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

[제16회 한국 뮤지컬 대상 시상식 리뷰] 영웅의 또 한 번의 영웅 추대는 정당한가

구보씨 2010. 10. 18. 13:11




16회 한국 뮤지컬 대상 시상식 리뷰 ­- 작품편

<영웅>의 또 한 번의 영웅 추대는 정당한가 

 


제 2회 그리고 제 16회  

지난 18일 KBS홀에서 열린 제 16회 한국뮤지컬대상에 이변은 없었다. <영웅>의 정성화는 준비해온 A4 한 장짜리 남우주연상 수상소감을 또 한 번 읽었고, <모차르트!>의 김준수 역시 남우신인상 트로피를 들고 “르베이 할아버지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 대부분은 1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던 <영웅>을 위한 자리였고, 그 결과 <영웅>은 6개의 트로피를 가져갔다. 공교롭게도 이는 지난 6월에 열린 더 뮤지컬 어워즈와 동일한 결과다. 4개월 전의 시상식에서도 <영웅>은 최우수창작뮤지컬상을 비롯 총 6개 부문에서 승자였고, <모차르트!> 역시 남우신인상을 비롯 총 3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 한국뮤지컬대상에 내려진 숙제(웹진 ‘10 아시아’ 정경진 기자 2010-10-19)

 

제 16회 한국뮤지컬대상의 마지막 순간, 최우수작품으로 (주)에이콤 인터내셔널 <영웅>의 이름이 불렸다. 축포가 터지고 단상으로 나오는 윤호진 대표를 앞자리에 앉았던 뮤지컬 배우들이 일어나 축하했다. 하지만 제 4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 이어 이변이 없는 작품상 수상이라 아무래도 싱거웠고,객석은 축하 분위기가 옅었다. 사실 작품상 수상보다  신인상을 받은 김준수가 단상에 설 때 이날 시상식에서 가장 큰 호응이 나왔다. 작품보다는 출연 배우에 따라 환호하는 모습은 이제 뮤지컬 수상식에서 흔한 풍경이다.


이날 시상식 풍경은 제 2회 한국뮤지컬대상의 재현이었다. (주)에이콤 인터내셔널은 2회 때 <명성황후>로 받은 작품상, 연출상(윤호진), 무대미술상(박동우)을 <영웅>으로 같은 회사, 같은 연출가, 같은 무대미술가를 통해 그대로 이루어냈다. 올해 뮤지컬 어워즈 때도 그랬지만 이날은 정말 <영웅>을 위한 <영웅>의 날이라 부를 만했다. 


출품작 총 52편(창작 27편, 라이선스 25편) 가운데 최우수작품상을 겨룬 후보작들은 (재)성남문화재단 <남한산성>, (주)피앤피 컴퍼니/(주)청심 <서편제>, (주)팍스컬쳐 <올댓 재즈>, (재)세종문화회관 <태양의 노래>에 <영웅>을 더해 5편이었다. 이중 <남한산성>은 유일하게 4달 앞서 열린 제 4회 뮤지컬 어워즈에서도 같이 겨뤘던 작품으로, 이번 시상식에서 <영웅>을 제치고 수상을 했다면 대한민국 양대 뮤지컬 시상식이 각각 다른 심사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했으리라 본다. 단순히 경쟁 구도로 몰자 하는 건 아니고, 노래, 캐릭터 등 많은 부분을 보완해서 한결 완성도를 높인 <남한산성>을 시상식 며칠 전 관람한 경험에 비춰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더라도 과하지 않다는 판단이 선 이유이다.

