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속 이야기] 누구나 한 번은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곰살맞은 오래된 리뷰가 다락방 라면상자에 담았던 참고서처럼 계속 나오네요. 확실히 2008년 여름부터 열심히 보러 다녔구나 싶습니다. 뮤지컬 <교복 속 이야기>는 지금이라면 (작품 완성도를 떠나) 제 취향에 반해 끌리는 소재와 주제를 다룬 작품은 아닙니다. 청소년 문제를 다룬 음악극으로 기억하는데, 문제 제기에 반해 내용이 다소 아쉬웠던 작품이긴 합니다.
극단 진동은 청소년을 중심에 둔 전문 청소년 연극을 지향하는 곳으로, "일회적이고 상업적으로 이루어졌던 이 땅의 청소년 문화 활동을 비판하면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청소년 연극 활동"을 하는 극단입니다. 꾸준하게 매년 작품을 올리고 있고, 올해에도 뮤지컬 <고스트 라디오>를 올렸네요. 항상 에너지 넘치는 작품을 만드는 팀입니다.
"청소년 극단 진동은 꿈틀거리는 청소년의 열정과 개성을 연극을 통해 발현시킬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는 청소년들이 자기 정체성의 토대 위에서 떨쳐 일어나는 ‘진동(振動)’을 일으킬 것이다." 이들의 포부가 참 멋지지 않습니까? 분명 갈수록 발전하는 극단입니다.
하나, 공연장에 들어서면
소극장에서 뮤지컬을 한다는 건 무대, 소품, 인원의 제한 등 많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무대가 작다보니 뮤지컬의 동선을 만들려면 소품을 간결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기본적으로 학생 6명과 교사 1명으로 구성된 적은 인원인 만큼 책걸상 6개가 소품과 무대장치로 사용된다. 그런데 소품이 단순하고 무대가 간결할수록 배경이 바뀔 때마다 좀 더 재치 있는 변용이 필요한데, 교실을 제외하고는 집, 공터 등에서 배우의 동선을 살리기 위해 뒤 공간으로 밀려나 벤치나 의자 정도의 용도로밖에 사용되지 않고 있다. 많은 상상력이 발휘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배경을 흰 바탕인 채로 둔 것은 성의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다못해 조명이나 간단한 소품으로 효과를 주는 정도는 고려해봄직 하다. 보기에는 얼룩덜룩했는데, 의도가 있어보이지는 않고, 연습무대라는 인상을 준다. 등퇴장을 하는 무대 뒤쪽의 경우 퇴장을 하면서 천을 들 때마다 그 뒤의 공간이 그대로 노출되고 대충 놓인 사다리가 그대로 보인다는 점도 지적사항이다. (차라리 사다리는 무대 위에서 재미있게 사용될만한 여지가 더 있다.)
둘, 공연이 시작되면
꼴찌반 아이들의 분주한 아침 조회다. 활기차게 시작하는 건 좋지만 연출 의도상 산만한 상황이긴 하나 선생과 아이들이 대사가 객석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단체씬에서 비슷한 경우가 반복되었다. 소극장에서 굳이 핸드프리 마이크를 사용해야할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배경음과 마이크 밸런스에 더 신경을 썼으면 한다.
여자주인공인 ‘이비’는 평범해서 되레 튀는 아이이다. 이비가 슬픔을 몸으로 승화한 춤으로 열대야축제에서 자신의 모습과 목표를 찾는다는 굵은 설정이 있지만, 외모의 변화 즉 안경을 벗거나 묶은 머리를 풀거나 발목 양발을 벗거나 체육복을 벗는다고 해서 평범함을 벗는다는 것에는 동의가 되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자면 묶은 머리, 발목 양말, 체육복이 평범하는 뜻인데, 촌스러움, 고지식함 = 평범함은 일치하는 등식이 아니다. 요즘 아이들이 무개성인 이유는 반대로 연예인을 똑같이 ‘세련되게’ 따라 하다 보니 너도나도 똑같아져서가 아닌가.
