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이형사님 수사법] 그들과 함께한 일주일 혹은 아주 오래

구보씨 2010. 11. 9. 11:32


제목 : 이형사님 수사법

기간 : 2010년 11월 9일 ~ 2011년 1월 30일

장소 :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 2관   

출연 : 강력 1반 반장 역 / 윤상화, 신참형사 김형사 역 / 이원재, 강력 1반 구참형사 박형사 역 / 이주원, 강력 1반 유일 여행사 이형사 역 / 김희연, 살해 용의자 오씨 역 / 하성광

기획 제작 : 극단 이와삼

작, 연출 : 장우재

협력연출 : 류현미

 

 

그들과 함께 했던 밤

나이트클럽 장기 잠복근무 중인 강남경찰서 강력계 1반 완소녀 이형사님 특유의 은유와 상징 범벅 수사방식을 존중하는 의미로, 서두를 조서 형식으로 꾸며보겠다. 


(이 리뷰를 쓰는) 용의자 A씨는 2010년 11월 **일(금) 오후 8시 정각, 변호 중인 연쇄살인범 이동원에게 점점 동화되어 내면의 악마를 끄집어내는 변호사 최현석을 다룬 반사회적 연극 <루시드 드림 Lucid Dream>을 본다. 그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후 *일 오후 8시 정각, 세곡동텃밭교살사건으로 점차 흑막이 드러나는 잔인한 발목절단연쇄살인범 오씨를 다룬 <이형사님 수사법>을 본다. A씨가 수많은 연극 중에 연쇄살인마를 다룬 두 편을 골라본 한 주 사이에 추정 시간 밤 10시부터 12시 사이에는 연쇄살인마인 주제에 경찰공무원의 탈을 뒤집어 쓴 모건 씨를 다룬 미국TV드라마 <덱스터 Dexter>를 본다. 


위와 같은 정황으로 보건대 A씨는 11월 둘째 주 금요일부터 셋째 주 금요일까지 연쇄살인마에 과도하게 몰입했음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평소 과식과 야식에 연말 잦은 술자리로 폭음이 이어지면서 조여 오는 허리 벨트로 인해 자학을 일삼던 A씨는 결국! 12월 초순 토요일 낮 2시 경 날카로운 송곳을 빼들고…!!!

 

벨트 구멍을 하나 더 뚫었다는, 허무한 일상의 전말을 밝히는 바이다. 


A씨(에이 씨X)~, 이게 뭐야 싶지만, 어쨌거나 A씨는 한 주 동안 살인범들, 그것도 연쇄살인범들을 초저녁잠을 자는 부모님보다 자주 본 셈이다. 뭐지? 갑작스레 최면, 아니 최변처럼 내 안에 도사린 악마라도 발견한 걸까? A씨는 정말 위험한 놈이 된 걸까? 아니다. A씨는 반대로 한 주 동안 꼬박꼬박 집에 들어왔으니 오히려 모범(?)적인 생활을 했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 한 주가 A씨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순간 ‘다음 보기 중에 고르시오’, 라고 쓸 뻔했다. 수능 때문에 수험생이거나 수험생을 식구로 두지 않아도 대한민국 국민들이라면 누구나 가벼운 우울증을 앓기 마련이다.) 보기가 없으니 주관식으로 답을 하자면 “연쇄살인마는 이제 티비, 영화관, 공연장에서 볼 수 있는 대중문화 아이콘이다" 이다.

 

그래도 대충 넘어가기에는 그런 것이, <덱스터> 살인 방식을 따라 친동생을 죽인 10대 소년 사건이 미국에서 실제로 벌어져서 논란이 일었다.  HBO 19금 유료채널 방송이나 요즘 애들이 보려고 맘만 먹으면 어떻게든 보겠으니 부모 탓만 마냥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정작 <덱스터>는 여러 가지 반발 탓인지 시즌을 거듭할수록 설정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몇몇 장면을 들어내면서 아이들과 여동생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가족극으로 바뀌는 중이다. 