 

 

 아쉬움이 남는 <남한산성>

뮤지컬 <남한산성>이 소설가 김훈 원작에서 보이는 무기력이 극에 다다른 이후 찾아오는 공허나 마치 겨울 남한산성에 쌓이지 않고 바람에 휘날리는 마른 눈발처럼 처연한 여운이 여전한 무겁게 가슴을 내리 누르는 진중함을 완벽하게 소화해서 담고 있지는 않았다. 차가운 건조체를 대형 뮤지컬로 옮기는 과정에서 소구 대상이 달라지는 이상 당연히 바뀔 수밖에 없기도 하다. 소설에서 잠깐 이름으로 등장하는 유생 오달제에게 힘을 실어준 점은 드라마 전개상 이해하고, 광대 훈남, 순금 부부를 새롭게 집어 넣어 인조의 무기력한 상황을 허수아비로 빗대는 장면은 좋은 아이디어이다. 하지만 행동이 가벼운 광대부부가 잡초처럼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하게 근성으로 도리를 다하는 민초의 상징 대장장이 서날쇠 대신이라면, 극의 무거움을 덜어내려는 의도라고 이해하나, 아무래도 도드라졌다.  


소설에서 서날쇠에게 쏟았던 힘이 뮤지컬에서는 오달제에게 가면서 의도가 달라진다. 오달제는 캐릭터로 보면 <영웅>의 답습이다. 그러나 안중근이라는 실제 인물의 역사적 사실과 배경과 삶을 갖추지 못한다면 '전형적인 인물' 범주에 들어가 매력이 덜하다. 그래도 <남한산성>은 많은 힘을 쏟은 무대에 돋보인다. 기마병이 주축인 후금의 대군을 어떻게 표현할까 싶었는데, 적절하고 화려하면서도 그 위력이 실감나게 잘 표현했고, 극 마무리에 치욕의 역사적 사실 뒤에 감정 과잉으로 치닫지 않고 백성들이 봄의 힘을 빌려 희망으로 살아나는 대목도 참 아름다웠다. 그래서 무대미술상을 놓고 <영웅>과 한번 겨루어볼 만했다. 무엇보다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삼은 두 작품을 두고 2010년 대한민국 현실에 빗대 비교하면, 지금 시대는 이미 누가 선도하는 시대가 이미 아닌 바, <남한산성>에 기대를 했다.

 

그렇지만 출품 기준에 따라서 심사 후보작은 보강하기 전 작년 초연 <남한산성>이고 보면, 같은 기준을 놓고 겨뤘던 제 4회 뮤지컬 어워즈 6개 부문 후보에 머문 결과를 아무래도 무시할 수는 없을 거라고 봤다. 이번 시상식에도 작품상 외에 연출상, 남우주연상, 극본상, 무대미술상 등 5개 부문에서 <영웅>과 겨루었으나, 결국 뮤지컬어워즈와 비슷한 결과를 얻었지만, 작곡상에서 <영웅>을 눌렀고, 또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성남아트센터 이종덕 사장은 특별상 소감에서 “내후년 더 새로운 작품으로 돌아오겠다”는 포부를 밝혔는데, <영웅> 같은 창작 대작이 나오기 힘든 여건이고 보면, 그때는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기대한다. (정식 부분이 아닌 특별상 수상은 아무래도 주최 측 배려라고 봤지만, 작품상 발표가 나기 전, 소감에서 스스로 작품의 부족함을 밝힌 셈이라, 솔직하고 시원한 대답이긴 해도 맥이 풀렸다.)


 

 

 <서편제>는 <빨래>가 될 수 있을까

<영웅>과 <남한산성>을 제외한 작품상 후보 3작품은 뮤지컬 어워즈와 달라졌으니 호기심을 가지고 보는 게 당연하다. <태양의 노래>는 잔잔한 사랑 얘기를 다룬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음악 위주 뮤지컬 전개에 맞게 가창력 있는 아이돌 가수 김태연(태연)이 주인공으로 참여해 화제를 모았지만, 결국 국내에 먼저 소개된 동명 영화에 비해 아쉽다는 평가가 많았다. 뮤지컬 1세대 안무가 서병구의 첫 연출작 <올댓재즈>는 춤을 제대로 소화하기에 좁고 간소한 소극장에서 거울을 사용해 펼치는 춤이 인상 깊게 남았다. 서병구는 안무가로 시상식에서 안무상을 수상했지만, 연출로 보면  내용, 무대, 규모, 조명 등 전체에 걸쳐 변화를 줄 필요를 느꼈고, 재즈피아니스트 지나(서현아)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해 주목을 받은 음악도 기대치를 채우지는 못했다. 


