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

[한 여름밤의 꿈] 한겨울에 만나는 여름밤의 꿈

구보씨 2009. 11. 26. 13:01

제목 : 한 여름밤의 꿈_연희단거리패 셰익스피어극2 

장르 : 뮤지컬

기간 : 2009년 11월 26일 ~ 2009년 12월 26일

장소 : 미마지 아트센터 눈빛극장

연출 : 남미정

출연 : 변진호, 정영미, 홍선주, 배보람, 이종민, 이형준, 이동준, 손범호, 김준호, 박미영, 신향주, 성미경

기획 : 눈빛극장

 

 

연희단 거리패가 꾸는 꿈

연희단 거리패의 특징이라면 좀처럼 기가 눌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의 고정 레퍼토리 <햄릿>이나 <한여름 밤의 꿈>도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쉼 없이 올라가는 셰익스피어 작품이지만, 어디 누구의 공연과 비교해도 다르다. 그렇다고 원작의 무게에 눌리지 않는다는 의미가 청소년의 불뚝 반항처럼 밑도 끝도 없이 그 틀을 완전히 해체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누구와 만나도 더불어 놀 줄 안다는 것!


극중극으로 들어간 <한여름 밤의 꿈>은 결혼을 앞둔 준호와 현정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친구들이 마련한 자리이다. 한국에서 연극배우로 사는 데에 힘이 부친 현정은, 도피하는 심정으로 장사하는 어머니의 일을 돕기 위해 뉴욕으로 떠날 결심을 한다. 현정을 사랑하는 독립영화감독 준호는 현정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좋다.

 

현정은 자기 옆에 있어준 준호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이들은 낯선 뉴욕에서 식을 올리기로 한다. 모든 짐을 훌훌 털어버리는 새 출발이다. 하지만 이들 관계는, 사랑이나 동거와 다르게 결혼을 해서는 안 되는 조건을 모두 갖춘 셈이다. 경제적 여건은 둘째 치고, 현정이 준호를 받아들이는 장면을 보면 , 짧아서 짐작이지만, 사랑이라기보다 지친 데에 대한 위로처럼 보인다.


결혼은 사랑과 전혀 다른 문제라서 개인적, 사회적 책임감이 뒤따르지 않으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아테네 법상 아비가 쥔 혼인권(원작), 경제력 차이(극중극) 등 사회적 제약이 결혼을 가로막는 조건이지만, 결혼 이후를 고려하면 실제로 외부의 조건보다 개인적 책임 회피가 이혼의 가장 큰 여건이다. 대한민국도 이혼율이 얼추 50% 가량 된다는데, 경제적 원인이 갈라서는 따개 역할을 하지만 실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고, 이는 주로 책임회피에서 온다. 

 

 

뉴욕의 밤, 뉴욕의 꿈

극중극에서 창조주인 오베론과 티타니아는 지구의 수많은 도시 중에 뉴욕을 선택했을까. 우연히 현정의 어머니가 일하는 곳, 준호와 현정의 쟁이 친구들이 있는 곳이긴 하지만 소품이나 배경에서 뉴욕이 그다지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뉴욕이 예술의 도시이며, 신세계를 여는 문이라는 상징을 가지고 있지만, 극중극에서 뉴욕에 막 도착한 남훈과 꽃님이는 뉴욕 부량아들에게 가방과 옷을 강탈당하고 노숙자 신세가 된다.


뉴욕이 유행의 최첨단, 즉 새로운 신화가 만들어지는 도시라는 점에서도 물질에 대한 반발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조셉 캠벨의 <신화의 힘>을 인용하자면 뉴욕은 아이들이 스스로 신화를 만드는 도시이다. 거리의 수많은 낙서[Graffiti]는 아이들이 법체계를 벗어난 스스로 체현한 신화이며, 세계적인 문화 아이템이다.


어쨌든 간에 준호와 영미는 뉴욕으로 날아왔다. 때마침 뉴욕에는 이들의 친구들이 있어서 결혼을 축하하는 공연 <한여름 밤의 꿈>을 마련한다. ‘꿈과 문화의 중심 뉴욕에는 꿈을 안고 뉴욕으로 유학 온 쟁이들’인 이들은 꿈과 다르게 청소를 허가나, 손톱을 관리하거나, 변기를 뚫는 일을 하는 형편이다. 그래도 꿈을 잃지 않으려는 이들의 ‘한겨울밤을 견디기 위한 한여름 밤의 꿈’이 시작된다.

 


꿈이 환상이라면 똥은 현실이다

뮤지컬 <한여름 밤의 꿈>은 워낙 원작이 유명하기도 하지만 남녀노소 누구라도 보고 즐길 수 있게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중학생 조카아이를 통해 확인했다.) 연희단 거리패의 <코뿔소>를 볼 때도 느낀 점이지만 극중 캐릭터들에 배우를 맞춘 게 아니라 배우에 맞게 캐릭터를 구성한 듯 잘 어울린다.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젊은 배우들이 주로 활약을 하는 편이지만, 몇몇 배우들의 표정과 연기는 정말 능청스럽고 오달지다. 세심한 부분을 챙겨 볼 수 있다는 점도 소극장 뮤지컬의 매력이다.