그래서 요즘은 종종 미국식 전원일기 <초원의 집 Little House on The Prairie, 1974>이 종종 떠오르는 참이다. <덱스터> 같은 드라마를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친동생을 죽인 사건의 중요한 지점은 흉내낸 방식이 아니라 이유에 두어야 한다. 요즘 통도 크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후라이드 치킨처럼 조각내는 살인 방식은 만화 <톰과 제리>를 비롯해 수많은 대중물에서 수도 없이 반복한 패턴이다. 가족 관계로 초점을 맞추면 부모에게 책임을 물을 여지가 생긴다.

 


  

이런 얘기를 들을 리가 없는데

뮤지컬 시장에서 연말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는 작품 역시 살인을 밥먹듯 일삼는 이중인격자 <지킬 앤 하이드>이고 보면 연쇄살인마는 문화계 전방위에 걸쳐 정말 흔하다. (이유에 대한 수많은 분석들이 나와 있으니 넘어가겠다. 글 하단  Tip 참조) 가족의 의미를 연쇄살인마 덱스터로부터 배우는 21세기라니,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현실을 무시할 수도 없으니 연극 <이형사님 수사법>이 스릴러물이 아닌 “화이트 코미디이자 해피엔딩”이라고 스스로 주장한다고 해서 이해 못할 상황은 또 아닌 게다. 연쇄살인범 이야기를 “넥타이도 푸시고 하이힐도 벗으시고 수다를 떨어도 되는 연극”이라는 정체성도 그렇고 말이다.

 

하지만 시즌을 더할수록 <덱스터>는 인기몰이 중인데, <이형사님 수사법>을 두고는 관객 평가가 좀 싸늘하다. 쉽고 어렵고, 웃기고 지루하고를 떠나 불편하거나 조율이 어긋났다는 식이다. 배우들이 연극 시작 전에 픽션이라고 재차 강조를 하더라도 여인네들 발목을 잘라 텃밭에 칼슘 비료로 준 시인의 얘기를 “텃밭에서 자란 콩나물은 정말로 키 크는 특효약이 아닐까?”라는 얘기를 웃으면서 보기는 좀 어색하다.

 

하지만 뭔가 미심쩍다. 33년 전통의 극단 연우무대 작품을 (주)이다가 제작을 맡았고 베테랑 연출 두 명이 같이 작업을 했으며 “캐스팅을 까다롭게 하는 편”이라는 장우재 연출의 언급처럼 주 조연 구분 없는 윤상화, 이주원, 하성광, 이원재 캐스팅이다. 이 정도면 대학로에서 연기를 잘하기로 소문이 난 고수들로만 추린 셈이다. (이형사님 역 김희연 씨만 유일하게 예쁘고도 신인급이며 여성이다.) 그런데 아마추어나 들을 조율 얘기를? 자신감 없이 11월부터 2011년 1월까지 무려 3개월 장기로 공연할 리가 없다.

 

‘숨은 음모’까지는 아니라도 ‘다른 의도’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복잡해진다. 상식선에서 보면, 잡히거나 죽기 전까지 살인을 거듭 저지르는 속성의 연쇄살인범을 다루는 이야기를 보고 웃는다는 게 대놓고 코미디가 아닌 이상 쉽지 않다. <이형사님 수사법>이 대놓고 코미디인 점은 확실하지만 희화화에 과장했다고 해도 연쇄살인범 오씨의 지난한 삶과 처한 딱한 사정이 현실적이고 탄탄하다. 전업 시인으로 대한민국에서 견디기란 복권이라도 맞지 않는 이상 분명히 ‘이미’ 미친 짓이다.