<태양의 노래>와 <올댓재즈>가 각각 음악과 춤을 중심축을 삼아 변별점을 둔 작품이지만, 애초 작품상 수상까지는 힘이 부친다고 보면, <남한산성>이 뮤지컬 어워즈에서 판정패를 받은 이상, <서편제>가 <영웅>과 수상을 놓고 겨룰 만한 유일한 작품이었다. 8월 공연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봤던 기억을 더듬자면 임태경, 차지연은 성악이나 뮤지컬과 발성법이 다른 창을 이자람에 어느정도 견줄 만큼 소화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허나 오는 11월 7일까지 장장 4개월에 걸쳐 공연을 하고, 이미 3개월가량 <서편제>를 소화하는 동안 노래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들이라, 임태경은 전문국악인 이자람 상대역으로 어울리게, 또 차지연은 같은 역할로 그녀 못지않게 충분히 무르익었으리라 본다. (이번 차지연 신인상 수상을 떠나서 서편제를 본다면 요즘이 딱 진국이 나올 때이다.)


임태경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차지연과 신인임에도 초연 관람 당시 꽤 안정된 연기와 실력을 선보인 김태훈 역시 각각 신인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차지연이 여우신인상을 수상할 때만 해도, 제 4회 뮤지컬 어워즈 때 <빨래>가 보여준 약진을 <서편제>가 재현할지 관심이 갔다. 또 <남한산성>으로 연출상 후보에도 오른 조광화도 <서편제>로 극본상 만큼은 해볼 만 했으나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대한민국 문화 콘텐츠

그렇게 해서 뮤지컬 어워즈에 이어 다시 <영웅>이다. 안중근 장군 순국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0년, 양대 뮤지컬 시상식에서 24개 부문 후보, 12개 부문 수상으로 뮤지컬 역사상 한해 역대 최다 부문/수상을 해 과히 영웅이라 불릴 명예를 얻었다. 곧 12월 재공연을 앞두고 있고, 내년 미국 뉴욕, LA 진출을 앞두고 있으니 2010년은 뮤지컬을 넘어서 영웅이 ‘대한민국 최고 문화 컨텐츠’라도 좋을 만한 도약의 해이다. 초연 당시 ‘영웅은 다시 살아날 것인가’ 리뷰(http://blog.daum.net/gruru/107)와 올해 제 4회 뮤지컬 어워즈 작품상 수상이후 ‘영웅의 영웅 추대는 정당한가’ 리뷰(http://blog.daum.net/gruru/139)로 다루었으니 새삼 덧붙일 내용이 드물지만 이날 극본상을 수상한 작가 한아름이 수상 소감에서 “12월 공연에는 작년보다 나아진 모습으로 찾아오겠다”고 했으니 실제 인물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가상 인물들의 전형적이고 밋밋한 캐릭터 문제나 작위적인 링링 죽음 등을 두고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중국인 왕웨이는 비중이 크지 않은 조연급이지만 대한독립 외에도 일본의 침략 야욕에서 동북아 평화를 지키려는 명문으로 같이 싸운 캐릭터이고, 사상가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의 한 이유를 설명하는 캐릭터이므로 다듬을 필요가 있다. 왕웨이의 진술을 통해 대한독립을 넘어서는 의미가 부각되면 안중근을 재조명하려는 취지가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싶고, 이는 해외로 진출했을 때 중요한 키로 작용하리라 본다. 왕웨이 여동생으로 안중근 대신 목숨을 던지는 링링은, <영웅>이 언론을 통해 워낙 찬사를 받고 있는 와중이라 한마디 하면, 70년대 억지 감동을 요구하는 방화에서 숱하게 봤던 인물이다. 해외 공연에 앞서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적 의미와 안중근에 대한 국민적 감흥을 공유하기 힘든 외국인 눈에 짜맞춘 듯한 우연성이 어떻게 비칠지는 고민해야 한다.

