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의 기억_서울 + 기억 창작시리즈] 현실의 문제를 풀기 위한 몇 가지 실마리
제목 : 7인의 기억_서울 + 기억 창작시리즈 A
기간 : 2010년 4월 9일 ~ 2010년 4월 18일
장소 :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출연 : 강병순, 권혁풍, 김기천, 고동업, 이창직, 박상종, 김신기, 나종민, 박혜나
작/연출 : 장우재
제작 : 서울시극단
덕성여자대학교 교수 정진웅에 의하면 "기억을 불러내는 행위는 과거의 체험을 경험화시키는 행위"라고 설명한다. 현재의 관심사, 욕구 등이 반영되어 과거의 기억을 불러낸다. 객관적 사실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해석적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과거의 체험을 불러내어 의미화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연극 '7인의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프레시안 [김석만의 '연극 창작 노트'] 중에서
연극 <7인의 기억>은 1972년 10월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을 발표하자, 고등학생 7명이 모여 비판과 반대 선언을 담은 화동주보를 만든 <화동주보> 사건을 배경으로 삼은 작품이다. 고등학생들의 치기어린 반발로 볼 수도 있지만, 당시 게임사령부는 이들을 군사재판을 통해 서대문형무소에 입소시킨다. 곧 이어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석방된 사건이다. 연극은 38년의 세월이 흐른 뒤 당시 7명을 주인공으로 다시 무대에 불러 세운다. 교수, 신부, 학원장 등으로 평범하게 늙은 동창생들은 학교 홈커밍데이에 맞춰 당시 상황을 연극으로 재현하고자 한다. 극중극인 셈이다.
평범한 중년의 모습인 지금의 그들에게서 당시의 긴박한 사건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각자 먹고 살기 바쁜 우리 아버지들이다. 마치 당시 화동 주보 사건은 일상이었다는 듯. 그러나 7명 중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손에 끌려 가장 먼저 종로경찰서에 끌려가 혹독하게 당한 종태는 사건 당시에 몸과 정신이 피폐해진 그대로 힘겹게 살고 있다. 38년 전 모습 그대로 박제가 된 종태의 존재는 나머지 6명에게 어떤 의미일까. 특별한 사건도 아니었고, 어찌 보면 치기어린 미수에 그친 그때 사건으로 인한 한 친구의 불행. 미필적 고의일지라도 6명은 그 책임을 나눠진다. 물론 종태도 동의를 했던 일이고, 나머지 친구들 역시 고초를 당하긴 마찬가지였을 터이다. 그때 그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남들처럼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기억은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38년 만에 만난 이들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면, 그 원인 역시 당시 사건에서 기인한다. 형무소에 풀려나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교장에게 “평생 운전대나 잡고 살 쓸모없는 놈”이라는 취급을 받은 추달오는 독기가 올라 공부를 했다고 회고한다. 다른 친구들 역시 비슷한 형편이다. 정우림이 신부가 된 원인을 밟아 올라가면 형무소에 봤던 사형수의 모습에서 기인한다. 그때 강렬했던 인상이,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 신에 대한 회귀로 이어졌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모습은 영웅이 아니다. 영웅은커녕 학교 선생을 하다가 그만두고 학원선생에서 학원원장을 하는 추달오는 그렇게 번 돈으로 아들을 호주로 유학 보냈지만, 아예 그곳에서 살겠다는 얘기나 듣는다. 정우림은 자신을 술이나 밝히는 날라리 신부라고 자조를 한다. 그들은 당시 아픔을 고스란히 현실에서 복기하는 존재인 서종태를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추대하지만 아무 기록이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사되지 못한다. 그들의 치열했던 기억과 다르게, 현실은 냉정하게 조서 기록조차 없는 치기였을 뿐이다. 이들의 상처는 여전히 나을 방법이 없어 보인다.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해묵은 상처를 들쑤셔 다시 덧나게 하는 일일까.