 


  

클리쉐로 배우긴 마찬가지

오씨에 비해 강력반 형사들은 파격적인 캐릭터들이다. 개인적으로 그 직종 종사자와 친분이 있다거나 아니면 불미스러운 일로 마주 앉아 대면해본 적이 없어 성급한 결론일 수 있지만 드라마, 영화, 만화 등등에서 본 패턴화된 형사들과 공통점이 거의 없다. 군복과 경찰복은 ‘제복’ 중에서도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규율과 통제의 가장 강력한 상징이다, 라고들 한다. 형사들이 업무상 경찰처럼 제복을 입지는 않지만, 역으로 표피가 아닌 내면으로 침잠한 24시간 내내 입고 다니는 무형의 제복을 상정하면, 개성이 아닌 공통적으로 드러내는 의도된 특유의 과잉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즉 A씨 같은 일반인을 위해 전형적 행동 방식이 제복 역할을 대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가 영화, 드라마에서 이해하는 형사 패턴은 실제 형사들에게도 똑같은 표본이다. 적어도 그 경찰들은 어린 시절 영화, 드라마, 만화를 보고 형사를 꿈꿔왔을 것이다.

 

그래서 수갑, 권총, 신분증을 바라리맨처럼 숨겼다가 척하고 꺼냈을 때, 조폭이 아닌 형사라는 갈림길에서 반전 효과가 강하게 나타난다. 길에서 조폭이든 형사든 직접 맞닥뜨렸을 때 마음이 한편으로 불안한 건 두 집단이 최소공약수로 폭력을 공유하면서 통제와 억압의 생리를 본능적으로 강하게 풍기기 때문이다. <이형사님 수사법>이 관객과 조율이 맞지 않는 근저에는 반장과 고참 박형사와 특히 이형사가 패턴화된 뉘앙스를 드러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강력1반은 <리셀 웨폰 Lethal Weapon, 1987>처럼 정의감에 불타는 부류인지 <더티 해리 Dirty Harry, 1971>처럼 부패를 넘어 발효된 부류인지 우리가 익히 장르물로 알고 있는 경우의 수로 판단이 불가라 이들이 중구난방 펼치는 이야기가 어디까지 갈지 가늠이 안 된다. 그래서 어느 시점에서 웃고 감탄을 하고 공감을 해야 하는지 방황하다가 극장을 나서는 집단 참사가 벌어질 우려를 낳고 말았다.

 

작품에 대한 의문을 좀 더 풀자면 이렇다. 특유의 강인함, 의지, 날카로움 등 ‘볼록’하게 굳은 캐릭터인 형사들을 개성이 심하게 강한 인물들로 설정한 데까지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도 그렇거니와 무대 장치, 소품 등 정성들여 꾸민 장치들과 잘 어울리면서 성공적이다. 하 지만 살인 건수 외에는 하나의 패턴으로 묶이기 힘든 ‘사이코패스’라는 모호한 개념의 심연을 알 수 없을 만큼 ‘우묵’한 캐릭터인 연쇄살인범과 형사들을 같은 틀에 넣고 같은 방식으로 시도한 해체와 재조합에서 관객과의 불화가 생기는 지점이다.

 

2NE1 콘서트와 방송 스케줄을 달달 외는 박봄빠(박봄 열혈팬) 고참 박형사 캐릭터는 관련 물품을 모아두는 곳을 강력반 사무실 로커가 아닌 집으로 설정하면 현실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암묵적 합의에 따라 비현실적 인물로 다가온다. 반면 하이힐을 신었다는 이유로 여자들을 죽이고 발목을 갈아 밭에 뿌리면서도 순수성을 잃지 않은 시인, 오씨의 경우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작가의 상상력의 소산이지만 꽤나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가 처한 현실은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리지 않는 지독한 추위의 성탄절처럼 다들 직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강력1반 대 연쇄살인범 사이 부정교합은 어떤 외도로 보아야 할까?


 

 

현실고발극

여기가 청담동 클럽 스테이지이고, 코앞에 섹시하게 춤을 추는 이형사가 있다는 전제에서 따귀를 맞거나 수갑을 찰망정 강하게 밀어붙여 해석하면 이렇다. 리얼리티 고발극. 강력1반은 중구난방 관객의 혼을 빼놓는 과정이 치밀하게 짠 수사 대본에 따른 동선이라고 마지막 반전으로 드러난다. 그러니까 그들이 벌인 과장과 억측과 보이는 행동은 알고 보니 ‘이형사식 수사법’에 따른 지침으로 검사에게 성상납을 한 적도 없고, 반장의 아내는 오씨와 바람을 피우지 않았으며, 당연히 에이즈는 걸리지 않은 데다 복장도착증은 없다는 식이다. 180도 회전 카 스턴트를 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반장의 진지함 앞에 관객들은 깨는 ‘병맛’을 제대로 본다. 아무려나 강력1반은 관내 가장 큰 사건인 발목절단 연쇄살인사건을 용의자 검거, 자백, 회개까지 삼단 콤보로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이른바 ‘21세기식 범죄’에 맞서는 ‘21세기식 수사방법’이자, 연극이 내세우는 화이트 코미디 방식이다.

