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마법사들] 누구에게나 마법이 필요할 때가 있다
제목 : 마법사들
부제 : 기억하는 모든 것은 사랑이 된다
장르 : 뮤지컬
기간 : 2010년 3월 12일 ~ 오픈런
장소 : 창조콘서트홀 1관
출연 : 재성 역 - 김태훈, 정태야, 백종면, 이도현 / 자은 역 - 김신애, 장선미 / 명수 역 - 김영환, 박태성 / 하영 역 - 최고은 / 스님 역 - 강정구, 이태헌
기획 : 창조아트센터
깃처럼 날리는 인생
송일곤 감독의 2004년 작품 <깃 Feathers in the Wind>을 보고서 앞으로 우도를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두어 번 간 적 있는 우도는 <깃>에서 본 우도의 모습과 소리와 달랐으므로 난 그냥 <깃>이 담아낸 바람과 음악으로, 그러니까 귀로 기억하는 우도를 어쭙잖게 갔다가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꼭 이 결심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남들보다 버겁게 사는 건 아닌가 싶다가도, 뭐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지 싶은 난 그럭저럭 이름 모를 것들에 쫓겨 사는 내내 우도를 찾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사실,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깃>으로 만난 송일곤 감독의 영화를 되도록 챙겨보는 정도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송일곤 감독의 작품은 예의주시하지 않으면 어느새 극장에서 사라지곤 했는데, <마법사들>을 놓치고는 내내 아쉬웠다. 그렇게 올 1월 뒤늦게 뮤지컬 <더 매지션즈The Magicians>를 봤다. 이 공연이 영화 <마법사들>을 원작으로 삼은 작품인줄 알았더라면 진즉에 봤을 것을, 우연히 잡지에서 송일곤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서야 그의 영화가 원작이라는 걸 알았다.
마법사들이 모인 자리
2005년 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제대로 걸리지 못햇던 작품이 5년이나 지나 소극장에서 뮤지컬로, 그리고 영화로 다시 공연 중이다. 영화 <마법사들>은 마법사들 시즌 2 공연장이기도 한 창조아트홀 1관에서 목금토 저녁 10시마다 상영을 한다. 창조아트센터 홈페이지(www.changjo1.co.kr)에서 예매할 수 있고, 뮤지컬 배경을 그대로 두고 걸린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는 기분이 또 새로울 것이다. (난 시즌 2 시작 전, 넌센스 세트에서 영화를 보았다.)
작품성을 인정받았어도 극장에 내걸리지 못한 채 잊히는 필름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게다가 5년 세월이라, 참. 내가 알기로는 DVD로 나오지 않았다. 혹은 구하기가 정말 힘들거나. 영화 <마법사들>을 뮤지컬로 시즌을 바꿔가며 기획, 제작, 공연하는 창조아트센터의 열정은 송일곤 감독에 대한 애정이 아니면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다.
이 열렬한 애정은 영화를 다시 상영하면서 팬들에게 과거를 되돌리는 마법을 부리고 있다.어떤 영화가 영화 속 세트를 고스란히 옮긴 무대 위에서 상영을 하는 호사를 누린단 말인가,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진정한 3D의 구현이고, 그 힘은 기술력과 거대 자본이 아니라 좋은 작품과 애정이라는 걸 새삼 배웠다. (무엇보다 돈이 전부인 시대에 5년 전 영화를 뮤지컬과 마찬가지로 오픈런 형식으로 상여하는 것이 마법이고 기적이 아니라면 뭐가 기적이란 말인가.)
시즌 2를 맞이하면서 <마법사들>은 창조아트홀의 장기 공연작인 <넌센스>와 공연장을 서로 바꾸었다. 극장 규모 2관에 비해 1관이 좀 더 크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시즌2와 영화 상영을 맞물리려는 결정으로 보인다. (건물 한 층을 나누어 사용하는 1관과 2관은 무대 규모보다는 객석 등 관람 여건에서 차이가 두드러진다.)