 

 

<명성황후> 그리고 <영웅>

그는 "명성황후 때문에 머리도 아파죽겠는데, 왜 다시 머리 아프게 하냐고 가라고 했다. 그 친구는 1주일 후에 다시 찾아왔다. '안중근'이 명성황후 후속인데, 왜 안하냐. 같은 '명성황후'시대인데 왜 안하냐고 해서, 그 때 머리를 탁하고 스친 게, 이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젊은 친구는 몇 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아마 안중근 의사가 100주기에 맞춰서 젊은 친구의 영혼을 통해서 저를 일깨워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앞으로 더 큰 사명을 가지고 더 적극적으로 '영웅'을 소개하도록 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 [뮤지컬대상] 뮤지컬 '영웅', 최우수작품상 수상(‘스포츠투데이’ 강승훈 기자 2010-10-18) 


윤호진 대표 <작품상> 수상 소감 한 대목이다. 기사에서 빠진 부분을 덧붙이자면 청년이 윤호진 대표를 설득한 데에는 안중근이 옥에서 작성한 <이토 히로부미 죄악 15개조>가 큰 몫을 했다고 한다. 15개 항목 중 명성황후 시해가 첫 번째였음을 청년이 상기시킨 것이다. <명성황후>가 윤호진 대표에게 빼놓을 수 없는 대표작이긴 하지만, 그는 어느 자리에서나 <명성황후> 얘기를 빼놓지 않는다. 뮤지컬 어워즈 작품상 수상 당시에도 “영웅은 명성황후가 낳은 옥동자”라며 두 작품의 관계를 강조한 바 있다. 윤호진 대표의 <명성황후> 언급은 인터뷰나 소감보다 <영웅> 작품 안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작품끼리 연관성으로만 보면 관객에게 극의 재미를 더하는 대목이나, 역사적 사실을 두고 해석을 해보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김선영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영웅> 설희는 명성황후 시해를 본 마지막 궁녀라는 설정의 가상 인물이다. 설희의 오래두고 벼르는 복수심을 강조하기 위해 명성황후 시해를 <영웅>의 한 장면으로 직접 보여주기도 한다. 이토를 향한 설희의 적개심이 동양평화론을 바탕으로 삼은 대한의군 안중근 장군과 또 다른 지점을 향한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앞서 쓴 리뷰에서 설희의 암살 실패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했으나, 이토를 둘러싼 설희와 안중근의 이해관계는 겹치는 부분이 크지 않다고 본다면 개인적 복수심의 한계랄까, 설희를 납득할 만한 여지가 생긴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에 따른 전개를 무시할 수 없으니, 가상의 인물 설희의 이토 암살 실패는 당연한 수순이고, 또 작품 구조상으로도 의거 현장인 하얼빈 역에 도착하기 전, 기차 밖으로 몸을 던지는 순간까지가 가상의 인물로 더 이상 갈 데 없는 한계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해석이 연출로 의도된 부분인지는 확실치 않다. 아무려나 설희가 명성황후와 안중근을 잇는 다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점은 분명하다.


이문열 소설 ‘여우사냥’에 뿌리를 둔 <명성황후>를 두고 명성황후 미화 논란이 여전하고, 작품 자체를 두고도 영국 공연 당시 '숭배 논란'을 등 혹독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15년이 지난 지금, 명성황후를 어떻게 볼 것인가, 를 이문열 작가와 윤호진 연출에게 다시 묻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중 문화 상품을 상품으로만 볼 수 없다는 건, 올해 <영웅>을 두고 오가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새삼 느끼는 부분이다. 그래서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없는 사상가이자 독립군 장군으로 대한민국의 영웅인 안중근과 명성황후 사이 연계 구도가 편하지는 않다. 을미사변이 항일 운동의 중요한 기점인 건 분명하지만, 이는 국권침탈의 상징으로 드는 울분이지, 명성황후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지지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영웅을 재조명한 <영웅>이 거둔 성과에 박수를 보내는 한편으로 드는 염려이다.*

 


사진출처 - 에이콤인터내셔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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