 

코미디 정의처럼 ‘덜떨어지고 불안정한 인물의 실수’에 웃음을 터트리다가도 찰리 채플린 식의 해피엔딩이 왠지 마음 한구석 따뜻해야 화이트 코미디라 할 만한데, 낯선 코드과 불협화음으로 화두를 던지면서 마무리하니 반전을 해서 해석하자면 ‘코미디는 코미디에서나 가능하다’는 일침으로 볼 수 있다. 즉 삼풍백화점 붕괴를 들지 않더라도 과정을 중시한다는 공익광고 멘트 따위는 담뱃갑에 붙은 폐암 경고 문구처럼 있으나마나한 얘기라는 의미이다. 

 

반장과 고참 박형사의 해괴한 수사 방식에 반기를 들었던 신참 김형사는 미궁으로 빠질 뻔한 사건을 해결한 이후 ‘이형사식 수사법’을 몸에 익히면서 21세기식 수사 전통을 이어갈 것이다. 정작 그 방식은 20세기 초 일제로부터 시작된 전통적인 수사 방식의 계보에 충실하다. 순사들이 노획한 독립군 머리나 독재정권 시절 형사들이 일망타진한 인혁당 계보나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고문사건 진상 발표 등은 당시 신문 1면과 뉴스 첫 머리를 장식한 휘발성 성과처럼 나중에 비극으로 드러난 경우에만 해당하지는 않는다.

 



상식과 몰상식 

사회로 작품을 확장하면 기가 막힌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10월 한국 역대 최고 성적을 올린 2010광저우 아시아경기 대회 당시 망신살이 외국으로 죽죽 뻗은 볼링 국가대표 감독의 선수 폭행 사건이 있다. 볼링 종목에서 4관왕이 나왔고 차기 인천 아시아 경기대회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자, 폭행을 다룬 기사는 '국가대표 볼링 구타 논란, 감독 "선수들도 맞은 게 아니라는데"'로 바뀌더니 '효자종목 볼링 “4년 뒤에도 효도”'는 식으로 마무리한다. 딱 ‘이형사식 훈련법’이고, 이 연극을 보고 마냥 웃지 못하는 이유이다.

 

비현실적이 아닌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낸 캐릭터들은 무대를 객석으로 확장한다. <이형사님 수사법>은 처음 시작부터 관객과의 대화, 혹은 설명으로 시작을 하고, 박수를 유도하며, 객석을 사이에 두고 연쇄살인마와 대치를 벌인다. 웃음코드 유발이자 현실에 대한 적극적 개입이다. 오씨는 처음 등장부터 관객의 시선이 쏠린 대기실이 아닌 객석 계단으로 등장한다. 범인은 늘 우리 중에 있다는 건 소년탐정 김정일, 아니 김정은, 아니 김전일의 첫 번째 원칙이다. 실재 연쇄살인마까지는 아니어도 그냥 살인마까지도 아니어도 볼링 국가대표 감독이 내 옆에 같이 앉아서 봤는지 누가 알까 말이다.

 

4차원식 수사 과정이 아무일 없다는 마무리되어 고참 형사는 2NE1 콘서트로 달려가고, 이형사는 다시 클럽으로 달려가는 납득이 되지 않는 일상을 리얼리티극으로 보면 2010년 12월 말 현재, 대한민국의 가장 큰 이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반세기만에 전쟁위기가 최고조에 달해 북한동포 돕기 모금 캠페인을 알리는 성탄 축포 대신 155mm K-9 자주포 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보온병이 전쟁박물관에 북괴 남침 도발 증거 1호로 남을 뻔한 상황이다. 고참 박형사가 2NE1 노래에 맞춰 사건을 조작하듯, 보온병 폭탄이 해당 방송 조작이라는 식으로 보수신문이 떠드는 꼴이다. 대기업 유통업체에서 동네 야식시장을 잡겠다고 4,200원짜리 생닭을 튀겨서 5,000원에 팔아도 이득이 남는 현실 역시 과정이 오리무중이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집권여당 당수이고 그들은 유통 대기업이다.