“아저씨들은 먹고 살만하니까 우리 아버지한테 미안한 마음을 덜려고 이러시는 거 아닌가요?” 서종태의 딸 서수정이 극 중에서 외치는 대사는 화살이 되어서 이들의 상처를 헤집는다. 연극은 극장을 뒤쪽과 앞쪽을 중간 막으로 나눠서 뒤쪽에서 7인의 기억과 현재를, 앞쪽에서 뮤지컬 배우가 꿈인 서수정의 모습을 담는다. 사이를 가르는 반투명 막은 무대 장치로 70년 대 당시, 현재 서종태의 방황, 삭막한 빌딩숲 등 상황을 보여주는 스크린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극중에서 세대 간의 갈등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연극은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을 묘사하면서 세대 간의 갈등을 일으키고, 해소하는 인물로 당시 종로경찰서에 1년 선배 김병준을 끼워 넣는다. 7명과 상관이 없음에도, 월북자를 삼촌으로 두었다고 이유로, 우연히 전날에 학교에 갔다는 이유로 김병준이 같이 끌려온 처지이다. 그 역시 이때 사건으로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인물이다. 하지만 가상의 인물인 김병준의 등장과 역할에는 선뜻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그와 서수정과의 관계 고리는 갈등을 일으키는 핵심 고리이다 보니 김병준이 아니었다면, 7인(아버지 서종태를 포함한)과 서수정과의 갈등을 해결될 여지가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김병준의 어깃장이 이후 7명과 다시 재회를 하고 갈등으로 번지는 상황으로 이어지는데, 갈등이 벌어지는 상황이 다소 작위적이다. 우연으로 보기에는 고리가 느슨하고, 필연으로 보기에는 김병준의 실체가 모호하다. 아무려나 극 발단은 그의 복수에서 비롯된 셈인데, 내용도 좀 치졸하지만(뭐, 이해할 수 있다. 누구라고 그럴 수 있으니까), 방법 역시 허술하다. 더욱이 자신이 하는 일과 연관된 부분인데, 은밀하게도 아니고 대놓고 “무조건 넌 안 돼”라는 식이 좀 아쉽다. 이런 부분은 극 전개상 화해의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그가 취한 몇 가지 태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불행했던 기억을 무의식 속으로 밀어 넣고는 진정으로 용서했다고 생각한다. 상처를 잊고 평화를 되찾았다고 믿는 것이다. 이때부터 침묵하기 시작한 외상은 언젠가 가면을 쓰고 나타나 신경증이나 신체장애로 발현될 것이다. - 가브리엘 뤼뱅의 <증오의 역사> 중에서
김병준이 아쉬운 이유라면, 이 작품은 거시적으로 역사적 바퀴에 휘말려든 아픔 못지않게, 사소한 태도가 평생의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그를 통해 알리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성찰이기도 한데,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싸움, 심지어 살인사건의 발단을 봐도 그렇지만 개인적이고 사소한 부분에서 우리는 분노를 느끼고 화를 참지 못하게 마련이다. 시대와의 화해인 동시에, 각자 품은 개인적인 아픔과의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시대와 시대, 세대와 세대와의 화해는 불가능하다.
아무려나 극중 서수정이나 김병준은, 실제 <화동주보> 사건의 당사자들을 연극적으로 묶기 위한 장치로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이들이 화해를 하고, 서수정이 뮤지컬 스타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결말은,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부분이지만 극중 얼개나 구조와 상관없이 극 자체가 가진 묵직함으로 인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든다. 알게 모르게 극중 상황을 실제로 받아들인, 혹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는데, 아무려나 바라는 모습이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7인의 기억>은 서울시 극단의 ‘<서울 + 기억> 창작시리즈 2010’의 첫 번째 작품이다. 세금을 운영되는 극단은 이름과 다르게 10명의 단원으로 구성된 열악한 환경이라고 한다. 나름의 창작개발 시스템을 통해 묵혀서 보다 고심한 흔적이 있다. 작품 활동보다는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관련 프로그램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역시 극단은 무대에서 배우와 관객으로 만나야 한다. 1년의 결실로 나온 이번 창작시리즈가 아무래도 서울시 극단의 몇 가지 가능성과 목적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9일부터 11일까지 프리뷰 기간으로 두었다. 18일까지 짧게 올리는 공연이고 보면 프리뷰 기간을 두는 게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다양한 영상 사용, 시대를 넘나드는 장면 전환, 연극과 뮤지컬의 병용, 안으로는 중견 배우와 젊은 배우와의 호흡 등 다양한 시도와 복잡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공연이다. 그러다 보니 프리뷰를 두는 게 당연한 한편,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극단의 작품이라면, 아무리 극장 대관 일정이 있다고 한들, 공을 들인 데에 비해 공연 기간이 너무 짧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진출처 - 서울시극단(www.smtheatr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