고1(마리)짜리가 보장된 미래(결혼)를 위해(!) 외모를 속이고 의대생과 메신저를 하고, 또 외모가 들통 날 것임에도 실제로 만나러 나간다는 점, 만나는 장소가 서울 중심가도 아닌 사는 동네라는 점(의대생은 우연하게도 마리와 한 반인 이비의 오빠인데, 의대생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마리의 외모를 떠나서 동생과 같은 나이, 같은 학교 등 의심의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같은 자리에서 의대생에게 무시를 당한 ‘마리’는 ‘효윤’을 우연히 만나 극이 전개된다) 등은 한 번만 더 생각해봤으면 한다.
공부 잘하고 잘생긴 남자주인공 ‘병현’이는 까칠하다. 그가 친구들 멀리하는 이유는 “아버지도 모르는 새끼”라는 이전 학교의 친구 ‘짱돌’의 짤막한 대사를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고 전 학교에서는 문제아였던’ 현실과 과거를 숨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다고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까칠한 성격이 한부모에서 기인했다는 설정도 전형적이거나 편견일 수도 있고, 또 이후의 이야기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 구성상 허점이 보인다. 병현의 까칠함은 ‘효운’과의 관계, 또 ‘이비’와 관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만큼 좀 더 치밀했으면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형성된 성격이 과연 ‘이비’와의 사랑으로 극복될 정도인가 하는 점도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이는 ‘효운’과의 관계에서도 엇나가는 이유로 설명하기에는 마찬가지로 부족해 보인다. 왜냐하면 ‘효운’이 ‘병현’을 좋아하는 이유를 그의 잘생긴 외모나 능력이 아니라 ‘남자다움’때문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교복속 이야기>가 청소년을 위한 연극을 지향하는 바, 아이들이 저마다 아프고 힘들지만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는 주려는 의도는 좋다. 하지만 이런 의도라면 ‘짱돌’이 홀로 동떨어지고 만다. ‘짱돌’과 ‘병현’사이의 갈등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알려주지 않아서 궁금증을 줄뿐더러, 결국 ‘짱돌’은 여전히 양야치인 모습 그대로 제자리에 머물고 만다. '짱돌‘이 병현의 성격을 알리기 위해 등장한 단역일지라도 개연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사족으로 극 마지막에 선생님이 “우리반이 드디어 꼴찌를 벗어났다”면서 다 같이 좋아하는 장면은 결국 다른 어느 반이 꼴찌가 되었다는 얘기가 되니, 기쁘다고만 할 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셋, 공연장 밖으로 나와서
결론적으로 <교복 속 이야기>는 발전가능성이 높은 다크호스 같은 작품이다. 이는 극단 진동이 스스로 “엔터네이너가 아닌 청소년 연극을 중심으로 한다”는 진정성을 기반을 한다는 전제에서 하는 말이다. (엔터네이너의 상업적인 부분을 지양한다는 의미라고 보이는데, 엔터네이너가 상업적이기 이전에 노련한 프로여야 한다는 점에서는 엔터네이너와 청소년을 위한 연극을 한다는 점에서 대척점에 놓일 필요는 없다.)
무대, 배경, 소품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만큼 어느 곳에서도 공연을 올리기에 용이하다. 다시 말해 극단 진동의 취지에서 밝히듯이 “약물복용 청소년, 재소자 청소년, 미혼모 청소년 등 소외된 청소년”을 찾아가는 공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연장이 아니라면 핸드프리 마이크가 필요하다.)
또 뮤지컬에 걸맞게 음악의 완성도가 높고, 배우들의 노래실력이나 율동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와 있다. 배우들의 노력의 결과일 것인데, 노련미가 돋보이는 배우와 그렇지 않은 배우가 눈에 띄기는 하지만 극 속의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하고 소화하고 있다.
<늘근도둑 이야기>나 <지하철 1호선>이 그렇듯 시대에 맞게 청소년들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점과 희망과 진솔한 이야기를 향해 안테나를 길게 드리워서 계속 발전해 나가는 작품이 되길 희망한다. 결국, 누구나 한 번은 <교복 속 이야기>의 주인공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