 

나는 당최 ‘상식’으로 두 가지 사건이 벌어지는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버젓이 벌어지고 또 아무렇지 않게 마무리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상식이 상식이 아니거나 왜곡이 되었다는 의미일 게다. 강력1반의 행태를 말도 안 되는 코미디로만 볼 수는 없는 교차점이다.  그렇게 보면 사회고위층 가운데 유독 해병대를 다녀와 각광을 받았던 M&M 최철원 사장의 맷값 파문도 알고 보면 군대 얼차려로 받은 머리박기에 따른 조기 치매 혹은 유아기 퇴행으로 인한 꼴통짓이 아닌 당신과 나만 모르는 상식일 수도 있다. 참고자료로 <검찰 '맷값 폭행' 최철원 사건 묵인 논란> 기사를 읽어보면 그들만의 멤버십 상식이 있는 건 분명하다.

 


  

M&M's 알약

그러니까 사람 미치게 만드는 건 내가 속한 세상이 내가 아는 세상이 아니라는 혐의를, 굳이 빨간 휴지 아니 빨간 알약을 먹지 않겠다고 그렇게 말하고 파란 알약을 마치 비타민인양 매일매일 복용하면서, 심지어 골치 아픈 뉴스 말고 코미디나 보자고 지하소극장에 가도 세상은 자꾸만 적나라하게 그 속내를 드러내니 당최 비극이 아니고 뭐냔 말이다. 그렇다면 왜 세상은 우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가.

 

빨간 알약은 영화 <매트릭스 The Matrix, 1999>에서 네오가 선택한 약으로 현실에서 깨어나라는 상징이다. 한국 영화라면 빨간 알약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빨갱이 논란이 일게 뻔하지만 어차피 파란 알약이나 빨간 알약이나 타르계 색소 청색1호 적색2호를 입힌 M&M's(최철원 씨와 전혀 상관없는) 초콜릿이다. 마치 둘 중 하나의 선택에 기로에서 대단한 선택인 양 보여주지만 모피어스가 선택을 앞두고 친 대사는 이러하다. “You take the blue pill and the story ends. 파란 약을 먹으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당최 돈을 얼마나 투자한 영화인데 허리우드 영화가 이렇게 끝날 리가 없다. <매트릭스>는 화려한 효과 못지않게 묵직한 철학적 메시지를 던지는 수작이지만 텍스트를 영상으로 간추려 옮긴 정도이지,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것은 아니다. 매트릭스 연작 직후 워쇼스키 형제 연출작이 <스피드 레이서>여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 작품은 GOD 출신 가수 박준형이 출연한 반가운 영화다.  

 