영화, 마법사들
요 석 달 사이 1월에 뮤지컬 시즌1을, 2월에 영화를, 3월에 시즌2를 보았다. 홀린 듯 지금까지 나온 세 가지 버전을 다 본 셈이다. 96분 동안 한 번도 끊이지 않고 ‘원 싱글 테이크’로 찍은 영화는 겨울 산장과 인근 숲 ‘실비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형식에서도 충분히 연극적이다. 다만 뮤지컬이 등퇴장과 암전으로 장면을 전환한다면, 영화는 장면 전환을 앞두고 배우들이 마치 분장실에 있듯, 짐짓 표정을 바꾸고 거울 앞에서 옷매무시를 고친다. 영화에서 연극적인 이런 장면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개인적으로 특유의 감수성이 넘치는 음악 탓이라고 본다.
후고 디아즈Hugo Diaz의 하모니까 연주가 돋보이는 탱고 음악 ‘Amurado’, ‘Palomita blanca’는 영화을 보는 내내 마법이 걸린 듯 몽롱하고 나른한 감성을 일깨운다. 과연 송일곤 감독은 내가 아는 한 가장 소리에 민감하고 예민하게 다루는 감독이다. <깃>의 탱고도 그렇고, 2009년 다큐멘터리 <시간의 춤 Dance Of Time> 역시 남미 쿠바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남미를 향한 동경에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감독의 핏속을 타고 흐르는 남미 정서는 영화와 완벽하게 하나가 된다. 후고 디아즈의 음악을 알게 된 정도로도 영화를 볼 이유가 충분했다.
뮤지컬, 더 매지션즈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뮤지컬을 짧게 요약하면 12월 31일 자정, 세상을 떠난 인디 밴드 ‘마법사들’의 기타리스트 자은을 기리기 위해 마법사 밴드 리더이자 자은의 연인이었던 드러머 재성, 명수의 친구이자 베이시스트 명수, 보컬리스트 하영이 모인다. 그리고 3년 상을 치른 이들은 ‘마법사들’로 다시 1월 1일 새로운 출발을 결심한다는 내용이다. ‘밴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려니 음악인 출신 배우들의 연기력, 혹은 전문 배우들의 음악 실력이 관건인 작품이다. 작년 10월부터 두 달 가까이 흐른 지금은 연주 실력이나 배우들 사이의 호흡은 염려할 바가 아니었다.’ 영화를 보기 전, 뮤지컬 시즌1의 라이브 연주 실력과 노래가 그럴듯하다 생각으로 쓴 글이다.
마법사 밴드의 즐거운 CM송, 영화 OST로 유명한 ‘실비아’, 그리고 마지막 보컬 하영 역의 김초은의 멋진 노래까지 귀가 참 즐거운 작품이지만, 영화를 내내 감싸면서 관객을 홀리는 탱고의 마력에는 어쩔 수 없이 미치지 못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이전에 본 뮤지컬에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남았다. 후고 디아즈의 음악과 더불어 영화는 “천 개의 불안, 하나의 희망”을 되뇌는 자은(이승비 역)의 독특한 캐릭터에 기대고 있다. 그러니까 영화 속 자은의 절망이나 자살이 별 다른 설명 없이도 오로지 감수성에 기대어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반면에 뮤지컬에서는 자은 캐릭터를 카메라나 음악으로 덧입힐 수 없다보니 그녀의 행동에 자꾸 원인을 캐묻게 된다.
‘다만 작품 전체의 키를 쥐고 있는 자은의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보강할 필요가 있겠다. 자은이 자살하기 전까지 과거와 현재에 대한 아픔과 절망은 보다 디테일하게 묘사하지 않으면 좀처럼 큰 얼개를 따라가기에 다소 버겁다. 하다못해 재성의 관계와 갈등과 아픔을 좀 더 명확하게 다루었으면 한다.’
