 대치 형국으로 몰고 간다.

 

작전을 나가지 않는 일상, 땅굴에서도 이들 나름의 작은 파티가 벌어진다. 남한의 먹거리인 짜파게티 두고 벌어지는 삽화나, 나름 평양 만두 아가씨, 신의주 찹쌀순대 아가씨 출신을 놓고 아옹다옹하는 모습에서 전쟁기계 이전에 순진무구한 젊은이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그러나 무리한 작전 하달이 지시되고, 내부 갈등은 더욱 커진다. 하지만 작전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 북한 군부는 땅굴을 통째로 폭파하여 이들의 정체를 감추려고 한다. 남한으로도 북한으로도 갈 수 없는 이들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이데올로기를 다룬 연극은 아니나, 순수함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어설픈 서울 탐방기 등은 ‘서울시민보다 더 서울시민 같을 공작원‘일 현실과 거리가 있는데다, 무리한 작전, 부족한 지원, 마지막 매장까지 이들을 도구로 사용하는 북한 군부의 태도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뭐, 이들을 감추고 싶다면 남한으로 도망칠 기회를 줄 수도 있는, 땅굴 폭파 대신 복귀 시킨 후에 죽이면 간단할 일을!)


말괄량이 픽쳐스&씨어터의 첫 번째 작품인 <땅굴>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영아트프론티어>선정 지원 작품답게, 젊은 연극인들이 눈에 들어온다. 영화 <포도나무를 베어라>로 인상이 깊은 연기를 펼친 서장원을 비롯해, 오종훈, 이승준 등 등장하는 배우들은 젊지만 연기 경력이 만만치 않은데다, 실력 또한 인정을 받은 이들이다. 젊은 패기가 땅굴에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