스크린 밖 영화관 객석에 앉았을 때도 그랬고, 신참 배우가 내 앞자리 여자한테 윙크를 날리는 소극장 객석에 앉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나를 “사방에 존재하는 우리가 노예라는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는 세계”에 그냥 납두지 않는다. 그렇다면 원하지 않아도 빨간 알약을 먹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동화 <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를 참고하면 19세기 말, 네덜란드령 가이아나 커피 농장주의 열네 살 외동딸 마리아의 눈에 흑인 노예들이 사람이 아닌 검정색 배경으로만 보이다 보니 그 앞에서 자신이 옷을 벗든 입든 싸든 부끄럼이 없듯이, 기계가 정교하게 짠 가상의 매트릭스처럼 치밀하지 않더라도 쓰다만 걸레 같은 그물 같은 얼개 정도만 되어도 우리는 파블로프가 키운 개 마냥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는 것이다. 오만과 몰염치의 보온병이 바로 그 이유이다! 라고 전에는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속내를 말하자면 위 문장에서 생략된 주어, 오만과 몰염치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말하자면 흑과 백, 적과 청 구분은 모두 내 안에서 벌어지는 인식인데, 지킬 박사가 발명한 자의식을 둘로 쪼갠 약 레시피 사본이라도 구하지 않는 이상 흑과 백의 정교한 구분은 애초 가능하지 않다. 곧 내가 억압과 박해를 하는 주체로 S이자 M이다. 사디스트이자 마조히스트, 내가 바로 매트릭스를 짜고 구성하는 존재이니 매트릭스가 애들 정글짐처럼 우습게 보이는 것이다. 고발서 <삼성을 생각한다>를 쓴 내부고발자 김용철 변호사가 벗을 수 없는 혐의, 또 그가 용기를 낸 유일한 상섬고위층임에도 사회에 반성문을 써야 하는 이유 역시 권력의 속성에 취해 옹호를 했던 시절의 달콤함을 맛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형사님 수사법>을 보고 불편한 이유는 바로 내 존재의 본성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는 누구인가

오씨는 소설 <죄와 벌>과 <성경>에서 끌어낸 ‘내 운명에 살인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루시드 드림>의 천재 살인마 이동원이나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채로 살인마를 겨냥해 자칭 ‘정의로운’ 살인마가 되었다는 식으로 한 인격체에서 완벽히 균형을 이룬 <덱스터>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텃밭 관리를 하며 근근이 월세를 대신하는 열악한 현실에 처한 무명 시인의 순수하고 소심하고 착한 성격은 절망에 면역력이 없다. 하여 시적 상상력을 더한 발목절단 연쇄살인이라는 극에 다다른 행동에 설득력을 더한다. 하지만 희생자의 금품이나 몸이 목적이 아니고 시대가 그를 궁지로 몰았다고 해도 충실한 살인범을 희생양으로 옹호할 수는 없다. 죽은 그녀들이 무슨 죄란 말인가.

 

‘키 작은 남자는 루저’ 라는 발언 이후 다들 분노에 치떨기보다 다급하게 키높이 구두, 두툼한 수면 양말, 깔창으로 대응하는 시대에 여성이라고 마냥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대한민국 욕망의 땀구멍을 넘어 요도(尿道) 수준에 다다른 강남에서 10cm 정도(미니멈) 킬힐Kill heel는 무지외지증, 골막염, 각종 관절염을 감수하고라도 신어야 하는 기본 아이템이다. 그런데 이미테이션 단속반도 아닌 오씨에게 단지 킬힐을 신었다는 이유 하나로 죽음의 언덕(Kill hill)에서 오씨네 채소밭으로 추락한 떨어진 피해자들의 심정은 억울하기 짝이 없다. 혹시나 킬힐 굽이 부러질까, 다이어트를 위해 어거지로 먹었을 샐러드용 닭가슴살마냥 오씨를 찢어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순수의 상징으로 기억되는 과외 선생이자 텃밭을 가꾸며 시를 쓰는 오씨는 배우 하성광의 작은 몸피와 촌스러운 분장과 수줍고 여린 연기에 웃음이 나오면서도 소름이 슬쩍 돋는다. 오씨는 가면(13일의 금요일)을 쓰지도 꿈(나이트메어)에 나타나지도 박사 학위(양들의 침묵)를 따지도-작은 문예지로 등단했다는 설정이지만- 백만장자(아메리칸 사이코)도 아니고 괴물(기타 등등)로 변하지도 않는다. 오씨는 외모는 좀 다르지만 만화처럼 사슴 눈망울을 클로우즈 업 강조 촬영한 영화 <살인의 추억> 박현규(박해일 역)를 닮았다. 박헌규 역으로 영화가 극적 대비 효과를 살리기 위해서 꽃미남 배우를 캐스팅했다 뿐이지 그런 짓을 하지 않을 성 싶은 평범한 소시민이라는 설정이다. 영화는 여전히 미결로 남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마지막 쇼트에서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 뒤에 스크린 뒤에 서 있을 인물이 바로 딱 오씨다.