뮤지컬, 마법사들
시즌2는 영화를 보고 난 뒤 본 터여서 든 생각인지 모르지만, 시즌1에 비해 영화에 보다 충실하려는 엿보인다. 음악감독을 제외한 연출과 각색이 바뀌었고, 출연 배우들도 대부분 교체를 했다. 무엇보다 극중 멀티 역으로 활약하던 여고생 역할이 아예 빠졌다. 무대 제약, 인원 제약 등을 보완하는 코믹한 멀티 역은 소극장 뮤지컬의 전형적인 레퍼토리이다.
극 전반에 걸쳐 자은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이 배일 수밖에 없다 보니, 전형적인 설정이라고 해도 극 분위기 전환을 이끌던 멀티 역이 빠진 자리가 허전하다. 멀티 역 여배우는 코믹한 역할 이외에도 시즌1에서 산장에 자살을 하기 위해 왔다가 재성을 만나 짝사랑하는 여고생으로 비중 있는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악기지만 라이브 무대에 필요한 건반을 연주하고, 마지막에 자은이 떠난 재성의 빈자리를 채우는 듯한 여운을 남긴다.
시즌1의 마지막은 영화와는 다른 결말인데, 시즌2에서는 그와 다르게 원작에서 산장에서 3년 동안 고독하게 지내면서 이제 겨우 극복한 재성의 그리움을 오롯이 담으려는 듯하다. 대신 악기 편성(?)에서 변화를 보인다. 자은이 기타리스트에서 보컬로 옮기면서 하영이 보컬 대신 키보드를, 재성이 자은이 빠진 자리인 기타를 잡는다. 드럼은, 좀 뜬금없이 등장하지만 연습실 장면에서는 선배가, 산장에서는 살짝 무리가 있는 설정인가 싶지만 스님이 맡는다.
이런 변화는 멀티 역 제외, 배우 개개인의 악기 다루는 수준에 따른 변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은이 보컬을 맡으면서 시즌1에서 제대로 살지 않았던 자은의 절망에 설득력을 더 한다. 시즌2에서도 어렸을 때 사과에 얽힌 일화를 통해 자은의 아픈 상처를 떠올리면서 정신적인 불안을 설명한다. 하지만 후두암으로 노래를 더 이상 할 수 없는 적발한 상황으로 설정하면서 자은의 자살이 좀 더 타당성을 얻었다. 다만 너무 손쉬운 선택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마법이 필요할 때가 있다
영화가 선택한 한 대의 카메라가 쉼 없이 움직이는 ‘원 싱글 테이크’ 촬영 방식은 관객을 영혼이 된 자은처럼 극 안에서 날아다닐 수 있도록 이끈다. 독특한 방식이고 경험이다. 송일곤 감독의 전작주의자이길 바라는 입장에서, 작가주의 영화가 뮤지컬로 탄생했고, 또 시즌을 거듭하면서 새롭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모르겠다, 내가 영화에 도취된 탓이겠지만 뮤지컬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륜이 있는 배우들의 연기가 절절하게 와 닿는 건 어쩔 수 없다. 대신 음악을 입힌 영화와 다르게 직접 연주하고 노래하는 뮤지컬은 결국 영화가 말한 천 개의 불안을 극복하는 방식, 음악으로 관객들과 생생하게 공유한다.
시즌2는 시즌1에 비해 영화에 디테일하게 접근하고 있는 중이다. 그 만나는 접점까지 어떻게 끌어올리는가는 앞으로도 과제겠지만, 분명 기존 소극장 뮤지컬과는 다른 목표를 가지고 걷고 있는 건 분명하다. 영화와 비교되길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같이 가길 원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기회가 된다면 뮤지컬과 영화를 함께 즐기길 바란다.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보지 못하는 게 무대극의 매력인 게 분명하다. 그리고 무대극처럼 딱 96분 동안 담은 영화를 뮤지컬과 함께 관람하면서 공유한 기억은 분명 ‘기억하는 모든 것은 사랑이 된다’는 부제처럼 오랫동안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사진출처 - 창조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