연희단 거리패의 <한여름 밤의 꿈> 백미라면 단연 보틈이다! 변기를 목에 걸고 황금색 변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나타난 보틈은 퍽의 말처럼 셰익스피어 연극 사상 가장 독특한 보틈이다. 플라톤이 물질 너머의 이데아를 주창한 그리스 시대의 신화를 변주한 작품에서 역설적으로 그 존재만으로 자존감(?)을 제대로 드러내는 똥의 위대함을 역설하는 보틈은 단순히 코믹한 설정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화상인, 아니 화성인 남편 오베론과 함께 지구를 만든 금성인 부인 티타니아가 꽃뱀 바이러스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보틈은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만남, 정신과 물질의 결합. 이른바 동양에서 말하는 음양의 조화이자, 창조의 원동력이 되는 혼돈의 시작이다.


이는 원작의 당나귀를 뛰어 넘는 해석으로, 짐승으로의 변신 혹은 짐승과의 교접이나 그로 인해 태어난 반인반수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캐릭터이다. 관객, 배우, 아예 세상이 똥이라고 역설하는 보틈은, 예수님에게서 변기를 빼앗아간 영지주의자(그노시스파 Gnosticism)에 대한 통쾌한 반란이기도 하고, 똥이나 다름없는 물질만능 시대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허위, 가식과 천박한 물질주의를 동시에 꾸짖는 캐릭터이다.


짝사랑하는 강원을 따라 뉴욕에 온 예빈이가 길에 싸놓은 똥을 잠이 덜 깬 꽃님이가 밟는 설정은 앞으로 둘 사이가 전세역전하리라는 복선이면서, 예빈의 존재 확증(!)이다. 무시만 당한 존재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의 역전이다. 꽃님이의 달콤한 꿈은 이제 확 피어오르는 똥냄새와 함께 깡그리 달아나고 말았다.


꿈과 똥은 버리고 무시하면 냄새나는 쓰레기지만 잘만 다루면 미래를 위한 훌륭한 퇴비가 된다. 그리고 한바탕 난장을 겪은 커플들은 결혼이 환상적인 꿈의 낙원이 아니라 어이없는 우연이 언제든 틈입할 수 있는 그물망으로 늘 손보지 않으면 고기가 냉큼 도망가는 냉혹한 현실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꽃뱀 바이러스는 실재한다. 실재하지 않는다면 그 수많은 모텔과 모텔의 불야성은 뭐란 말인가.) 마지막에 등장인물들이 예복을 입고 장면은, 이들이 비로소 예복 즉, 자격을 갖추었다는 걸 보여준다. 감정을 앞세운 준호와 마지못해 승낙한 현정의 결혼은 이제 제대로 무르익었다.

 

 

열흘 밤의 꿈

세계적 일본 소설가 나쓰메 소세끼는 ‘열흘 밤의 꿈’을 통해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꿈, 무의식의 세계는 불확실한 현실을 근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안식처, 도피처조차 되지 못한 채로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의 삶을 다시 한 번 반복해서 재현해 내는데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쓰메 소세키는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악몽일지라도 대신 온몸으로 부딪쳐 삶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를 한다는 점에서 분명 세계적 작가이다. 연희단거리패의 한겨울밤을 달구는 뮤지컬 <한여름 밤의 꿈>의 배우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2층 관객석의 25석을 포함하며 300석 규모이고 무대는 넓이 12.9미터, 깊이 7.5미터, 높이 6미터’의 좋은 공연장인 눈빛극장 개관 두 번째 공연으로, 연희단거리패의 대표작 <햄릿>의 개관 공연의 동력을 이어받았고, 나름 연말 분위기에 맞게, 뜨거운 부산 가마골소극장에서 11월에 초벌구이를 해서 올려 보낸 작품이다.


100여 곳 대학로 극장에서 객석을 다 채우고 만선으로 출항하는 작품이 과연 몇 편이나 되겠는가. 냉정한 현실을 위안 아닌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는 소새끼, 아니 소세끼의 꿈같은 현실이다. 객석은 현실이고 무대는 환상이다. 하지만 ‘한겨울밤을 견디기 위한 한여름 밤의 꿈’이지만 그래도 젊은 배우들의 찰떡같은 연기가 젊은 무대 열기가 객석을 데운다.


전개가 빠르게 지나가다 보니 군무나 앙상블이 여유가 없어 보여서 노력한 만큼 살지 않는다. 소극장 뮤지컬에 1인다역 캐릭터가 양념처럼 들어가긴 하지만, 이왕이면 ‘극중 배우’ 남녀 역할의 비중을 높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연희단 거리패의 특징이라면 한 작품을 물고 늘어진다는 것! 숙성되고 또 숙성되어 사골국물 같은 작품으로 계속 만나길 바란다.*

 


사진출처 - 연희단 거리패