 


  

심리치료극

하지만 잡고 보니 거지같은 상황에 내몰린 불쌍하기 그지없는 처지이다. 마당 텃밭은 사색용이 아닌 살기 위한 마지막 발버둥이고, 유일하게 내세우는 시마저 ‘하이 서울 페스티벌’에서 도용당할 판이다. 그래서 강력1반은 피로 붉게 물들기 전 순백색 순수의 시절로 그를 되돌린다. 그래야만 용서해줄 수 있는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강력1반 형사들은 실재 법의 잣대에 따라 움직이는 현실과 다르게 살인마의 정서를 달래는 정신과 의사 혹은 현대판 무당이다.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은 오씨를 놓고 벌이는 심리치료극이다. 피의자 오씨를 사회의 희생양이자 구원 대상으로 보면 그를 콤플렉스 덩어리로 몰아간 발붙일 수 없는 속도 경쟁 시대와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질타 혹은 풍자일 수는 있다. 연극은 마음의 깔창 빼고 다 같이 콤플렉스를 극복하자는 메시지로 풀어낸다.

 

하지만 관객을 향한 깔창 빼기 교훈은 기분 전환 정도이지, 생각의 전환이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욕망이 인간을 규정한다는 게 전제 조건이기도 하지만, 조금이라도 높게 보이려는 시도는 사회의 미친 경쟁과 혼돈에서 비롯한 불안 불안한 까치발 서기나 다름없다.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까치발을 섰다가 넘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 오씨들을 이웃으로 둘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고작 그들의 이야기를 수많은 문화 상품을 통해 하나의 코드로 친숙하고 인지하고 대응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내 안에서 동화(루시드 드림)되다가 결국 육화(덱스터)되기 전에 강력1반의 ‘이형사식 수사법’으로 해체하고 잘라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희망사항이지만 그래서 화이트 코미디가 아닌가.

 

구구절절한 이 글은 ‘21세기형 신개념 하이브리드 코믹 버라이어티 수사쇼’라는 긴 수사(修辭) 뒤에 류현미 글·협력 연출의 한 마디 “촛불집회는 패러디의 대상이 될 수 없다”에서 시작한 의문이다. 연극을 만든 이들이 어떤 시점에서 세상을 보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연 리뷰라기보다 공연 팸플릿 리뷰라고 하는 게 더 마땅해 보인다. 진짜 좌철스프링노트처럼 꾸미고 제목만 달랑 적어놔서 진짜 수사법을 담은 비법서인 척하는 팸플릿이니 그렇다고 해두자.*

 


  

Tip

A씨가 몰아서 본 대중문화상품 세 편을 중심으로 보면 기존 사회 통념으로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살인을 벌이는 연쇄살인범들을 일컬어 잡은 뒤에 사이코패스(Psychopath)라는 진단을 내린다. 이 단어가 얼마나 어이가 없는가 하면 세계에서 가장 무기도 많고 싸움도 잘하는 나라이자 외부세력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나라라는 미국의 경우, ‘사이코패스의 인구가 500만 명 정도 된다는데 그중 살인자는 몇 만 명뿐이다’라는 위키백과 소개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발적인 살인 혹은 보복 살인 등 사유를 납득해야만 불안을 떨칠 수 있는 인간에게 불특정 다수를 향한 연쇄살인범은 곧 UFO(unidentified flying object 미확인비행물체) 같은 존재들이다.

 

엉뚱한 결론이지만 사이코패스를 다룬 장르물들은 UFO를 포함한 우주 공간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 영화, 드라마, 만화, 게임 단골 메뉴인가, 하는 점과 비견될 수 있을 것이나, SF장르는 특히 소설 분야에서 어느덧 동시대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함의를 담은 수준 높은 작품 경우가 많으므로 좀 더 설득력을 보태자면 보다 직설적인 배설의 효과를 가진 사이코패스를 다룬 작품은 실제와 가상에 걸쳐 벌어지는 상황이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 프로이트 식으로 전의식을 짜릿하게 건드리는 단골 메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진출처 - 이형사님 수사법 홈페이지, 뉴스스테이지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